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쩍 마르고 어깨와 등이 굽어”…조선 최고의 재상이라는 이 남자, 장애인이었다는데 [서울지리지]
허균의 형 허봉(1551~1588)이 쓴 <해동야언>의 기록이다. 하양 허씨 좌의정 허조(1369~1439)는 조선초 유교윤리의 근간인 예약(禮樂)제도를 정비해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크게 공헌했던 인물이다. 벼슬은 예문관 제학,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에 올랐다. <세종실록> 1439년(세종 21) 12월 28일의 허조 졸기에 따르면,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했으며 태종이 “허조는 나의 주석(柱石·기둥)”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등이 굽은 꼽추였다. 서거정(1420~1488)의 <필원잡기>는 “허조는 어려서부터 몸이 야위어 비쩍 말랐으며 어깨와 등이 굽었다”고 했다.
숙종대 소론의 영수 파평 윤씨 윤지완(1635~1718)은 한쪽 다리가 없어 ‘일각정승(一脚政丞)’으로 불렸다. 동상이 악화돼 다리를 절단했다. 걸을 수 없어 마찬가지로 사직을 원했지만 그를 신임했던 숙종은 부축을 받아서라도 속히 입궐하라고 했다. <숙종실록> 1694년(숙종 20) 윤 5월 28일 기사에 의하면, 우의정 윤지완이 상소를 올려 “다리의 병이 심하여 대궐의 섬돌에 오르내리며 출입하기 어려우니 바라건대 면직시켜 주소서”라고 아뢰자 임금이 승지를 보내 “이미 출입할 때 부축 받으라는 하교가 있었는데 어찌 사양하기를 이렇게까지 하는가. 경은 내일 아침에 나오라”고 재촉했다.
혜경궁 홍씨(1735~1815)의 조부이자 영의정 홍봉한(1713~1778)의 부친인 풍산 홍씨 홍현보(1680~1740)는 말 못하는 농아였다. 홍현보는 1718년(숙종 44) 문과에 장원급제해 대사간, 대사헌, 대사성, 예조판서, 우참찬 등 여러 관직을 맡았다. 희안하게도 풍산 홍씨 집안은 자신들의 외손인 정조와 맞섰고 죽이려고 했다. 홍현보의 아들 홍봉한과 홍인한(1774~1775)은 세손(정조)의 대리청정을 극렬하게 반대했고 그 중 홍인한은 정조 즉위 후 처형됐다. 정조때 편찬된 <영조실록>은 홍현보를 박하게 평가한다. <영조실록> 1740년(영조 16) 윤 6월 10일 기사는 “홍현보는 젊어서 등제하였으나 병을 앓다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했고 재능도 없었다”고 했다.
임금들도 장애에 시달렸다. 숙종(재위 1674~1720)은 시각장애로 고통받았다. <숙종실록> 1717년(숙종 43) 7월 19일 기사에서 숙종은 “지금 왼쪽 안질(眼疾)이 더욱 심하여 전혀 물체를 볼 수가 없고 오른쪽 눈은 물체를 보아도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다. 소장(疏章·상소)의 잔글씨는 마치 백지를 보는 것과 같고, 비망기(備忘記·임금이 명령을 적어 승지에 전하는 문서)의 큰 글자도 가까이에서 봐야 겨우 판별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분명히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선조(재위 1567~1608)는 정신병으로 고통받았다. <선조실록> 1598년(선조 31) 2월 25일 기사에서 선조는 비망기를 통해 “심질(心疾·정신병)이 더욱 심해져 전광증(顚狂症·조현병)으로 크게 부르짖으며 사람과 사물을 살피지 못하니 놀라 탄식하지 않은 이가 없다”고 했다.
조선시대 장애인은 자신만의 직업을 갖고 자립생활을 했고 결혼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하지만 저신장 장애인이나 팔, 다리가 없는 지체장애인처럼 겉으로 확연히 표가 나거나, 신분이 낮고 재력이 없는 장애인은 결혼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여성은 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고난에 직면해 장애 유형이나 신분, 재력에 상관없이 결혼하기가 힘들었다. 정화옹주(1604~1667)는 선조(재위 1567~1608)가 죽기 4년 전인 53세 때 가진 귀한 막내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벙어리였다. <인조실록> 1629년(인조 7) 10월 2일 기사에서 인조(재위 1623~1649)는 “정화옹주가 연달아 병고가 있어서 길례(吉禮)를 행하지 못하였다. 그 병이 쾌히 낫지는 않았으나 왕녀로서 배필이 없을 수 없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부마를 간택하게 하라”고 명한다. 실록은 이어 “옹주는 선조의 따님으로 어릴 때부터 벙어리가 되어 지각이 없었으며 뒤에 권대항에게 시집갔다”고 했다. 정화옹주는 26살까지도 시집을 가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옹주의 조카 인조가 6살 연하의 권대항(1610~1666)을 부마로 삼아 혼인시켜 줬던 것이다. 일반 여성이 10대 초중반에 결혼하는 당시 사회상을 감안할 때 상당한 만혼이다. 권대항은 오만하고 포악해 수시로 행패를 부렸고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권대항과 정화옹주는 자식도 없었다.
장애인은 중죄를 범하더러도 정상을 참작해 감형했다. 조선후기 법전인 <수교집록(受敎輯錄)>과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는 “살인한 죄인이 귀머거리이거나 벙어리이면 조사할 수 없으므로 자복을 받을 수 없다. 하여 곧바로 처단하는 것은 법에 어그러짐이 있으니 사형에서 등급을 낮추어 유배를 보낸다. 미쳐 본성을 잃고 실성한 자는 사형에서 등급을 낮춘다”고 했다. 역모죄에 연루되더라도 처벌을 면했다. <단종실록> 1454년(단종 2) 9월 9일 기사에 따르면, 병조참의 조순생(?~1454)이 계유정난 때 안평대군의 일파로 몰려 죽임을 당하자 의금부에서 그의 형 조관생도 처벌하려고 했다. 하지만 독질에 걸린지 17년이 됐다며 방면했다. 실록에는 장애인 구휼시책도 자주 등장한다. <중종실록> 1528년(중종 23) 8월 18일 기사에서 중종(재위 1506~1544)은 “예조가 80세 이상의 맹인들을 예조 안에서 음식을 대접한다고 했더냐. 맹인들을 자제들이 부축하게 하여 대궐로 오게 하고 여타의 노인들도 모두 부축하여 오게 하여 대궐 뜰에서 대접하라”고 했다.
21세기 한국은 GDP 대비 장애인 복지지출이 OECD 평균에 현저히 못 미치고 장애인 차별도 여전한 장애인 복지 후진국이다.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를 감안할때 과연 지금의 장애인 지원과 배려 수준이 조선시대보다 월등하게 앞섰다고 할 수 있을까.
<참고문헌>
1. 조선왕조실록. 필원잡기(서거정). 어우야담(유몽인). 용재총화(성현)
2.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정창권. 글항아리. 2011
3. 서울사람들의 생로병사. 서울역사편찬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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