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전자' 추락에 韓개미도 '아메리카 퍼스트'[선데이 머니카페]
삼성, 경쟁력 하락···"1년간 10조 자사주 매입"
개인은 해외 종목, 외국 투자 상품으로 '머니무브'
'美S&P500' ETF, 22년만에 'KODEX200' 제쳐
성장률·정책 등 다 밀려···'무정부 상태냐' 아우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한국과 다른 글로벌 증시 간 온도 차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증시만 승증장구하고 다른 아시아 증시는 눈치 보기 장세에 들어간 가운데 우리나라 증시만 최악의 상황으로 고꾸라지고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탈출 러시를 시작한 외국인투자가에 이어 국내 개인투자자들까지 우르르 미국 증시로만 몰려가는 분위기입니다. 도대체 한국 증시는 왜 이렇게 됐는지, 탈출구는 있는 것인지 선데이 머니카페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12일 올 8월 ‘블랙먼데이’ 이후 석달 만에 처음으로 2500선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조치가 국내 기업들에 피해를 집중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는데요. 원·달러 환율마저 1400선을 넘어서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날 52주 신저가 종목만 코스피 230개, 코스닥은 580개에 달했고요.
그나마 12일에는 대만 등 다른 아시아 증시도 동반 약세를 보였지만 13일에는 국내 증시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코스피는 2417.08까지 떨어지면 지난해 11월 13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 됐는데요. 코스닥도 지난해 1월 6일 이후 가장 낮은 689.65로 내려갔습니다. 이날 코스피가 받은 충격은 전날 미국 나스닥(-0.09%)은 물론 일본 닛케이(-1.66%), 중국 상하이종합(0.51%) 등 다른 국가 주요 지수보다도 훨씬 큰 수준이었습니다. 코스피는 15일에도 장중 2300대까지 밀려났습니다.
미국 대선 직후인 6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닛케이와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각각 0.64%, 1.54% 올랐지만 코스피와 코스닥은 이 기간 무려 6.20%, 8.27%씩 떨어졌습니다. 똑같이 수출 지향형 경제 구조를 갖춘 대만의 자취엔지수가 같은 기간 0.54% 하락하는 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한국 증시의 소외 현상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강해지는데요. 미국 뉴욕 증시는 그 동안 사상 최고가를 몇 번이나 갈아치웠고요.
우리 증시만 유독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당선인 수혜주에 베팅하는 현상)’에 취약해진 것은 반도체·2차전지 등 한국 주력 산업의 미국 밀착도가 그간 다른 나라보다 컸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원래도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지닌 데다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추진한 자유진영 공급망 동맹 전략에 가장 적극적으로 화답한 나라이다 보니 트럼프 당선인의 정반대 정책에 악영향을 크게 입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 고대역폭메모리(HBM) 부문의 경쟁력이 SK하이닉스 등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전자가 유독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인데요. 삼성전자는 최근 연일 하락한 끝에 4만 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가 4만 원대 주가를 기록한 것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6월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이후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법에 따라 약속한 64억 달러 보조금 지급이 불투명해졌다는 점인데요. 이와 별도로 삼성전자에 대한 증권가의 실적 전망도 점점 어두워지는 형국입니다.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회사 시스템이 정말 제대로 된 쇄신의 길을 가고 있는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도 여전히 크고요.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20% 전후를 차지하는 종목의 주가가 반토막이 나니 지수 자체가 버티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15일 저가 매수세 유입으로 주가를 일부 회복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반등을 꾀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삼성전자는 주가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이날 “앞으로 1년 동안 총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겠다”고 공시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15일에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인수팀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를 계획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국내 증시의 2차전지주들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습니다. 그야말로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이 걸리는 형국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들의 국내 증시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에 베팅하는 모습인데요.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1일 주식·채권·부동산 등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국내 ETF의 순자산 총액은 58조 2771억 원을 기록해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확정 직전인 5일 55조 4896억 원보다 2조 7875억 원이 더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ETF 시장 전체 순자산 총액이 163조 5117억 원에서 165조 222억 원으로 1조 5105억 원 늘어나는 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해외 투자 ETF 자금 규모만 유독 급증한 셈죠. 해외 투자 ETF 순자산 가운데서는 주식 금액이 33조 4090억 원에서 35조 6851억 원으로 2조 2761억 원 불어나 전체 증가분의 81.7%를 차지했습니다.
해외 투자 상품과 달리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 ETF 순자산은 외려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금투협에 따르면 국내 투자 ETF의 순자산 총액은 5일 108조 221억 원에서 11일 106조 7450억 원으로 1조 2771억 원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특히 주식 순자산 규모가 38조 1599억 원에서 36조 6415억 원으로 1조 5184억 원이나 쪼그라들었는데요. 해외와 국내 투자 ETF 간 주식 순자산 액수 차이가 고작 4거래일 만에 4조 7509억 원에서 9564억 원으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해외 투자 공모펀드 순자산도 5일 105조 2907억 원에서 11일 109조 4843억 원으로 4조 1936억 원이나 급증했고요.
국내 증권사들도 한국 종목 투자 ETF보다는 미국 주식 투자 상품 시장의 성장에 당분간 더 큰 기대를 거는 분위기입니다. 삼성자산운용과 신한자산운용의 미국 인공지능(AI) 전력 ETF의 경우는 11일 나란히 순자산 1000억 원, 500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운용의 ‘KODEX 미국AI전력핵심인프라 ETF’의 경우 올 7월 9일 상장 이후 이달 11일까지 넉 달 동안 무려 27.7%의 수익률을 거뒀는데요. 해당 ETF가 가장 높은 비중으로 편입한 미국 전력망 기업 GE버노바의 주가가 대선 이후에만 18.3%나 상승한 효과라고 합니다. 상장 이후 개인투자자가 이 ETF를 순매수한 누적 액수는 397억 원에 달했습니다.
신한운용의 ‘SOL 미국AI전력인프라 ETF’도 11일 기준으로 최근 한 달, 3개월간 각각 21.44%, 47.77%의 수익률을 거둬 국내 AI 관련 37개 ETF 가운데 가장 높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개인투자자의 최근 한 달간 순매수 금액은 그 직전 같은 기간의 15배 이상 수준으로 증가해 236억 원까지 불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추종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S&P500 ETF’와 ‘TIGER 미국나스닥100 ETF’ 순자산의 경우 6일과 7일 국내 해외주식형 상품으로는 첫 번째, 두 번째로 5조 원과 4조 원 벽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TIGER 미국S&P500 ETF는 2002년 국내 ETF 시장 출범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KODEX200’의 순자산까지 넘어섰습니다. TIGER 미국S&P500’ 순자산은 지난해 말 2조 1684억 원에서 이달 13일 5조 4583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한 반면 KODEX200의 순자산은 6조 5612억 원에서 5조 3587억 원으로 감소한 탓이었습니다. 삼성운용의 KODEX200은 국내 ETF 시장이 열린 2002년 상장해 22년 동안 최대 규모 주식형 상품으로 군림했는데요. ETF 시장이 국내 투자 위주에서 해외 투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한국 증시의 부진이 깊어지다 보니 극심한 손해를 본 일부 투자자들은 ‘무정부 상태냐’며 분통까지 터뜨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시장을 방치하면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그간의 노력이 공염불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은데요. 시장 혼란이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비롯한 최대 37조 6000억 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내년에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단기적으로 증권시장안정펀드라도 다시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고요. 그 이전에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세제 혜택이라도 더 늘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내년 초 취임해서 실제 정책을 단행할 때까지 지금과 같은 기대와 실망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정책을 단행하면서 실제 손익을 따지는 상황이 돼야만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예측하기 힘든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이고요.
최근 들어 내내 소외되는 한국 증시. 가뜩이나 이제는 경제성장률도 미국에 밀리는데 각종 악재만 이어지니 점점 더 글로벌 소형 시장으로 전락할까 걱정입니다. 결국 상장사들의 기초적인 성장성이 확보돼야 추세적인 반등이 나타날 텐데요. 현재로서는 믿을 것은 트럼프 당선인의 중국 압박에 따른 반사 이익 밖에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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