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살아가는 은행나무·메타세쿼이아 단풍 즐기러 양평 가볼까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4. 11. 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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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사 천년은행나무 단풍 절정/ 1018세 나이에도 매년 350㎏ 열매 생산/두물머리 메타세쿼이아·440년 느티나무 곱게 단풍 들어/강물과 어우러지는 그림엽서 풍경 만나

두물머리 메타세쿼이아.
볼수록 신비롭다. 천년 넘은 고목에 저렇게 무성한 잎이 달리다니. 어른 세 명이 두 팔을 펼쳐도 모자랄 정도로 거대한 몸통. 휘어지고 또 휘어지면서도 하늘 향해 쉬지 않고 뻗어 나간 가지. 그리고 밑동에 수북하게 쌓인 은행 열매들은 나무가 지금도 왕성한 ‘청년’의 삶을 살고 있음을 전한다. 천년을 넘게 한자리를 지키는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앞에 서자 길어야 고작 백년을 사는 인간의 삶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메타세쿼이아 단풍 즐기는 두물머리

양평만큼 수도권에서 사랑받는 여행지가 또 있을까. 두물머리, 세미원, 용문산관광단지,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 서후리숲, 이재효 갤러리 등 갈 곳이 넘쳐나고 강이 보이는 예쁜 카페, 맛집들이 즐비하기에 양평은 수도권 여행지 1순위로 꼽힌다. 주말마다 양평으로 이어지는 6번 국도는 극심한 정체에 시달리지만 여행자들이 이를 무릅쓰고 당일치기 나들이에 나서는 이유다. 이른 아침 몽환적인 물안개가 피어나는 두물머리는 사계절 아름다워 양평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지만 특히 만추로 접어드는 요즘 절정에 달한다. 물과 단풍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다.

두물머리 배다리.
예쁜 한옥 담장을 따라 놓인 오솔길을 연인들이 다정하게 손잡고 걷는다. 담장 너머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양수리’ 또는 ‘두물머리’로 불리는 강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알록달록 고운 단풍으로 물든 강 너머 숲과 반짝이는 윤슬이 부서지는 아련한 강물이 수채화처럼 어우러지며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선사한다. 두물머리는 강원 태백시 검룡소에서 시작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이 머리를 맞대며 만나는 곳이다. 워낙 풍경이 수려해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 등이 두물머리를 그림으로 남겼다.
두물머리 갈대.
경기도 1호 지방정원 세미원으로 이어지는 배다리는 다양한 오방색 깃발이 내걸려 운치를 더한다. 여름이면 커다란 연꽃을 피우는 연못은 그 흔적만 남기고 있지만 빈자리를 갈대가 차지해 쓸쓸하지 않다.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갈대밭 사이 놓인 조개 모양 의자에는 꼬마 아이가 앉았고 엄마는 아이의 예쁜 표정을 담느라 바쁘다.
두물머리 조개 의자 포토존.
걷다 보니 고소한 냄새가 비강을 파고든다. 군밤 장수다. 그래. 날씨가 스산해지면 집으로 가는 골목길 어귀엔 늘 군밤 장수나 고구마 장수가 있었지. 지금은 많이 볼 수 없는 추억을 떠올리며 군밤 한 봉지 사 들고 고소한 단맛을 즐기며 걷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발걸음을 또 멈춘다. 차 문에 ‘#지진, 태풍, 쓰나미 때만 쉼 #유사품 주의’라고 적힌 노란색 홍보차량 때문이다. 바로 두물머리 명물 ‘연핫도그’를 파는 곳이다. 핑크와 하얀색으로 핀 꽃댕강 너머로 많은 여행자가 파라솔에 앉아 연핫도그를 즐긴다. 속이 꽉 찬 프랑크 소시지를 연잎으로 만든 반죽으로 둘러 튀긴 두툼한 연핫도그는 케첩과 머스타드 소스가 뿌려져 어린 시절 여름에 아버지 손 잡고 놀러 간 수영장에서 핫도그를 먹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두물머리 은행나무.
두물머리 느티나무.
연핫도그 하나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가을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간다. 사방이 툭 터진 넓은 정원엔 길쭉하게 위로 솟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샛노란 단풍 옷을 입고 서 있다. 날이 아주 맑아 높고 파란 가을하늘과 강렬한 대비를 이뤄 만화 속 풍경을 보는 듯하다. 세 그루가 한 그루로 보이는 두물머리 느티나무도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4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물머리의 새벽 물안개를 지켜본 ‘영물’로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이 느티나무에서 매년 음력 9월2일 가정의 안녕과 평온을 빌며 제를 올린다. 
두물머리 메타세쿼이아.
두물머리 액자 포토존.
 

황포돗배와 너른바위 포토존을 지나면 늦가을 두물머리를 가장 예쁘게 꾸미는 메타세쿼이아를 만난다. 노란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나무 다섯 그루는 아직 초록초록한 잔디,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며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화보를 선사한다. 오랫동안 근육을 단련한 사내처럼 밑동이 우락부락한 나무의 그늘에 여행자들이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자연의 풍광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롭다. 메타세쿼이아를 지나면 두물머리 나루터와 ‘소원 들어주는 나무’가 등장한다. 그 옆 액자 포토존에 앉으면 메타세쿼이아, 느티나무, 푸른 하늘과 구름이 모두 담기는 두물머리 파노라마 전경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다.

두물머리 은행나무.
양평해장국.
◆무성한 열매 맺는 용문사 천년 은행나무

양평에 왔으니 양평해장국을 놓칠 수 없다. 2005년부터 3대째 한자리를 지킨 현지인 맛집 양평읍 어무이맛 양평해장국 양평본점을 찾았다. 양평해장국에 내장을 듬뿍 넣은 해내탕이 인기 메뉴. 특제 찰 선지와 양 등 다양한 소내장을 넣고 오래 끓인 사골육수를 섞어 얼큰하게 끓여내는데 국물이 구수하고 감칠맛이 일품이다. 고추절임, 들깨, 고추씨기름을 섞은 소스에 내장과 선지를 찍어 먹으면 맛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밥을 말아 먹을 때 이 소스를 넣으면 감칠맛이 배가된다.

용문사 양춘이 포토존.
용문사 가는길 단풍.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를 만나러 간다. 용문사 천년 은행나무다. 깜찍한 양평 캐리턱 ‘양춘이’가 파스텔톤 의자에 앉아 있는 포토존을 지나 친환경농업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불타는 단풍나무가 줄지어 서서 여행자들을 맞는다. 독립운동기념비를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면 계곡을 따라 용문사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등산객들이 조난당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던 산신바위, 문수교, 보현교가 차례로 놓인 계곡에는 울긋불긋한 단풍 사이로 장쾌한 물이 흘러 내려 마음의 때를 씻는다. 천천히 30여분 걸어 출렁다리, 해탈교, 사천왕문을 지나자 신비스러운 기운이 잔뜩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천년 은행나무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하늘 높이 가지를 펼치고 늠름하게 선 모습이 장관이다.
용문사 해탈교.
용문사 천년은행나무.
그동안 추정 나이가 1100~1500년으로 들쭉날쭉했는데 지난 3월 1018세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높이, 둘레, 부피, 무게, 탄소 저장량 등 나무의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전환하는 최신 ‘라이다(LiDAR)’ 기술을 통해 용문사 은행나무 생장정보를 확인했다. 높이는 38.8m로 아파트 17층 규모이며, 둘레 11m, 최대 가지 폭 26.4m로 측정됐다. 나무 무게는 97.9t으로 준중형 승용차(아반떼 1.22t) 80대와 맞먹는다. 특히 연간 이산화탄소흡수량은 113㎏으로, 50년생 신갈나무 11그루가 연간 흡수하는 양이다. 무엇보다 천년을 넘긴 나무가 지금도 매년 350㎏의 열매를 맺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은행나무 주변 보호 철책에는 노란 은행잎 모양 소원지가 주렁주렁 걸렸다. ‘우리 가족 늘 건강하게 해주세요’ ‘수능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등등 저마다 간절한 소원 하나 꾹꾹 눌러 담았다.
용문사 천년은행나무.
천년은행나무 소원지.
 
용문사 대웅전.
나이만큼 은행나무는 여러 전설을 들려준다. 신라 고승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됐단다. 또 신라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나무는 재앙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 그 사실을 알렸고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정미의병 때인 1907년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으나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단다. 대웅전 앞에는 용문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이들이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청정 자연과 호흡하며 명상을 통해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을 만들 수 있어 이곳 템플스테이는 인기가 높다.
물안개공원 양강섬 부교.
 
물안개공원 단풍.
양평읍 물안개공원은 아직 덜 알려져 좀 더 여유롭게 만추를 만끽하기 좋다. 공원 입구에선 2000년대 초 길거리마다 들리던 히트곡 ‘사랑을 위하여’를 부른 가수 김종환의 노래비를 만난다. 그는 무명시절 이곳 강가에 앉아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고 노래를 완성했다. 부교를 건너 양강섬으로 들어서면 강을 따라 곱게 물든 단풍을 즐기며 잊지 못할 가을여행을 완성한다.

양평=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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