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점차 뒤집은 전율의 승리 이면..‘낮아진 마운드’ 숙제 확인한 한국야구
[타이베이(대만)=뉴스엔 안형준 기자]
결국 마운드 문제가 두드러졌다. 대회 성패를 떠나 큰 숙제를 안은 한국 야구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11월 16일 대만 타이베이의 티엔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라운드 4차전 도미니카 공화국과 경기에서 승리했다.
대표팀은 경기 후반 두 차례 빅이닝을 만든 타선 집중력을 앞세워 9-6 역전승을 거뒀다. 0-6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은 쾌승이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역전승이었다. 결승타를 때려낸 박성한은 "전율이 일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숙제도 여실히 남은 경기였다. 비록 승리했지만 이날 대표팀은 초반부터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선발 임찬규가 1회부터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1회에는 실점하지 않았지만 2회 무사만루 위기에 몰리며 1점을 내줬다. 1실점으로 막아낸 것이 다행이었다. 3회를 삼자범퇴로 막아낸 임찬규는 4회 첫 두 타자에게 2루타, 홈런을 내준 뒤 3이닝 3실점으로 강판됐다.
이후 나온 불펜들의 실점도 이어졌다.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소형준은 1사 후 연속 2안타, 2사 후 적시타를 허용해 1실점했다. 5회 등판한 조병현도 실점했다. 5회 2사 후 임찬규에게 홈런을 뽑아냈던 아리스멘디 알칸타라에게 솔로포를 얻어맞았다. 조병현은 6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냈지만 리카르도 세스페데스에게 2루타, 앨런 핸슨에게 적시타를 내줘 1.2이닝 2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됐다.
쿠바전, 한일전에 3일 연속 불펜이 많은 점수를 준 대표팀이다. 쿠바전에서는 믿었던 김택연이 무너지며 4점 모두를 불펜이 내줬다. 한일전에서는 선발 최승용이 2실점을 기록한 뒤 불펜이 4점을 허용해 역전패를 당했다. 그리고 이날은 선발 임찬규가 3실점을 기록한 뒤 불펜이 추가 3실점해 점수차가 크게 벌어졌다.
5회 2사까지 도미니카 선발 프랭클린 킬로메에게 '퍼펙트'를 당한 타선의 침묵도 문제였지만 결국 경기 초중반 마운드가 도미니카 타선의 기세를 막아내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번 대표팀은 대회 전부터 선발 부족 문제가 대두됐다. 원태인과 손주영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에이스급으로 기대한 선발투수 두 명이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은 고영표, 곽빈, 엄상백, 최승용에 임찬규를 추가 소집해 선발 로테이션을 준비했고 결국 최종 엔트리에서는 엄상백이 탈락하며 4명의 선발투수를 데리고 대만 땅을 밟았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에이스'라 부를만한 피칭을 하지 못했다. 1차전 대만전 선발을 맡은 고영표는 2이닝 6실점으로 무너져 패했고 2차전 쿠바전에 나선 곽빈은 실점 없이 마운드를 지켰지만 4이닝 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3차전 일본전에 등판한 최승용은 1.2이닝 2실점에 그쳤고 도미니카전을 맡은 임찬규도 3이닝 3실점에 그쳤다.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곽빈이 이번 대회 대표팀 선발투수 중 가장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다.
선발이 한 번도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불펜에 부담이 가중됐다. 류중일 감독은 이날 도미니카전에 앞서 "선발들이 빨리 무너지니 불펜에 과부하가 걸린다. 임찬규가 긴 이닝을 던져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4경기에서 선발이 합계 10.1이닝 밖에 소화하지 못한 대표팀은 불펜이 무려 23.2이닝을 책임져야 했다. 선발의 두 배 이상의 이닝을 책임지며 부담이 가중된 불펜들은 4경기에서 11실점을 기록했다. 물론 비자책 실점도 있었지만 '철벽 불펜'이란 말이 무색한 수치다.
다만 무너진 불펜 중에 정작 '과부하'가 문제가 될 수도 있는 투수는 일본전에 부진한 곽도규 뿐이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문제다. 곽도규는 대만전, 쿠바전에 모두 아웃카운트 1개를 책임지는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한 뒤 일본전에서 아웃카운트 2개를 맡자 무너졌다. 물론 실제 마운드에서 던진 공이 많지 않더라도 3연투를 한 것인 만큼 부담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곽도규를 제외하면 쿠바전의 김택연, 도미니카전의 소형준, 조병현 등은 과부하와는 무관한 선수들이었다. 체력 문제보다는 젊은 투수들이 국제대회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흔들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1년도 더 전부터 세대교체를 천명했음에도 대표팀은 원태인, 문동주, 손주영이 빠지자 30대에 접어든 고영표, 임찬규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경쟁력 있는 젊은 선발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또 한 번 뼈저리게 느낀 한국 야구다.
불펜 부문에서는 박영현의 건재를 확인했고 김서현, 유영찬 등의 국제대회 경쟁력을 발견했다는 분명한 소득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린 투수들에게 아직은 다듬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는 점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류중일 감독이 대회 내내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타선의 감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상대 강한 투수가 좋은 컨디션으로 실투 없이 피칭한다면 공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뼈아픈 대만전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꺼낸 말이지만 이는 투타 입장을 바꿔도 적용이 된다. 대표팀의 좋은 투수들이 좋은 공을 던진다면 아무리 강한 타선도 막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야구는 결국 '투수놀음'이다. 강팀은 높은 마운드와 탄탄한 수비를 기본으로 탄생한다. 연이틀 선전을 펼친 대표팀이지만 마운드에 대한 숙제는 확실히 확인하게 됐다.(사진=고영표/뉴스엔DB)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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