전국 뒤흔든 '363명' 희대의 커닝…수능 샤프의 탄생[뉴스속오늘]

양성희 기자 2024. 11.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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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17일 치러진 2005학년도 수능서 대규모 부정행위 발각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전북 전주시 한일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 중인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용 사진. /사진=뉴시스(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대규모 부정행위 사건이 20년 전 버젓이 일어났다. 전국적으로 무려 363명이 부정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2004년 11월17일 치러진 2005학년도 수능에서 벌어진 일이다. 희대의 사건으로 이후 수능에서는 모든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되고 개인 필기구가 아닌 획일적인 '수능 샤프'가 지급되는 등 큰 변화가 생겼다.

'선수-일반-도우미' 집단의 '위험한 협업'

2004년 11월17일 전국의 수험생과 학부모가 고대하던 수능 날, 광주가 발칵 뒤집혔다. 중학교 동창 사이에서 시작된 휴대전화 부정행위가 발각되면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광주만의 일이 아니었다. 광주 부정행위자 159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363명이 적발됐다.

범행을 주동한 중학교 동창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범행을 수능 약 두 달 전부터 계획했다. 여기서 시작된 범행에 가담자들이 붙었다.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분담과 협업이 핵심이었다. 크게 세 집단이 함께 움직였다. 평소 시험성적이 우수한 집단은 '선수'로 불렸다. 이와 반대로 시험점수가 다소 떨어지는 일반 수험생 집단이 있었다. 또 이들 사이를 잇는 후배 '도우미' 집단이 구성됐다.

이들은 열지 않아도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는 휴대폰 수십 대를 준비했다. 선수 집단은 휴대폰을 몸에 달고 고사장에 들어간 뒤 외부에서 대기하던 도우미 집단에 메시지로 정답을 유추할 수 있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도우미 집단은 정답을 추려 일반 집단에 메시지를 보냈다. 일반 수험생 집단도 몸에 휴대폰을 부착한 상태였다.

부정행위 주동자로 지목된 이들은 나중에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가정법원에 송치됐다. 당시 1심 법원은 "수능 근간을 뒤흔들고 일반 수험생들을 허탈하게 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학력 지상주의가 어린 학생들을 범행으로 내몰았다"고 판시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 중인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용 사진. /사진=뉴시스(공동취재)

광주만이 아니었다…대신 수능 봐준 대리시험까지 적발

이 같은 부정행위가 당시 전국 각지에서 발각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서울과 충북, 충남, 전북, 전남 등에서 비슷한 부정행위가 줄줄이 꼬리를 잡혔다.

다른 사람이 해당 수험생인 척 대신 시험을 보는 대리시험도 부정행위의 한 방법으로 적발됐다. 이 일엔 거액이 오갔다.

대리시험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는데 경찰에 붙잡힌 이들 중 2명은 이미 3년째 대리 수능을 치른 것으로 조사됐다. 앞선 2년의 대리시험은 적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리 당국도 비판받았다.

해당 수능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된 수험생들은 시험 무효 처리를 받았다. 조사를 거쳐 순차적으로 무효 처리된 수험생은 모두 314명이었다.

아울러 뒤늦게 부정행위가 발각됐는데 이미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이듬해 무더기로 입학 취소 처분을 받았다.

쏟아진 제보에 뒷짐 지다가…결국 터졌다

이 사건으로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는 수능 전부터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는데 경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당시 인터넷을 중심으로 "수능을 앞두고 휴대폰을 이용한 부정행위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가 퍼졌다. 경찰은 제보자의 말을 토대로 정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하려 했다.

그런데 당시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수험생을 상대로 한 경찰 수사에 반대하면서 내사에 그쳤다. 결국 사건이 터지면서 안이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수능 샤프' 생기게 한 사건…휴대폰 적발되면 시험 취소

희대의 수능 부정행위 사건은 큰 교훈을 남겼다. 그동안 관리·감독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내놓은 대책은 현재 수능까지 이어서 적용되고 있다. 우선 문제가 된 휴대전화 때문에 모든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됐다. 적발될 경우 시험 전체가 무효 처리된다. 또 시험장 복도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해 전자기기 소지 여부를 살피기로 했다.

일명 '수능 샤프'가 생기기도 했다. 개인 필기구가 아닌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샤프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리 시험을 막기 위한 대책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답안지에 필적 확인란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2005년 6월 수능 모의평가부터 시작됐다.

필적 확인 문구는 매년 화제가 되는데 수험생에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장이 주로 쓰인다.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도 고려 대상이다.

지난 14일 치러진 2025학년도 수능에서 쓰인 문구는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였다. 곽의영 시인의 시 '하나뿐인 예쁜 딸아'에서 인용했다.

양성희 기자 y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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