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등장한 ‘서울 불바다’ 위협한 그 무기···北 170㎜ 자주포 실체는[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이현호 기자 2024. 11. 1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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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1차 서울 불바다 위협’ 근거
5분에 1~2발 정도 형편없는 발사 속도
첫 공격서 적 무력화 못하면 바로 ‘역공’
연합뉴스
[서울경제]

1994년 남북 특사 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단의 박영수 폭언은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서울 불바다’ 위협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남한의 수도권을 겨냥한 장사정포 330여 문이 최전방지역에 배치돼 전쟁이 시작되면 곧바로 공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한 발언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실제 북한은 서울을 겨냥해 대량의 장사정포를 준비해 놓고 있다. 임진강 이북의 행정구역상 개성특급시에 속하는 월정리, 평화리 등을 포함해 최전방지역에 사정거리가 54㎞에 달하는 170㎜ 자주포와 사정거리가 최대 60㎞ 이상인 240㎜ 방사포 등을 배치해 언제든 사격하면 서울 전역 등 수도권의 핵심 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자주포 ‘M-1989’와 외형이 유사한 무기가 러시아에서 이송되는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온라인 상에 퍼지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바로 ‘서울 불바다’설의 주역인 동일 기종이라는 점이다. 일명 ‘곡산포’ 또는 ‘주체포’로 불리는 170㎜ 곡사포다.

소셜미디어 엑스(X)의 우크라이나 전문 군사·분쟁 뉴스 계정 'Status-6'는 14일(현지 시간) “북한의 M-1978/1989 곡산 170㎜ 자주포가 러시아로 추정되는 곳에서 기차로 운송되는 사진을 러시아 채널이 게재했다”고 밝혔다. ‘Status-6’는 이 사진의 배경에 등장하는 건물 이미지를 검색해 자체 분석한 결과, 러시아 중부의 크라스노야르스크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주체포는 북대서양 조약기구 제식명으로 M-1989라고 불리는 기종이다. 170㎜ 자주포 M-1978 ‘곡산’을 대체한 장사정포다. 북한군의 주력 병력수송장갑인 VTT-323을 베이스로 자체 개량한 차체를 이용했다. 북한에선 ‘승리호’ 또는 ‘신흥장갑차’로 불린다.

공개된 북한 열병식에서 포의 이름이 ‘주체’라는 것이 알려진 이후로 주체 자주포 또는 주체포로 불려지고 있다. 수도권 위협을 위해 북한이 독자 개발한 자주포다. 자체 개발을 통해 이후에 러시아의 T-54/55나 59식 전차 차체에 170㎜ 곡사포를 얹어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 자주포 추정 무기 운송 사진 공개. 사진 제공=소셜미디어 엑스 Status-6

170㎜ 자주포의 위력은 1980년에 개전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증명됐다. 당시 이란군은 미국의 금수조치를 피해 새로운 무기공급선을 모색하다 그 중 하나로 북한을 선택했다. 북한으로부터 170㎜ 자주포 ‘곡산’ 통칭 주체포 를 36문 도입해 정식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기형적으로 사정거리 늘리기에만 집중했지만 이전과 달리 유례없는 긴 사정거리 덕분에 전쟁에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발사속도도 5분에 1-2발 나오면 다행일 정도였지만 의외의 성능으로 적에게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티그리스 강 인근의 국경지역에서 전선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원거리에서 안정적으로 화력 투사가 가능한 곡산포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각광을 받았다. 오죽하면 적군인 이라크도 노획한 곡산포를 운용하려고 시도할 정도였다.

이라크는 170㎜ 포탄의 부족을 다른 소련군 대구경 야포인 180mm S-23을 올렸고, T-55 기반 가교전차 BLG-60을 개조해 직접 만들어 운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란과 이라크는 양쪽 모두 북한제 자주포로 무장해 싸워는 특이한 상황이 연출된 바 있다.

사격 준비에 30분 소요는 치명적 단점

북한의 170㎜ 자주폭가 긴 사정거리를 갖고 있지만, 군 당국은 우리에게는 큰 위협은 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곡산의 사격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은 30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이는 800㎜ 짜리 구스타프 열차포의 장전시간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연평도 포격 당시 K-9 자주포가 최초 대응 사격에 8분 늦었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지만, 사실 30분이면 위성으로 작전 개시가 탐지되는 즉시 K-9으로 대응 포격할 경우 포탄 한 번 못 쏴보고 포병과 곡산포 모두 대포병 사격에 파괴될 수 있는 치명적 단점이다.

게다가 사격 준비 시간도 길지만 오토로더와 반자동 장전장치도 없어 5분에 1~2발이라는 형편없는 발사속도를 보인다. 380㎜를 쓰는 슈투름티거도 전차병들이 장전하면 1분에 1발 정도 발사가 가능하고, 420㎜ 자주포 2B1 오카의 발사속도도 5분에 1발이다.

발사속도가 느린 걸로 유명한 155㎜ 견인곡사포도 분당 2발(30초당 1발)이다. 급속 사격하면 분당 4발(15초당 1발)까지 발사가 가능하다. 북한의 170㎜ 자주포는 선제 공격으로 적군을 완전하게 무력화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공격으로 전멸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동급이라고 볼 수 있는 서방의 오픈탑 자주포이자 175㎜ 평사포가 주포로서 장착된 M107이나 곡산보다 구경이 33㎜나 더 큰 M110 조차도 주포 뒤쪽에 장착된 크레인 같이 생긴 반자동 장전기에 의해 지속 사격시에는 분당 1발, 급속사격시엔 분당 2발의 발사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포신도 제대로 된 화포가 아닌 상당히 조잡한 파이프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곡산은 카피한 소련제 170㎜ 야포의 포신을 두 개 용접해 이어 붙인 T-55나 59식 전차의 차체에 얹은 것으로 무리한 개조의 부작용으로 정확도가 매우 형편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현호 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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