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exclusive] 펩에게 영감 받고, 클롭을 대체한다: 아르네 슬롯

정지훈 기자 2024. 11. 17.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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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그냥 묻히기에 아까운 기사만 모았다. 영국 최고의 풋볼매거진 의 독점 콘텐츠를 전달한다. '별'들의 단독 인터뷰부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하시라. [편집자주]


리버풀의 새로운 감독은 점점 많아지고 있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제자 중 하나다. 과르디올라와 함께 일해 본 적도 없고, 마주친 적도 없지만 말이다. ‘안필드의 전설’ 위르겐 클롭 감독의 뒤를 이어야 하는 임무를 맡은 슬롯은 자신의 우상처럼 영국 축구에 이름을 남기길 원한다.


글 Chris Flanagan 추가 취재 Andy McGrath 에디터 이은영


아르네 슬롯에게 영감을 준 경기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경기로부터 약 18시간이 지난 후에 열렸다.


2011년 5월, 클롭 감독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축하하고 있을 때, 슬롯은 FC 즈볼레의 미드필더였다. 그날은 즈볼레가 VVV 펜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여 네덜란드 1부 리그 승격이 좌절된 슬픈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바로 전날 저녁 슬롯은 대단한 경기를 봤다. 바르셀로나가 웸블리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최고의 경기력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우승한 것이다. 슬롯의 우상인 과르디올라가 지휘한 경기였다. 슬롯은 이 경기를 자신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정했다.


2022년, 슬롯은 "지난 20년 동안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감독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가 하는 일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리하며, 축구를 위해서도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과르디올라는 50년 후에도 여전히 회자될 것이다."


이제 그 제자가 스승에게 도전할 차례다. 슬롯의 리버풀은 클롭이 남긴 선수들과 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을 되찾기 위해 싸워야 한다. 도전 상대는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다.


미래의 감독



과르디올라는 선수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유러피언 컵을 들었다. 하지만 슬롯은 그런 경험이 없다. 독일 국경에서 몇 마일 떨어진 네덜란드의 베르겐트하임 출신인 슬롯은 어린 시절 인근 클럽인 즈볼레에 입단했다. 그는 당시 유려한 몸놀림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잡지 ‘풋볼 인터내셔널’의 마르테인 크라벤담은 "당시 즈볼레의 감독이 내 친구 얀 에베르세였다. 그는 내게 슬롯이 스스로의 의견을 가진, 감독보다도 더 잘 아는 매우 좋은 선수였다고 했다"라고 에 전했다. "슬롯은 매우 기술적인 선수였지만, 얀은 그가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슬롯은 NAC 브레다로 팀을 옮겼는데, 그곳의 감독 헹크 텐 케이테 역시 같은 말을 했다."


슬롯은 즈볼레가 1부 리그로 승격할 당시 팀의 주요 득점원으로 활약하며 2002년 NAC에 합류했다. 에베르세 감독은 "슬롯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에 의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슬라이딩 태클을 기대해선 안 된다"며 슬롯의 능력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슬롯의 새 팀 NAC는 에레디비시 상위권 경쟁을 목표로 했다. 그의 첫 시즌에 NAC는 4위로 리그를 마무리했고, 이로써 슬롯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유럽대항전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UEFA컵에서 바비 롭슨의 뉴캐슬을 만나 합계 0-6으로 패배한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그때부터 클럽은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슬롯은 스파르타 로테르담으로 이적했다가, 나중에 다시 2부 리그의 즈볼레로 임대 이적해 에베르세 감독과 함께했다.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VVV 펜로에 패하고 1년 후, 그는 다시 에레디비시로 복귀한 즈볼레에서 한 시즌을 더 뛰고 34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2012-13시즌 마지막 날, 슬롯은 ADO 덴 하흐와의 홈경기 막판에 교체 투입되어 즈볼레에서의 330번째이자 마지막 경기를 치르며 영웅 대접을 받았다. 특히 슬롯이 상대팀 선수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내며 제칠 때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슬롯은 이미 감독으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팀 동료인 브람 반 폴렌은 "슬롯은 훈련 중에도 끊임없이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는 이미 감독이 되는 중이었다"라고 했다.


즈볼레의 스태프로 일했던 전 레인저스 수비수 베르트 콘터르만은 "슬롯이 밤낮으로 바르셀로나를 지켜본다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포지션 플레이나 프리킥 전술을 지켜봤고, 다음 날 아침에는 자신이 본 것에 흥분한 상태로 팀에 도착하곤 했다.



슬롯은 1년 동안 즈볼레의 유소년 팀에서 코치직을 맡으면서 경기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가능한 모든 지식을 수집했다. 현재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감독이자, 최근까지 리버풀의 브랜든 로저스 감독과 클롭 감독을 보좌했던 펩 린더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린더스는 포르투에서도 8년간 일했다. 린더스는 "슬롯이 축구 이야기를 하러 네덜란드에 있는 내 집까지 찾아왔었다. 한참을 운전해 와서는 미친 듯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모든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슬롯은 곧 캄뷔르의 1군 코치진에 합류하여 미래의 아약스 감독인 마르셀 카이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둘은 캄뷔르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지만 슬롯에게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들을 공유했다.


‘풋볼 인터내셔널’의 크라벤담은 "그들은 세트피스, 역습, 플레이 방식 등 축구에서 그들이 본 것들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슬롯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과르디올라였지만, 그는 마르셀로 비엘사 역시도 존경했다"고 밝혔다.


캄뷔르의 카이저 감독이 아약스 2군으로 떠나고 후임으로 부임한 롭 마스 감독이 2부 리그에서의 부진한 출발로 경질되자, 슬롯은 동료 코치인 십케 헐쇼프와 함께 임시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두 사람은 팀의 순위를 14위에서 3위로 끌어올리며 승격 문 앞까지 도착했다. 또한, 그들은 아약스를 상대로 KNVB컵에서 캄뷔르를 충격적인 승리로 이끌어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후 승부차기에서 AZ 알크마르에 패한 것이 아쉬웠다.


AZ 알크마르는 슬롯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고용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9년 여름에 욘 반 덴 브롬이 떠나고 슬롯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9-20시즌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시즌이었다. 리그 한 경기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붕이 무너졌다. 말 그대로 정말로 무너졌다. 강풍으로 인해 AZ의 홈구장 AFAS 스타디온의 구조물이 붕괴된 것이다. 팀은 4개월 동안 홈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암스테르담의 반대쪽에 위치해 있는, 약 72미터 떨어진 헤이그까지 이동해야 했다.


AZ는 유로파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호성적을 거뒀지만, 얼마 후 리그에서 FC 트벤테를 격파할 때는 겨우 4,689명의 팬들만이 경기장을 찾았다. 이는 알크마르에서 포르투나 시타드를 꺾었던 시즌 개막전 관중의 3분의 1에 불과한 숫자였다. 그러나 11년 동안 에레디비시 상위권에 들지 못했던 AZ는 단념하지 않고 이전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 우승팀인 에릭 텐 하흐의 아약스를 상대로 깜짝 우승 도전에 나섰다.


아약스의 6점 차 리드는 3월 초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슬롯의 AZ가 2-0으로 승리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닥쳤고 시즌은 9경기를 남겨두고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시즌은 재개되지 않았다. 공식적인 리그 우승팀 역시 없었다. 기록으로는 아약스가 골 득실차에서 앞섰다고 되어 있다.


“슬롯은 여전히 그 해에 AZ가 챔피언이 되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크라벤담 기자가 증언을 이어갔다. “그가 한 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10개월간의 컴백 투어



페예노르트는 슬롯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많은 팀 중 하나였다. 2020년 12월 AZ가 유로파리그에서 나폴리에 승리한 이후, 그들은 시즌 막바지에 슬롯을 감독으로 선임하기 위해 비밀리에 회담을 추진했다. 당시 페예노르트는 부진을 거듭하며 실망스러운 5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기 직전이었다.


AZ는 슬롯의 비밀 계약에 대해 알게 되고 화가 나서 그를 즉시 해고했다. 이에 대해 크라벤담 기자는 "그래도 좋은 점은 6개월 동안 그가 페예노르트를 지켜보며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답했다. "슬롯은 그 기간 동안 스카우트처럼 경기를 지켜보고 선수들을 살펴봤다고 한다. 그리고 슬롯이 페예노르트에 도착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페예노르트의 트레이닝 캠프에 갔다. 슬롯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사고방식을 가져왔다. 그는 강력한 압박 축구를 원했다. 마치 페예노르트를 22세기에 투영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그가 주는 느낌과 축구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도 그랬다."


"슬롯은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이다. 그의 기자회견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가 하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가끔은 마치 대학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35분 동안 유머 감각을 발휘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그는 언제나 행복해하고 항상 웃고 있었다. 슬롯은 내가 기자로서 같이 일해 본 감독 중 최고다."


슬롯의 강한 압박 축구는 선수들이 많이 뛰어야 하는 스타일이다. 그가 선수 시절 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 팀 동료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슬롯의 팀 동료였던 브람 반 폴렌은 "슬롯은 선수들이 잘 뛰기를 원하지만, 정작 본인은 선수 시절에 웨이트 트레이닝 룸에 들어가 본 적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웃었다.


슬롯은 선수들에게 압박 전술을 가르칠 때 클롭의 리버풀 영상을 예시로 자주 사용했다. 슬롯 부임 첫 시즌에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했던 미국인 미드필더 콜 바셋은 "그는 우리에게 항상 리버풀 영상을 보여주곤 했다"라고 답했다. "우리가 최고 수준에서 뛰고 싶다면 바로 이렇게 해야 한다며 그가 강조하던 팀이 리버풀이었다."



슬롯의 첫 프리시즌에 페예노르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꺾었다. 이날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슬롯을 밀칠 정도로 격분했다. 한편 로빈 판 페르시가 스태프에 합류하면서, 팀은 에레디비시에서 훨씬 좋은 성적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바로 프리스티나에서 티라나까지의 특별한 여행이다. 약 185km나 되는 장거리 원정이었지만 그로부터 10개월간의 모험 끝에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결승에 진출하고 클럽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놓은 여정이었다.


페예노르트는 2002년 홈에서 열린 UEFA컵에서 우승한 이래로 유럽 대항전에서 16강에 진출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슬롯이 온 후 그들은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서 43골을 넣었고 팬들은 다시금 열광했다. 유럽 전역에서 엄청난 수의 팬들이 페예노르트를 따랐다.


컨퍼런스 리그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일부에서는 이 리그가 클럽에 실질적인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슬롯의 페예노르트는 7월에 열린 첫 예선 2차전에서, 경기 종료 23분 전까지 탈락이 눈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크라벤담 기자가 회상했다. "페예노르트는 코소보의 FK 드리타를 상대로 1차전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거두고 돌아왔다. 그러더니 홈에서는 정말 아무도 들어 본 적 없는 이 팀에게 거의 탈락할 뻔했다. 모두가 '이 새로운 감독이 말은 많이 해도 바뀌는 게 많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경기 막판 골을 넣으며 승리를 거뒀고, 슬롯은 알리레자 자한바크시와 게르노트 트라우너라는 단 두 명의 선수만 새로 영입해 결승전까지 파죽지세로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페예노르트를 다시 주목하고 그들을 매우 중요한 클럽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슬롯은 팬들이 다시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다. 팬들은 지난 몇 년 동안과는 달리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경기를 보러 갈 수 있었다. 페예노르트는 이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공격 축구를 펼쳤다."


페예노르트는 알바니아에서 조세 무리뉴의 AS 로마에 0-1로 패했다. 코소보에서의 컨퍼런스 리그 여정이 시작되고 약 308일 후였다. 그 해 여름 여러 스타 선수들이 떠났다. 타이럴 말라시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마르코스 센시는 본머스로, 루이스 시니스테라는 리즈로 이적했고, 컨퍼런스 리그 득점왕 시리엘 데셀스는 임대 계약이 끝나면서 팀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예노르트는 2022-23시즌에도 기세를 몰아 리그에서 단 2패만을 기록하며 에레디비시 우승을 차지했다. 심지어 그중 한 번은 리그 우승이 확정된 이후였다. 격렬한 라이벌 아약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18년 만에 거둔 첫 승을 포함해 13연승을 거둔 것이 주효했다. 유로파 리그로 한 단계 올라간 페예노르트는 홈에서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7-1로 완파하고 8강에서 무리뉴의 로마와 재회했다.


두 시즌 연속 네덜란드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된 슬롯은 시즌 막바지에 토트넘의 관심을 받았지만 오히려 페예노르트와 새 계약을 체결했다.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에 없었고, 페예노르트는 있었다. 새 시즌 페예노르트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셀틱과 라치오를 꺾었지만 유로파 리그로 내려가 또다시 로마를 만났고, 이번에는 무리뉴가 없는 그들에게 또다시 패했다. (리버풀 팬들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2024-25시즌에 슬롯은 로마를 만나지 않는다.)


페예노르트는 리그 2위에 그쳤지만, 이전 시즌보다 더 많은 승점(82점에서 2점 오른 84점)으로 최고 승점 기록을 경신했다. 득점은 더 많았고 실점은 더 줄었다. 아약스를 원정에서 4-0으로 이기기도 했는데, 이 경기는 아약스의 관중 문제로 중간에 중단되어 3일 후 남은 경기가 치러진 것이라 아약스에게는 더 부끄러운 결과였다. 심지어 아약스는 후반기 페예노르트 원정에서 0-6 완패를 당했다. 아약스의 에레디비시 사상 최악의 패배였다.


페예노르트는 34경기에서 91점이라는 기록을 세운 PSV의 기이한 시즌에 밀려 리그 2연패에 실패했다. 슬롯은 마지막 홈경기 이틀 전, 클롭의 후임으로 리버풀의 감독직 제안을 수락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엑셀시오르와의 홈경기에서 감동적인 작별을 고했다.


크라벤담 기자는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모두가 울고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하지만 모두들 '리버풀이니까 이해한다'라고 생각했다. 페예노르트는 리버풀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두 팀 모두 ‘You'll Never Walk Alone’을 응원가로 부르고, 사고방식도 조금은 비슷하다."


"페예노르트에서 슬롯이 얻은 가장 큰 상은 우승이 아니다. 3년 만에 클럽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일이다. 클럽에 돈이 정말 많은 것도 아니었고, 최고의 선수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최고의 코치가 있었다"라고 크라벤담 기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로테르담 근처에 사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아약스가 최고의 팀이었기에 그들을 응원하곤 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페예노르트의 팬이다."


클롭의 뒤를 이어, 아르네!



슬롯이 페예노르트에서 작별을 고하던 날 오후, 클롭은 안필드 한가운데에 서서 9년간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뒤로하고 리버풀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노래를 함께 부르며 모든 관중들이 함께하도록 독려했다. "아르네 슬롯, 나나 나나나-!" 그는 팬들이 자신을 위해 만든 구호를 개사해 후임 감독의 이름을 넣어 노래를 불렀다.


11년 전 알렉스 퍼거슨 경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맨유 부임을 알리며 했던 "당신들의 임무는 우리의 새 감독 곁에 서는 것이다"라는 연설의 클롭 버전이었다. 두 경우 모두 떠나는 감독이 일부 팬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리버풀의 평생 팬이자 TV 진행자인 콜린 머레이는 와의 인터뷰에서 "클롭이 관중들에게 자신의 응원 구호를 아르네 슬롯의 이름으로 바꿔 부를 때, 정말 '오 세상에'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슬픈 순간이었다. 바로 그래서 클롭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고 말했다.


결국 모예스는 퍼거슨을 대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슬롯의 임무는 그 못지않게 어려울 것이다. 클롭 같은 감독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전 리버풀 공격수 마이클 오언은 "힘들 것"이라고 곧장 답했다. "과르디올라가 부임하는 게 아니라면 누가 오든 클롭의 다운 그레이드였을 것이다. 때때로 그런 전설의 뒤를 따르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다. 우리는 이미 맨유와 아스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재능 있는, 우나이 에메리 같은 감독이라도 그 해답을 알고 싶어 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대치다. 트로피뿐만 아니라 클롭의 리버풀은 열광적인 분위기,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 멋진 플레이 스타일 등 환상적인 10년을 보냈다. 그만큼 기대치가 정말 높다. 하지만 리버풀 팬들의 성원은 대단하다. 어떤 클럽에서는 팀이 잘 못하고 있다면 팬들이 선수들을 지지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리버풀 팬들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절대 볼 수 없다. 그들은 팀과 감독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또한 슬롯은 매우 건강한 팀으로 들어왔다. 리버풀은 매우 좋은 스쿼드를 가졌고 마이클 에드워즈와 같이 클럽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 데려왔다. 뒤에 버티고 있는 구조가 강력해 보인다."


전 리버풀 골키퍼 데이비드 제임스는 클럽의 위계질서가 슬롯을 돕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구단이 수년 동안 주시해 왔던 인물이 슬롯이다. 팀이 원하는 올바른 성격 특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의 성격은 리버풀이 필요로 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다."


"그는 클롭과는 다른 성격이지만, 선수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모든 것이 그가 매우 괜찮은 사람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들과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행복한 선수들이 행복한 축구를 만들어낸다. 리버풀에는 경험이 풍부하고 슬롯이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똑똑한 선수들이 많다."



열정적인 팬층에 활기를 불어넣는 슬롯의 능력은 안필드에서 일하게 될 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클롭은 과거 7년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팬들을 열광시키며 안필드에서 성공할 수 있는 완벽한 템플릿을 갖춘 채로 머지사이드에 도착했다.


크라벤담 기자는 리버풀의 새로운 감독이 지난 시즌 맨유에서 8위에 그친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에릭 텐 하흐보다 영국에서 성공하기에 훨씬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들, 미디어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슬롯이 훨씬 더 낫다. 다른 매체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영국 언론에서 '어려울 텐데...슬롯이 누구야?'라고 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웃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감독을 데려온 것인지 모르고 있다. 물론 클롭 같은 감독의 후임 자리는 어렵다. 하지만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슬롯이다. 100퍼센트 확신한다. 이 감독은 리버풀에서 성공하지 못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감독이다."


"슬롯의 플레이 방식은 조금 다를 것이다. 그는 과르디올라처럼 좀 더 점유율 게임을 펼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선수들이 많이 뛰게 된다. 아마 선수들이 적응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모든 것이 안정된다면 그는 분명히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리버풀은 클롭 감독의 마지막 시즌에 3위로 밀려났다. 제임스는 클롭이 지금까지 안필드에서 이룬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슬롯이 따라가야 할 발자취가 정말 큰 것은 맞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할 정도의 압도적 강팀이었다. 반면 슬롯에게는 클롭이 하지 못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카를로 안첼로티를 보라. 팀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그는 순위를 올려놓기보다는 성공을 계속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슬롯에게는 클롭도 하지 못한 두 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통해 클럽에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언은 바로 우승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 "조만간 우리는 경기 스타일을 보고 얼마나 흥미로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감독에게 시간을 주는 것은 좋지만, 그는 이미 매우 좋은 스쿼드에 합류했다. 만약 5위로 시즌을 마치고 트로피를 따내지 못한다면 단초를 쌓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건 이미 갖춰져 있다."


"첫 시즌에 우승컵을 든다면 완벽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그는 매력적인 축구를 펼쳐야 하고 우승을 해내야 한다. 클롭이 그랬던 것처럼 도시와 시민들과 하나가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클롭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자'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리버풀에서 성공했던 또 다른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스도 같은 말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클럽과 도시의 문화를 이해하되, 그는 그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슬롯의 영웅인 과르디올라가 50년 후에도 회자된다면, 리버풀의 클롭과 베니테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슬롯은 그 대열에 합류하기를 원한다.


정지훈 기자 rain7@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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