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화 감독의 아름다운 스릴러, '이친자'[TF인터뷰]
그림자와 빛을 이용한 연출
"연기대상서 여자 신인상 꼭 받았으면"
[더팩트ㅣ문화영 기자] 배우 한석규의 출연만으로 화제가 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부녀 스릴러'라는 다소 독특한 설정을 갖고 있다. 송연화 감독은 이를 '아름다운 스릴러'로 재탄생시키며 시청자들에게 "가족, 동료 등 가까운 타인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15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극본 한아영, 연출 송연화, 이하 '이친자')는 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 분)가 수사 중인 살인사건에 얽힌 딸 장하빈(채원빈 분)의 비밀과 마주하고 처절하게 무너져가며 심연 속의 진실을 쫓는 이야기가 담기는 스릴러극이다.
최근 송연화 감독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이친자'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지막 회만을 앞뒀던 터라 그는 "범인을 끝까지 숨기려 단수나 복수로 표현하지 않았다. 범인의 마음으로 숨겨서, 에둘러서 표현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이친자'는 2021년 MBC 드라마 극본공모전에서 심사위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송 감독은 "당시 제목은 '거북의 목을 노려라'였다. 그러나 (연출 당시) 소시오패스와 프로파일링 책을 봤고 서적 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발견했다"며 "작가, 해당 출판사에 연락해 드라마 제목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작품은 MBC 공채 탤런트 출신 한석규가 '서울의 달' 이후 무려 30년 만에 MBC에 출연한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불렀다. 한석규는 지난달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33년 전 작성한 MBC 전속 계약서를 공개했고 "'이친자' 촬영 내내 이걸 들고 다녔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작품의 장르이자 주요 키워드는 '부녀 스릴러'다. 한석규와 채원빈은 서로를 의심하는 부녀 관계다. 극 중 한석규는 범죄자의 심리를 꿰뚫는 최고의 프로파일러지만 딸의 마음을 읽지 못해 혼란에 빠지는 아빠 장태수 역을 맡았고 채원빈은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이지만 아빠를 닮아 사람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장하빈을 연기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한 한석규와 채원빈의 캐스팅 과정이다. 송 감독은 한석규를 첫 미팅한 당시를 설명했고 그의 표정에서 '한석규 캐스팅 성공'이 얼마나 기쁜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채원빈의 눈빛을 칭찬했다.
"장태수를 한석규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대본을 보내드렸는데 답이 금방 왔죠.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집가서 일기를 썼는데요. '내가 꿈꾸던 배우의 이상향을 만난 것 같다' '캐스팅이 안 돼도 이 사람(한석규)을 만난 것에 기쁘다'고 썼어요.(웃음) 캐스팅 여부보다 인상 깊었던 거죠. 캐스팅 전 가장 부담이 높은 캐릭터는 하빈이었는데요. 오디션에서 채원빈을 봤을 때 '낯선 얼굴을 찾았다'를 느꼈어요. 눈을 봤을 때 서늘한 면도 있고 신비하면서 매력적이었죠."
'스릴'을 표현하기 위해 송 감독은 다양한 장치를 활용했다. 하빈의 그림자를 두 개로 나눠 긴장감을 높였고 화면 대칭을 통해 인물들 사이의 '선'을 표현했다.
"그림자와 빛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재예요. 그림자로 인물을 표현하려 했고 정확히 전달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저게 뭘까?' 하는 해석적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빠와 딸은 비슷해 보이지만 대척점에 있어요. 대칭은 어떻게 보면 안정적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묘한 긴장감'도 갖고 있고요."
미술적 장치도 빼놓을 수 없다. 메인 포스터에도 나와있듯 태수와 하빈은 두 사람이 쓰기엔 다소 큰 식탁을 사용하고 서로 끝자리에 앉아 있다. 이를 통해 대화가 단절됐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작품은 살인 사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송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 작품의 몰입도를 끌어올린 셈이다.
"작품서 중요한 곳이 집과 취조실이에요. 부엌에서의 대화가 중요하다 보니 취조실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식탁 길이도 취조실 책상과 같고요. 또 한국 집에서 말이 안 되긴 한데(웃음) 긴 복도 끝에 하빈의 방이 있는 것도 '저 방에 들어가기까지 숨겨진 게 많다'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굳이 (살인) 장면을 넣지 않은 건 실제로 보는 것보다 상상하는 게 더 공포감이 드니까요. 심의적인 부분보다 시청자들이 그런 것까지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정도로 전달되지 않을까요?"
'이친자'는 송 감독의 첫 메인 연출작이다. 신인 작가와 함께한 첫 작품이 부담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작품은 '미친자'라고 불릴 정도로 마니아층 형성에 성공했고 넷플릭스 1위에 올라가며 글로벌적 인기를 끌었다. 시청률에선 눈에 띄는 상승을 보이진 못했지만 유의미한 성적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우리끼린 자신이 있었거든요. (인기) 예상을 하긴 했지만 과한 애정은 너무 감사하죠. 인기 요인으론 '재밌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이 아닐까 싶네요. 부담이 컸죠. 대본을 크게 수정하며 숙성 시간이 길어졌는데요. 먼저 작가님과 기획 PD가 1년 반 정도 작업을 한 뒤, 만들어진 대본을 보고 제가 수정할 부분을 언급해 또다시 6개월이 걸렸어요. 작가 배우 스태프들의 도움이 있어 제 역량에 비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죠. 이 기간을 이해해 준 회사 데스크랑 EP님 너무 감사드려요."
지상파와 레거시 미디어에서 여성이 메인 연출로 나서는 스릴러가 보기 드물기에 송 감독의 '이친자'는 더욱 깊은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송 감독은 "훌륭한 선배들이 길을 닦아주며 여성 연출자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성별과 상관없는 '장르'에 대한 선호도일 수도 있지만 방송 환경이 많이 변하고 오픈되고 있는 좋은 변화"라고 말했다.
송 감독이 제작발표회에서 말한 "믿음과 의심에 관한 이야기" "가족 동료 등 가까운 타인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가 '이친자'가 가진 색깔을 '아름다운 스릴러'라고 정의한 이유이기도 하다.
"항상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초반엔 하빈이가 제일 의심스러운데 연민과 불쌍함을 느끼게 되잖아요. 마지막 회에 어떤 식으로 해소가 되는지, 이뤄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파요. '이친자'는 아름다운 스릴러. 시청자들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스릴러 안에도 있어야 하거든요. 그게 미학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고 배우의 섬세한 연기가 될 수도 있죠. 꼭 '잔인함'이 아닌 다른 요소들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송 감독은 '2024 MBC 연기대상'에 대한 욕심도 살짝 내비쳤다. 그는 "연기대상과 여자 신인상은 꼭 받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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