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저널’ 시리즈는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감탄사 ‘오(oh)’와 지역, 지방을 뜻하는 ‘리저널(regional)’의 합성어로 전 세계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오리지널(original)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숫자로 만든 아이돌, 숫자가 담긴 스포츠팀
아이돌 이름 중에 숫자가 들어간 팀하면 어디가 생각나시나요? 생각보다 많은 그룹 이름에 숫자가 들어가 있는데요. 저의 학창 시절엔 2AM, 2PM, 포미닛, 2NE1과 같은 그룹이 있었고요. 데이식스, 세븐틴(사실 구성원은 13명이죠) 같은 가수들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포츠팀 중에 숫자가 들어간 팀은 어디가 있을까요.
유럽 축구팀 중엔 독일의 하노버 96, TSV 1860 뮌헨과 같은 팀이 있습니다. 두 팀 모두 창단년도를 팀 이름에 넣은 것이고요.
프로 스포츠팀이 즐비한 미국에도 2곳의 팀이 숫자를 팀명으로 쓰고 있습니다. 바로 NBA리그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76es)와 NFL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인데요. 두 팀은 공교롭게도 모두 창단연도가 아닌 미국 역사에서 큰 의미가 담긴 연도를 기념해 팀이름을 지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팀이름에 포함된 76의 비밀은?
오늘은 농구팀 필라델피아 76ers의 팀명이 어떻게 유래했는지 한번 살펴볼 예정입니다.
필라델피아 76ers는 미국 필라델피아를 연고로 하고 있는 프로농구팀입니다. 사실 이 팀은 필라델피아가 아닌 뉴욕주에 위치한 시러큐스라는 지역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39년 시러큐스에는 독립 농구팀 ‘시러큐스 레즈’라는 팀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팀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 사라졌는데요.
전쟁이 끝난 뒤인 1946년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업가 대니얼 비아손에 의해 ‘시러큐스 내셔널스’란 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1946년은 NBL리그가 만들어진 시기인데요. (흥부전-75화 참조)NBA에서도 유서 깊은 팀이 바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창단 당시 로고에는 내셔널스라는 팀명과 함께 미국 지도가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즉 국가 정체성과 국가 전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를 담으며 그 상징성에 큰 의미를 부여한 팀입니다.
미국 뉴욕 업스테이트 지역에 위치한 도시, 시러큐스는 초창기 뉴욕주의 중심부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뉴욕을 대표하는 주요 도시 중 한 곳이었습니다. 중공업 중심으로 발전했던 시러큐스는 현재 러스트 벨트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즉 과거의 영광을 품고 있는 도시로 전락한 것인데요.
참고로 시러큐스라는 도시 이름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있는 도시 ‘시라쿠사’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탈리아계 사업가에 의해 농구팀이 일찌감치 만들어진 것이죠. 해당 팀은 1949년 출범한 NBA에 흡수돼 리그 창단 멤버로 다시 한번 이름을 올렸습니다. 초창기 시러큐스 내셔널스는 강팀으로 대중에 인식됐는데요. 1950년대 챔피언 결정전에 3번 진출해 1955년 첫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스러진 러스트벨트, 연고지를 옮기다
하지만 쇠퇴해가는 러스트벨트의 분위기는 결국 시라큐스 팀에도 큰 악영향을 미쳤는데요. 결국 1963년 루스벨트 페이퍼라는 회사를 운영하던 어브 코슬로프와 아이크 리치만에 매각되면서 연고지를 펜실베니아 주에 위치한 필라델피아로 연고지를 옮기게 됩니다.
필라델피아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미국이란 나라에서 그 역할이 무척 큰 도시인데요. 형제애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 역시 필라델피아라는 도시이름에서 유래합니다. 그리스어로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philos)와 형제 또는 자매를 뜻하는 아델포스(adelphos)가 결합해 만들어진 도시명이 바로 필라델피아인데요.
영국의 초창기 북아메리카 식민지 13곳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주를 건립한 윌리엄 펜이 종교와 인종 등 차별없는 평화로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염원을 담아 건설한 도시가 바로 필라델피아입니다. 또한 펜실베이니아주의 이름은 윌리엄 펜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펜이라는 이름과 나무가 우거진 숲을 뜻하는 라틴어 실베이니아(Sylvania)를 결합해 펜의 숲이라는 뜻으로 해당 주를 명명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자부심, 팀명으로 이어지다
그렇게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라델피아는 시러큐스 팀의 새로운 연고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팀명을 지어야 했는데요. 여기서 바로 76, 세븐티식서스가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76이란 숫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 이야기는 미국사에 가장 중요한 날, 1776년 7월 4일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의 국경길과 마찬가지인 독립기념일이 바로 7월 4일인데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기 위한 미국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날이 바로 이날입니다. 그리고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곳이 바로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인디펜던스 홀입니다.
당시 필라델피아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붉고 푸른 기운이 넘실대는 인디펜던스 홀에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모여, 이제껏 없었던 선언을 준비해 발표했습니다.자유와 독립의 소리가 담긴 이 날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필라델피아는 그 심장부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이러한 독립의 시발점이자 미국역사의 시작점인 이날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합니다.
연고지를 이전한 팀의 소유주와 관계자들은 도시의 상징성을 고민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자유와 독립의 상징, 미국의 태동을 이끌었던 곳이었죠. 그들은 바로 이 역사 속에서 팀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창단한 농구팀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기리기 위해 팀명에다가 아예 1776년을 상징하는 76이라는 숫자를 집어넣은 것입니다.
이 이름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미국의 독립정신, 그리고 필라델피아 시민들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죠.
팀 곳곳에 담긴 독립정신
필라델피아 76ers 팀 곳곳에는 미국 독립을 기리는 여러 상징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팀 로고에는 13개의 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미국 독립 당시 미국을 구성하던 아메리카 대륙의 13개 식민지를 상징합니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구성된 팀 색깔은 미국 국기의 색상이며, 이는 필라델피아의 독립 정신을 이어받은 팀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스코트 “Franklin the Dog”은 필라델피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미 건국을 이끈 주요 지도자 중 한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을 기리며 만들어졌습니다. 미국 100달러 지폐 도안에 채택된 인물이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입니다. 지금의 76ers는 마치 그가 꿈꾸었던 자유롭고 강력한 팀의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필라델피아 76ers가 코트에 서는 순간, 그들은 단순히 농구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팀의 유니폼에는 1776년 독립을 선언했던 미국인들의 염원과 의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팬들은 단지 선수들이 뛰는 것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와 정신을 함께 응원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