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배우들이 일냈다…퀴어코드 삭제 논란도 막지못한 ‘정년이’ 대박[TV보고서]

황혜진 2024. 11.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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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토일드라마 ‘정년이’ 제공
사진=tvN 토일드라마 ‘정년이’ 제공
사진=tvN 토일드라마 ‘정년이’ 제공
사진=tvN 토일드라마 ‘정년이’ 제공

[뉴스엔 황혜진 기자]

여성 배우들이 제대로 일을 냈다.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연출 정지인)로 연말 안방극장을 점령한 것.

10월 12일 첫 방송된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윤정년(김태리 분)을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다룬 작품. 11월 17일 방송되는 12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정년이'는 믿고 보는 배우로 손꼽히는 김태리의 차기작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김태리는 2018년 방영된 tvN '미스터 션샤인'을 필두로 2022년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지난해 최우수 연기상을 안겨 준 SBS '악귀'까지 출연한 드라마를 연달아 흥행시켰다. 여기에 MBC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제34회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정지인 감독이 메가폰을 받아 기대감을 더했다.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떠올랐지만 시작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tvN 편성이 확정되기 전 '정년이' 편성을 검토했던 MBC가 9월 업무상 성과물 도용으로 인한 부정경쟁방지법 및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근거로 '정년이' 제작사 스튜디오N(드라마 메인 제작사), 매니지먼트mmm(공동 제작사이자 김태리 소속사), 앤피오엔터테인먼트(공동 제작사이자 신예은 소속사)에 재산 가압류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인용했기 때문.

MBC는 작품 제작을 위한 자료 조사, 촬영지 섭외, 배우 캐스팅 등 사전 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에도 편성이 불발되며 막심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년이' 제작사 측은 "'정년이'는 제작사들의 주도 하에 모든 비용을 부담해(MBC로부터 단 1원도 받은 적이 없음) 기획 개발한 작품이고 MBC는 촬영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제작사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작비 협상을 지연해 제작사가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한 MBC의 조건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며 "MBC는 제작사들과 '정년이'와 관련된 구두 합의를 포함 어떠한 계약도 체결한 사실이 없고, 제작사는 명시적인 편성 확정을 고지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하며 논란을 일단락 지었다.

각색 과정에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원작에 존재하는 부용이 캐릭터가 삭제된 것. 부용이는 윤정년의 1호 팬이자 윤정년과 묘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인물이다. 이에 예비 시청자들은 퀴어 코드에 거부감을 표하는 일부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무리수 각색을 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제작진은 제작발표회에서 상대적으로 방대한 원작 내용을 12부작으로 축약하는 과정에서 부용이 캐릭터가 불가피하게 삭제됐으며 부용이 캐릭터가 지닌 정서를 다른 캐릭터에 녹이는 방식으로 극을 풀어 나갈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뚜껑 열린 '정년이'는 윤정년과 부용이와의 관계성을 윤정년의 매란 국극단 절친 문주란 캐릭터에게 투영했다. 16일 방송된 11회에서 문주란은 윤정년에게 오디션 상대역으로 윤정년이 아닌 허영서를 택했던 진짜 이유를 고백하며 우정을 넘어섰지만 정확히 명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털어놨다. 모친의 반대로 국극을 그만두고 결혼하게 된 문주란은 "내 하나뿐인 왕자님"이라며 윤정년에게 눈물의 이별을 고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암초를 극복한 '정년이' 시청률은 그야말로 순항했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4.8%로 출발한 시청률은 상승세를 거듭하며 10회 14.1%까지 치솟았다. '정년이'는 매주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로 승승장구했다. 시청률 호조에 그치지 않고 K-콘텐츠 온라인 화제성 분석 기관인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 압도적 1위도 기록했다.

승승장구 행보에는 여성 국극이라는 신선한 소재가 주효했다. '정년이'는 여성 국극을 재현한 최초의 드라마로서 정년이를 중심으로 한 국극 배우들의 성장 서사라는 메인 플롯을 구축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극중극을 심도 있게 구현하며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이끌었다. '춘향전', '자명고', '바보와 공주' 등의 만듦새는 가히 상찬할 만했다.

꿈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아름다운 열정과 연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였다. 김태리는 소리 천재 윤정년 캐릭터를 체화하고자 소리만 무려 3년간 배웠다는 전언. "김태리 아닌 윤정년은 상상하기 어렵다"라는 극찬이 나올 정도로 김태리 표 윤정년은 흠잡을 데 없었다.

김태리만 빛난 작품은 아니었다. 정년이의 막강한 라이벌로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허영서 역의 신예은, 듬직한 매란 국극단 단장 강소복 역의 라미란, 매란의 매혹적 왕자 문옥경 역의 정은채,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었던 문옥경 바라기 서혜랑 역의 김윤혜, 이번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홍주란 역의 우다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던 박초록 역의 승희, 한 신을 위해 '추월만정'을 1,000번 이상 연습하며 특별 출연 그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낸 채공선 역의 문소리 등까지 '정년이'는 여성 배우들이 주축이 된 드라마라는 점에서 한결 유의미한 작품으로 남을 전망이다.

뉴스엔 황혜진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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