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전 오늘] "모든 정황증거가 가리키는 한 사람"…대전 판암동 살인사건

유혜인 기자 2024. 11. 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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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상관없는 사진. 연합뉴스

2012년 11월 13일, 대전 동부경찰서는 판암동 살인사건의 최초 신고자이던 이모 씨를 살인 용의자로 구속했다. 그는 신고 직후부터 줄곧 자신은 목격자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그가 어떻게 용의자로 전락됐을까. 사건은 그 해 4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 "둘이 싸웠는지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살아서 굴러다녀요."

이날 오전 1시 21분. 대전 동구 판암파출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한 사람이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 있다는 이 모(당시 52세) 씨의 신고였다. 경찰이 출동한 판암동 복도형 아파트 2층,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현관에서 보이는 거실과 안방은 피범벅이었다. 바닥에는 주변을 누빈 양말 모양의 혈흔 족적이 찍혀 있었고, 벽과 베란다로 향하는 창문 곳곳엔 핏방울이 튀어 있었다. 집안에는 소주와 막걸리 등 술병은 물론 라면 봉지, 딸기가 담겼던 스티로폼 박스가 나뒹굴고 있었다. 안방 왼쪽 벽 쪽으로는 집주인인 김모(당시 58세) 씨가 숨진 상태로 쓰러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이웃 주민이던 임모(당시 53세) 씨가 의식은 없지만 숨은 붙어 있는 채로 누워 있었다. 그 사이에는 피 묻은 라쳇 절단기가 놓여 있었다. 신고자는 어디에 있을까. 이 씨는 거실 탁자에 앉아 턱을 괴고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씨는 김 씨와 임 씨는 절친한 이웃 사이로, 세 사람은 평소 도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들과 함께 술을 먹다 집에 잠깐 다녀오니 난장판이 돼 있었다"면서 "둘이 싸우다 이렇게 된 것 같다"고 진술했다.

◇ 정황 증거가 가리키는 범인은

경찰은 곧바로 현장 감식과 주변 탐문에 돌입했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집을 드나든 다른 사람은 이 씨, 김씨, 임 씨 말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이들 중 한 명임이 분명했다. 세 사람이 집에 들어간 시각은 오후 8시 34분이었다. 이웃은 드라마를 보려고 하는데 옆집에서 '악'하는 비명이 들렸다고 했다. 이 증언에 따르면 이들이 다투기 시작한 시점은 밤 10시쯤이다. 하지만 이 씨가 집을 나선 시각은 오후 10시 24분, 이웃의 증언과 일치하지 않았다. 또 이 씨가 들어갈 때 썼던 흰색 모자는 나올 때는 보이지 않았다. CCTV에는 이 씨의 수상한 행적이 여럿 찍혔다. 그가 다시 CCTV에 모습을 드러낸 건 다음 날 오전 0시 59분쯤, 사건 신고 20여 분 전이다. 이 씨는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고, 머리엔 검은색 모자를 새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씨는 5분 뒤 자신이 애초 착용했던 흰색 모자를 들고나와 건물 현관에 있던 의류함에 버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모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범행 도구는 김 씨와 임 씨 사이에 놓여 있던 길이 30㎝, 무게 585g 라쳇 절단기였다. 김 씨는 절단기로 머리와 어깨 부분을 80번 이상 맞은 것으로 분석됐고, 임 씨 역시 머리 등을 10번 이상 맞고 의식을 잃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절단기에서는 이 씨의 지문이 나왔다.

그는 범행을 부인했다. 당일 입은 옷에서 나온 피해자들의 혈흔이 묻었는데, 이 씨는 현장을 목격하고 화가 나 임 씨를 몇 차례 때리면서 묻었다고 했다. 절단기 역시 목격 과정에서 범행 도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살펴보는 과정에서 잠깐 만지게 됐다고 했다. 모든 직접증거가 목격증거가 됐다. 병원에 입원했던 임 씨가 정신을 차렸지만 기억을 잃었고, 얼마 못 가 간기능 부전으로 숨졌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임 씨마저 죽으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경찰은 혈흔의 크기와 모양을 분석해 피해자 및 범인의 행위를 추정, 사건 당시를 재구성하는 기법인 '혈흔형태분석'으로 처음부터 다시 수사를 시작했다. 4개월간 현장에 남아있는 핏방울 수천 개를 분석한 끝에 범행이 시작된 곳, 가해자와 피해자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왼쪽 벽에 서 있다 흉기에 맞았고, 쓰러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격 당했다. 임 씨의 혈액은 방바닥 중앙부에서 발견됐다. 혈흔대로라면 임 씨는 공격받고 이불에 쓰러져 있다가 의식을 되찾고 중앙부 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이 씨의 주장대로라면 김 씨와 임 씨가 싸우다 서로를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 중간 어디에도 서로의 혈흔이 겹친 증거는 없었다. 두 사람이 접촉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현장의 피 묻은 족적은 누구의 것일까. 족적에는 김 씨와 임 씨의 피가 모두 묻어 있었고, 이 씨의 양말 발자국과 일치했다. 모든 증거는 이 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만장일치로 징역 17년

이 씨는 구속 이후에도 자백은커녕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오히려 직접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고, 2013년 4월 15일부터 17일까지 무려 3일간의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됐다. 9명의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살해했다는 직접증거가 없지만, 이를 합리적 의심 없이 추단할 수 있다고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범행 현장에 있던 사람 중 혈흔이나 인체 조직이 검출된 이는 피고인 뿐"이라며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유가족들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고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검사 측과 이 씨는 모두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후에도 이 씨는 계속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역시 판결에 위법이 없다고 보고 기각, 1심 선고가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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