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뚜껑 꽁꽁 감아둔 철사…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11. 1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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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44] 샴페인 코르크 마개 고정하는 철사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뮈즐레는 샴페인의 상징이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명사. 1. 뮈즐레(뮈슬레) 2. 와이어후드, 샴페인 와이어 【예문】뮈즐레를 서둘러 벗기자, 샴페인 코르크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나가 신부의 콧잔등을 강타했다.

뮈즐레(muselet)다. 샴페인과 같은 발포성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단단히 고정해주기 위해 철사 등을 꼬아 만든 안전장치다. 와이어후드(wirehood) 또는 샴페인 와이어(Champagne wire)라고 부르기도 한다. 철사 부분인 뮈즐레 외에도 코르크 마개 위에 올린 얇은 주석 판은 캡슐(capsule) 혹은 플라크(plaque), 뮈즐레를 포함해 병 윗부분을 포장하는 알루미늄 포일은 쿠와프(coiffe)라고 한다.

뮈즐레는 ‘개 주둥이에 입마개를 씌우다’ ‘입을 봉하다’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museler에서 유래했다. 같은 의미의 영어단어 머즐(muzzle)과 어원이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보더콜리가 입마개를 하고 있다. 브로콜리, 보리꼬리, 부르크리, 부록걸이 아니다. 영미권에서는 머즐(muzzle) 혹은 마우스 가드(mouth guard)라고 한다. [사진 출처=Mikejamesshaw, 위키피디아]
뮈즐레가 없다면, 샴페인 속 탄산 때문에 코르크 마개가 발사되듯 튀어나올 수 있다. 샴페인 내부의 압력은 5~6bar 정도인데, 이는 승용차 타이어 압력(3bar 내외)보다 높고 한국 시위 진압용 물대포(10bar)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햇볕에 방치된 샴페인을 흔들어 코르크 마개를 ‘발사’할 경우 그 속도는 최대 시속 100㎞에 달한다. 독일 클라우스탈 공과대학 소속 과학자가 직접 실험한 결과다. 대체 왜?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 살았던 수도승 돔 피에르 페리뇽(Dom Pierre Pérignon, 1638~1715)이 뮈즐레를 개발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돔 페리뇽이 샴페인의 생산 과정에 여러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한 건 맞지만, 뮈즐레의 실마리를 제공한 건 아돌프 자크송(Adolphe Jacquesson, 1800~1876)이었다. 프랑스 남부 샹파뉴 지역에서 샴페인을 생산해온 아돌프 자크송은 1844년 주석으로 된 금속판(플라크)을 코르크 마개 위에 놓고 이를 고정하는 방식을 발명, 특허를 등록했다. 금속판은 끈이 마개를 고정하는 힘을 고르게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고, 끈이 코르크를 파고들어 손상하는 일도 없게 했다. 뮈즐레 등장 이전까지는 나무 마개를 기름에 적신 천으로 감싼 뒤 밀랍으로 봉하거나, 끈을 이용해 코르크 마개를 고정하는 방법을 썼다.

아돌프 자크송이 1844년 11월 15일에 등록한 뮈슬레 특허. [사진 출처=NPI 아카이브]
1855년에는 결속력을 크게 높인 끈 묶는 장치에 대한 특허가 출원됐고, 1880년경에는 동일한 길이와 규격으로 된 철사 마개 부분을 미리 제조해놓는 방식이 도입됐다. 덕분에 철사는 끈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철사를 꼬아 강도를 높이고, 병목 부분 철사의 꽈배기 모양 고리 부분을 풀면 쉽게 벗길 수 있도록 만든 현대적인 뮈즐레는 1884년 모엣 샹동(Moët & Chandon) 샴페인에 처음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완성된 뮈슬레는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을 유지한 채 현역으로 뛰고 있다. 물론 제조 공정은 기계화·자동화됐지만 말이다.
사진 출처가 좀 이상하다. 뮈즐레는 100% 강철로 만들어진다. 저렴하고 튼튼하며 가공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세계철강협회]
뮈즐레와 함께 샴페인 코르크 마개를 고정하는 플라크(캡슐·뮈슬레 캡)는 다른 병뚜껑과 마찬가지로 수집의 대상이기도 하다. 플라크 수집가를 지칭하는 단어도 있다. 플라코뮈소필(Placomusophile)이라고 한다.

샴페인 하면 뻥- 하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를 상상하기 쉽지만, 값비싼 술을 그렇게 버리는 건 사치다. 기분 내는 건 탄산수 정도로 타협하고 샴페인은 입에 양보하자. 병목 부분을 감싸고 있는 뮈즐레의 철사를 풀어주고(정확히 여섯번 반 바퀴 회전하면 된다) 코르크를 단단히 쥔 채 병을 돌리면 안전하게, 그리고 덜 사치스럽게 샴페인을 딸 수 있다.

훌륭한 플라코뮈소필의 콜렉션. 뭐든지 체계적으로 모아두면 작품이 된다. [사진 출처=Pierre André Leclercq, 위키피디아]
  • 다음 편 예고 : 도로 위나 공사장에서 흔히 보이는 원뿔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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