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열폭주 막을 열쇠, 부부 교수 손에 달렸다

이종현 기자 2024. 11.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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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배터리공학과 이민아·홍지현 교수
KAIST 동아리서 만나 KIST 거쳐 포스텍行
계면과 전극 전문가의 공동 연구로 시너지

포항공대(포스텍) 배터리공학과에는 지금까지 줄곧 함께 이차전지를 연구한 부부 교수가 있다. 홍지현(36)·이민아(37)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2007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3학년 때 합창 동아리에서 만난 캠퍼스 커플이다. 대학원을 함께 나왔고, 박사후연구원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함께 했다. 귀국한 뒤에는 나란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박사과정을 빼고는 시차가 있어도 꼭 같은 곳에서 연구했다. 아내 이민아 교수가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먼저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으로 갔고, 서울대서 박사가 된 홍 교수가 1년 뒤 따라갔다. 홍 교수는 “이 교수를 만나기 위해 스탠퍼드대를 갈 때마다 원하던 연구실 교수를 찾아가서 박사후연구원으로 받아달라고 했고, 삼고초려 끝에 붙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홍 교수가 먼저 KIST에 들어갔고, 뒤이어 1년 뒤 이 교수가 KIST에 자리 잡았다. 두 교수는 올해 포스텍 교수로 함께 자리를 옮겼다.

포스텍 친환경소재대학원 배터리공학과 이민아(왼쪽) 교수와 홍지현 교수. 부부지간인 두 교수는 따로 또 같이 이차전지 연구를 하며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고, 차세대 전지에 쓰일 소재를 찾고 있다./포스텍

이공계에는 부부 교수가 적지 않지만, 홍 교수와 이 교수처럼 평생 커리어를 함께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학원 때부터 이차전지 분야를 함께 연구했던 두 교수는 포스텍에서 이차전지의 안정성을 높이고, 차세대 전극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일 포항 포스텍 캠퍼스를 방문해 두 교수를 만났다.

–연구 분야를 설명해달라.

이민아 교수(이하 이) : “이차전지 소재 중에서도 유기소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계면 연구도 한다. 이차전지 반응은 소재 간 계면에서 발생하는 여러 반응이 밀도나 안전성에 영향을 준다. 이런 것들을 연구하고 있다.”

홍지현 교수(이하 홍) : “이 교수가 전지 안의 유기소재를 다룬다면, 나는 전극을 주로 연구한다. 양극 소재나 활물질 소재가 충·방전 중에 에너지를 어떻게 저장하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망가지는지 그런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대학원 때는 소재 자체에만 집중했는데, 연구를 하다 보니 열화(劣化·품질 저하) 현상 자체가 활물질의 표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표면은 전해질과 맞닿아 있는 계면인데, 이 부분을 잘 아는 이민아 교수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

–같은 이차전지지만, 조금씩 연구 분야가 다르다.

홍 : “예전에는 배터리 연구가 다 따로따로 진행됐다. 그런데 전지라는 게 작동할 때 모든 게 상호작용하면서 반응이 일어난다. 자기 분야만 연구하면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함께 연구하면서 배터리의 전해질과 전극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 : “최근에는 전지 재활용에 대한 논문을 함께 쓰기도 했다. 양극 소재를 재활용해야 하는데, 구조·화학적으로 망가진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이해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다. 화학적인 전달 반응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지 알아야 하는데, 홍 교수는 양극 소재가 어떻게 열화되고 전달 반응 이후에는 어떻게 회복하는지를 연구했기 때문에 서로 도움이 됐다.”

이민아 교수는 최근 LG화학과 함께 연구한 열폭주 억제 신소재 개발로도 주목 받았다. 열폭주는 배터리 내부의 인화성 구성물질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폭발 단계까지 이르는 현상이다. 이 교수가 LG화학 연구진과 함께 개발한 이 신소재는 온도에 반응해 결합 구조가 바뀌며 전류 흐름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열폭주를 억제했다. 배터리에 못으로 구멍을 뚫는 관통 실험이나 10㎏ 무게의 추를 떨어뜨리는 충격 실험에서도 모두 문제가 없었다. 이종구 LG화학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이에 대해 “이른 시일 안에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가시적인 연구 성과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열폭주를 억제할 수 있는 신소재를 발표했다.

이 : “작년에 열폭주를 지연시키는 난연성 전해액을 개발했는데, 그걸 보고 LG화학에서 연락이 와서 함께 연구를 하게 됐다. 양극과 음극에서 소트가 발생했을 때 스파크와 발열 반응이 나오는데, 이 때 과도한 전류를 차단할 수 있는 내부 저항층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한동안 사회적인 이슈였다.

이 : “사실 전기차 이차전지 화재 사고의 빈도는 내연기관차보다 낮다. 화재 사고에 대한 대처가 익숙하지 않은 게 문제다. 지금도 열폭주나 화재 전파를 막는 소재는 이차전지 모듈과 팩에 다 들어가 있다. 이걸 조금 더 개선하는 연구들이 진행 중이다. 물론 화재 초반에 가스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은 몇 가지 문제들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어떻게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하고 있다.”

–올해 함께 포스텍 교수가 됐다. 연구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나.

홍 : “결혼을 하고 KIST를 다닐 때 신혼 집이 남양주 별내였다. KIST 서울 홍릉 본원까지 매일 아침 출근길이 많이 막혔다. 출근에만 차로 30~40분이 걸렸는데, 매일 차에서 함께 있다 보니 서로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다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다.”

이 : “단점도 있다. 집에서도 늘 연구 이야기를 하다 보니 피곤해질 때도 있었다.”

홍 : “아이를 낳으면서 지금은 아무 때나 연구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육아만으로도 피로도가 높아지다 보니 지금은 서로 기운이 있어 보일 때 연구 이야기를 해볼까 말한다.”

–서울에서 포항으로 오기까지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 : “서울에서 5~6년 정도 잘 지냈지만 너무 붐비고, 치열하게 지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각자 부산과 청주 출신이라 서울에 모든 게 집중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포항은 분위기가 스탠퍼드와 비슷하다. 쾌적하고 바다도 보이고 아이를 키우기에도 안전하다.”

홍 : “포스텍으로 옮기기 전에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기존 포스텍 배터리공학과 교수들을 보면 우리가 허리 역할을 하면서 서울이나 수도권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포스텍과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지역 대학들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포스텍이 살아나고 우리도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작게나마 지역을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연구 측면에서 포스텍으로 옮긴 이유는.

이 : “좀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평가나 실험을 하려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인프라를 늘리려면 공간이 필요한데 포스텍은 지역에 있다 보니 KIST보다 빈 공간이 많아서 그게 가능했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데 포스텍이 더 유리했다.”

홍 : “제 분야가 가속기를 활용해서 소재 자체가 원자 단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할 때도 스탠퍼드 선형가속기 센터(SLAC)에서 일했다. 포스텍에는 방사광가속기가 있기 때문에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오랜 기간 함께 연구하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 : “걱정해주던 사람도 많았다. 서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연구자 생활 초반에는 각자의 정체성을 분리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공동 연구를 할 때 시너지가 잘 나는 편이다. 함께 연구하는 게 자연스럽다 보니까 성과를 나누고 배제하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함께 한다.”

홍 :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곳에 있으려고 한다. 같이 해서 좋은 성과가 나오면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면 인정해주더라. 함께 우수한 후배 연구자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KIST 같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은 아니다 보니, 학교로 함께 옮긴 것 같다.”

–후배 연구자들에게 조언한다면.

홍 :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하기 보다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찾고 고민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서울에 있는지, 지방에 있는지 따져보고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이 : “미국에서 충격받은 게 저마다 개성이 굉장히 강하고, 그걸 존중해주는 문화였다. 다양성이 모였을 때 생기는 활기가 있다. 한국은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규정도 정해져 있는데, 미국은 굉장히 새로운 문화였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가지려면 개인이 각자의 색깔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주체적, 독립적인 삶을 개인이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둘이 멀리 떨어진 채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걸 지키면서 함께 연구하고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노력한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 https://doi.org/10.1038/s41467-024-52766-9

Energy & Environmental Science(2024), DOI : https://doi.org/10.1039/D3EE0452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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