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질서가 바뀐다…트럼프가 몰고 올 변화들 [노영우의 스톡피시]
2016년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때 사람들은 ‘괴짜 대통령’에 놀랐다. 기존 정치 문법과 다른 그의 언변과 행동은 언론과 정치인들의 비판 대상이었다.
미국 국민의 선택을 받긴 했지만 미국 언론과 정치의 중심지 워싱턴D.C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2%에 불과했다.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졌을 때 미국 언론과 정치인들은 ‘미국이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트럼프는 2021년 미국 의회 점거 폭동에 가담하면서 헌법을 유린한 범죄자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지는 줄 알았던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의 귀환으로 ‘트럼프 현상’을 일컫는 ‘트럼피즘’은 전보다 더 강해졌다. 한 괴짜 대통령이 만든 해프닝이 아닌 새로운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상징하는 시대 흐름과 앞으로 닥칠 일들을 전망해본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1700년대 ‘토착주의’에 물든 식민지 시대 영국계 미국인들이 당시 독일이나 네덜란드 사람들의 이민을 막기 위해 사용됐다. 1900년대 초반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이 1차 세계 대전 불개입 원칙을 발표하면서도 이 용어를 썼다. 백인 인종주의 단체인 KKK단도 이 용어를 사용했고 2차 세계대전 불개입주의를 선언할 때도 ‘아메리카 퍼스트’란 말이 나왔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을 막거나, 국제적으로 비개입주의를 내세우는 정치단체와 정당에게는 단골 메뉴로 사용된 용어다.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선거에 나서면서 들고 나온 구호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이 인권을 과도하게 내세우면서 미국의 국력을 쇠퇴시켰다는 비판을 하면서 레이건 대통령이 들고 나와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트럼프는 두 가지 구호를 모두 들고 나왔다. 그는 미국 백인 중산층 이하의 삶이 어려워진 이유가 외국 이민자와 미국의 국제 정치·경제에 대한 과도한 개입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미국인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아메리카 퍼스트’를 통해 ‘미국만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다른 나라가 겪는 희생은 뒷전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트럼프 1기 때 내놓은 ‘정책’들은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트럼프 1기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내놨지만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했고 그마저도 불안정했다.
하지만 2기 트럼프는 다르다. 정책이 훨씬 구체화됐고 선명해졌다. 트럼프 2기의 내각은 그의 주장을 실천할 충성파 인물들로 체워졌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마련됐다.
미국 의회도 공화당이 사실상 장악했다. 트럼프의 질주를 막을 막을 장치가 사라진 셈이다.
향후 트럼프의 정책은 법으로 명문화되고 전 세계 사람들의 인식에도 각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바뀔 수 있지만 법은 정권과 무관하게 이어진다. 미국의 법보다 더 바꾸기 힘든 것은 세계질서다. 트럼피즘은 이제 일회성 정책이 아닌 시대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집권 2기 때 급변할 국제 정치·경제 질서는 그의 집권 이후에도 최소한 20~30년은 더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GATT와 WTO는 연속적이고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을 지향해 관세를 비롯한 무역장벽을 지속적으로 낮춰간다. 또 국가 간 관세를 부과할때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최혜국 대우)도 있어 특정국가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모여 모두가 이익이 되는 쪽으로 글로벌 무역질서를 재편하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1947년 이후 만들어온 국제무역질서는 모두 미국이 주도해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존의 모든 무역질서를 부정한다. 국제무역질서의 측면에서보면 트럼프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미국이다.
트럼프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많이 내는 나라에 대해 일방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 다자간 무역질서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WTO의 최혜국 조항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한국은 바이든 정부때 대미 무역흑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나라중 하나다. 한미 동맹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는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는 좋게 보일리가 없다. 자유무역협정(FTA) 개선을 포함한 다각적인 압력이 예상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60% 이상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다. 다른 나라가 보복 관세를 메기면 미국은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해 끝장을 보겠다는 태세다. 힘을 앞세워 약자를 굴복시키겠다는 미국 일방주의의 논리다.
WTO체제를 부정하는 미국의 이같은 독선적인 움직임을 막을 방법은 단기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많은 나라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의 막대한 관세로 미국으로의 수출이 막힌 나라들은 다른 나라로 수출선의 변경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미국이외의 다른 나라들도 자신들보다 힘이 약한 나라와 거래할 때는 미국처럼 관세와 무역장벽을 통해 시장을 보호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시작된 보호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된다. 2차 대전 후 60여 년간 만들어온 세계 자유무역 질서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위기를 맞았다.
아울러 물건을 싸게 잘 만드는 국가가 그렇지 못한 나라로 수출을 하는 글로벌 공급망과 관련한 흐름도 깨진다. 이런 변화가 본격화되면 세계 경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게 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이런 미국의 역할을 부정한다. ‘우리도 살기 힘든데 왜 다른 나라 전쟁까지 관여해야 하는가’라며 ‘미국에 의존하려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라’는 논리다. 트럼피즘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근거로 미국에 지불하는 방위비를 대폭 올려줄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안보갈등’이 확대되면 가장 먼저 한국 경제가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 사정도 비슷하다. 미국은 현재 중동, 아프리카, 유럽, 인도·태평양 지구 등 총 25개 국가에 미군을 파견하거나 미군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트럼프의 불개입주의가 확산되면 많은 나라들이 안보 위기를 맞게 된다. 안보 문제는 경제 문제로 이어진다. 세계 외환시장이 출렁이고 돈이 급속히 빠져나가 국가부도를 맞는 나라들이 속출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 안보질서가 무너지면 전세계 곳곳에서 국지전이 실제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나라들의 ‘안보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상호 모순적이다. 금리를 낮추면 물가는 올라간다. 관세를 올려도 미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물가는 올라간다.
세금을 낮춰주고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미국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릴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채권물량은 늘어나고 채권금리는 오른다. 금리가 오르면 달러는 강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어젠다47’이라는 공약에 넣었다. 경제학자들은 “다섯 가지를 다 하겠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라며 트럼프를 폄하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집권 후 모두를 다 할 태세다. 연방준비제도(Fed)를 압박해 금리를 낮추고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관세를 올리고, 기업들의 세금을 깎아준다.
이 과정에서 물가가 오르면 저물가를 유지하기 위해 가격 통제를 할 수도 있다. 이런 각각의 정책들이 서로 충돌하고 좌충우돌 하더라도 밀고 나갈 태세다.
시장은 벌써부터 요동친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0.5%포인트 내린 ‘빅컷’을 단행한 이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0.6%포인트 이상 올랐다. 달러인덱스를 기준으로 한 달러 값도 같은 기간 4%올랐다. 단기금리와 장기금리가 따로 놀고 금리를 내려도 달러 값은 오르는 기현상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트럼프 2기 집권기간 내내 벌어질 전망이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 기반이 전통적인 경제학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고, 그가 공약으로 내놓은 것을 스스로 철회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 금융시장이 긴장하는 이유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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