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들야들 가을 주꾸미…소박하게 나폴리식 볶음으로 [ESC]

한겨레 2024. 11. 1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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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주꾸미
낙지-주꾸미 구분, 드문 나라 한국
2002년 후 봄 제철음식으로 인기
아담하고 값싼 가을 주꾸미 좋아
나폴리식 주꾸미토마토볶음. 박찬일 제공

이태리는 한국과 먹는 관습이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오늘은 비슷한 쪽에 초점을 두겠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드문 서양나라이고, 고추와 마늘도 꽤 즐긴다. 소내장은 어쩌면 한국보다 더 많이 먹는 것 같고, 해산물 소비도 한국과 엇비슷할 거 같다. 인구는 많고 농사지을 땅은 좁은 것도 흡사해서, 바다 생물을 더 알뜰히 먹는 게 아닐까.

이름이 얼마나 구체적이냐 하는 걸로 그 나라나 민족의 해산물 소비를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낙지류를 영어권에서는 베이비 옥토퍼스라고 대충 부른다. 듣는 낙지(그것도 다 큰 낙지라면)가 얼마나 기분나쁘겠는가. 이태리는 문어는 폴포, 낙지류를 모스카르디노라고 분명하게 나눈다. 헌데 낙지와 주꾸미를 구분하는 시민은 드물다. 그냥 모스카르디노라고 한다. 낙지와 주꾸미를 한국처럼 분며 하게 나누고, 특히나 엄청나게 좋아하고 값도 비싼 나라는 드물 것이다.

옛날엔 ‘찐득이 낙지’라고 불려

이태리에서는 주꾸미를 올리브유, 마늘이나 셜롯에 볶은 후 그대로 내거나 토마토소스를 슬쩍 발라 낸다. 물이 좋지 않으면 맛이 탄로나는 메뉴다. 기억엔 여름에 해안도시의 선술집 같은 트라토리아(대중식당)에서 팔았다. 도기그릇에 뜨끈하게 담고, 거친 빵을 같이 낸다. 더러 장작오븐에 구운 빵(빠네 알 레뇨)을 주는 집이라면 운이 아주 좋다. 지역에서 나는 싸구려 화이트와인을 곁들이면 이 소박한 요리가 천국 입장권 같다.

언젠가 중국 닝보의 식당에서 낙지인지 주꾸미인지 요리를 시켰는데 주인이 화를 내는 것처럼 궁시렁거렸다. 통역해보니, 한국이 다 수입해가서 값이 비싸다는 말이었다. 한국의 시중 낙지요리의 다수는 수입이니, 그럴 만도하다. 낙지는 중국산이 많고 주꾸미는 동남아산이 더 많이 보인다. 부산의 냉동창고에는 지금도 낙지 주꾸미가 그득하다. 이런 창고를 부리는 수입회사는 한국의 해산물식탁을 좌지우지하는 큰손이다. 어부는 보이지 않고 유통만 있는 게 한국의 해산물 시장이니까.

가을 낙지, 봄 주꾸미라고 한다. 이 말이 옛부터 있었을까. 주꾸미는 사실 서해안 일부지역 사람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적었다. 나이 든 서울의 시장상인은 옛날에 주꾸미를 ‘찐득이 낙지’라 불렀다고 한다. 주꾸미는 죽어가면서 미끈거리는 점액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연체류 해산물은 오징어가 으뜸이고 흔해서 주꾸미까지 눈을 돌리진 않았나보다. 어려서 주꾸미를 먹었거나 시장에서 본 기억이 없다. 지푸라기에 꿰어 팔리는 낙지는 많이도 보았는데.

주꾸미는 아마도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크게 서울에도 퍼져나갔다. 노량진수산시장에 회를 먹으러 가는 식도락가들이 늘고, 제철음식에 대한 관심이 크게 생겨나던 때였다. 충청도 해안의 관광지에서 주꾸미 샤브샤브라는 메뉴가 이른바 대박을 쳤고, 그게 서울까지 왔다. 먹물이 터져서 아스팔트처럼 끈적하고 진한 국물에 라면까지 말아먹었다. 블로그가 파급력이 세던 때였고, 블로거 사이에 엄청난 경쟁이 붙었다. 누가 먼저 주꾸미샤브샤브를 포스팅하느냐! 언론도 당연히 제철음식으로 기사를 실었다. 당시 인기 있던, 주말관광 특집기사 몫이었다. 주꾸미 알집 안 먹고 봄을 넘기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하는 시대는 저 무렵이 단초다.

알 밴 봄철 자연산은 한우등심값

주꾸미. 게티이미지뱅크

민어며 방어며 제철 생선을 우리가 언제부터 그리 탐닉했는지 모르나 이젠 수많은 채널들ㅡ티브이가 아니라 정보가 유통되는 마당들ㅡ이 다들 제철음식 올리느라 넋이 빠진 듯하다. ‘따봉’과 ‘좋아요’ 등 인기 만발이다. 봄에 알 밴 주꾸미를 너무 먹어 개체수가 줄어 비싸다고 아우성이고, 어민들은 그게 왜 내 책임이냐 봄 주꾸미 찾는 도시사람 때문이라 할 거고, 어떤 이는 명란을 그리 먹어도 명태 북어 줄었단 말 못들었다, 누구 잘못도 아니라 한다. 올봄 알배기 주꾸미는 1㎏에 5만원을 넘었다. 자연산 귀한 것이니 한우등심값이 되어도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소는 길러 충당하면 되지만 양식도 안 된다는 주꾸미는 잡을수록 줄어든다니 이를 어쩌나.

가을 주꾸미는 아마도 별로 인기가 없을 것이다. 알 배는 시기가 아니니까 ‘그림’도 안 되어서 그럴 테지. 그래도 아담하고 야들야들하며 값도 싼 가을 주꾸미가 나는 더 좋다. 요란스럽지 않고 소박하게 한 접시 볶아서 술안주한다. 그냥 시중에 파는 ‘낚지볶음양념’을 사도 되고, 이태리식으로 토마토소스 풀어 만들어도 된다.

토마토소스 하면, 비싼 병제품을 사서 쓰시는데 가능하면 이탈리아산 400g짜리 캔이 나와 있으니 몇 캔 사놓고 쓰면 좋다. 조미된 게 아니어서 신선한 맛도 난다. 나같은 경우는 집에서도 2.5㎏짜리 큰 캔을 사서 한번에 조려둔다. 분량을 나누어 냉동해두면 언제라도 쓸 수 있다. 조미는 나중에 요리할 때 하면 되니까 캔을 열어 큰 솥에 붓고 천천히 가열하여 부피를 반으로 줄이는 게 핵심이다. 보통 1시간에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잘 저어주면서 가열하면 적당하다.

나폴리식 주꾸미토마토볶음

주꾸미 300g(머리속 내장은 떼어버린다)

마늘 3톨

양파 중간크기 4분의 1개

청양고추 2개(안매운 고추도 가능)

고춧가루 고운 것 1찻술

요리술 2큰술(화이트와인이 더 좋다)

올리브유

곁들일 빵

토마토홀 200g

소금

1. 토마토홀은 곱게 갈아 냄비에 낮은 불로 부피가 반으로 줄도록 잘 저어가며 조려둔다.(태우면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2. 주꾸미를 손질하여 찬물에 씻는다. 물기를 닦는다.

3. 마늘은 다지고, 양파는 채썬다. 1번의 토마토홀은 뜨겁게 가열한다.

4. 팬에 중불로 올리브유를 두르고 양파, 마늘 순으로 넣고 센불로 바꾼 후 손질하여 썬 주꾸미를 볶는다. 고춧가루를 넣고 요리술을 붓고10초 후 토마토홀을 넣는다.

5. 청양고추를 넣고 소금간 보고 뜨겁게 해서 낸다.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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