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보다 더 박수받은 패자의 이 한마디[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패자의 연설은 패배의 연설이 아니다
미국을 울리고 웃긴 승복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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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undamental principle of American democracy is that when we lose an election, we accept the results.”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선거에서 지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패자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승복 연설은 패자의 연설이지만 패배 연설(defeat speech)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concession’은 양보라는 뜻입니다. 미국인들은 평화적 권력 교체의 전통이 패자의 양보(concede)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습니다. ‘cede’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토나 권리에서 자발적으로 물러난다는 뜻입니다. ‘con’은 강조의 의미입니다. 해리스 부통령 연설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accept the results’(결과를 수용하다)가 없으면 승복 연설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진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는 투쟁을 계속하자는 것입니다. 11분 동안의 짧은 연설에서 ‘fight’(싸우자)가 16번이나 나옵니다.
패배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승복 연설은 후보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연설인 동시에 가장 명연설이 많이 나오는 연설이기도 합니다. 승리 연설과 달리 깊이가 있고 다양한 메시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승복 연설을 알아봤습니다.
The commitment I seek is not to outworn views but to old values that will never wear out.”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낡은 생각이 아니고 절대 낡지 않는 유구한 가치들이다) |
이변이 펼쳐졌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환생’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의 명연설이 나왔습니다. 테드 소렌슨, 아서 슐레진저 등 20년 전 케네디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했던 거물 스피치라이터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역작입니다. 민주당 본연의 진보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연설의 핵심입니다. 카터 대통령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주장했던 미국의 꿈과 희망, 프런티어 정신이 나오자 관중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연설의 트레이드마크였던 ‘not A, but B’식 비교법이 여기서도 등장합니다. 케네디 의원은 승복 연설에서 처음으로 두 형을 거론했습니다. 그동안 형의 그늘에서 살기 싫다는 이유로 형들의 이름을 연설에서 언급한 적이 없었습니다.
32분간의 연설 동안 51회 기립박수가 터졌습니다. 37초당 한 번꼴입니다. 20세기 미국 100대 명연설에서 76위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구절로 나오는 ‘The Dream Shall Never Die’(꿈은 절대 죽지 않는다) 연설로 불립니다. 관중들은 “저렇게 훌륭한 연설을 좀 더 일찍 했더라면”이라며 아쉬워했습니다. 이 연설을 마지막으로 대선 무대에서 미련 없이 퇴장해 의회의 실세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I was just thinking on the way down the elevator that tomorrow will be the first time in my life I don’t have anything to do.”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는 길에 내일부터 인생에서 처음으로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
지루한 연설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종일관 밝은 연설이었습니다. “내일부터 실업자 신세”라는 자폭 개그로 시작했습니다. 시끄러운 박수 소리로 연설이 자꾸 끊기자 대선 공약이었던 세금 감면 카드를 꺼냈습니다. “You’re not going to get that tax cut if you don’t be quiet.”(조용히 하지 않으면 세금 안 깎아 줄 거야)
I accept the finality of this outcome.” (결과의 최후성을 인정한다) |
2000년 대선 때 앨 고어 부통령의 승복 연설은 절간처럼 조용한 곳에서 열렸습니다. 플로리다 재검표 공방을 거쳐 선거 한 달 뒤 당락이 결정됐기 때문에 행사장에서 할 수 없었습니다. 부통령 신분이라 백악관 블루룸에서 했습니다. 대통령 기자회견이나 행사가 열리는 장소입니다. 가족과 동료 정치인 1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촐하게 열렸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백악관 블루룸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연설할 때 조용한 방을 ‘dead room’(죽은 방)이라고 합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에 대해 대국민 사과할 때 백악관 지하 맵룸에서 조명 하나 켜놓고 했습니다. 데드룸 연설은 주변 효과음이 없어 오로지 연설력 하나로 승부해야 합니다.
고어 부통령은 평소 ‘Wooden Gore’(나무토막 고어), ‘Bore Gore’(지루한 고어)로 불릴 정도로 연설 스타일이 딱딱했습니다. 하지만 승복 연설은 조용하고 장엄한 백악관 블루룸이 연극무대 효과를 내며 모처럼 감정이 충만한 연설을 했습니다. 패배를 인정한 구절입니다. ‘finality’(최종적임)라는 법정 용어가 나옵니다. 마치 법정에서 최후 변론을 하는 변호사 같습니다. 연설문은 당시 고어 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던 하버드대 출신의 일라이 에티가 썼습니다. 연설에 칭찬이 쏟아지면서 에티는 할리우드로 진출해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West Wing)의 각본을 썼습니다.
명언의 품격
토론 내용은 둘 다 훌륭했습니다.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더글러스가 이겼지만, 토론을 계기로 전국구 스타가 된 것은 링컨이었습니다. 링컨은 토론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선거자금을 마련해 2년 뒤 대선에 도전했습니다. 더글러스도 질세라 대선 도전장을 냈습니다. 노련한 정치인 더글러스보다 열정으로 가득 찬 시골뜨기 링컨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대선은 링컨 승. 더글러스는 승복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Partisan feeling must yield to patriotism. I am with you, Mr. President, and God bless you.” (당파주의는 애국심에 굴복해야 한다. 당신을 지지합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
실전 보케 360
We’re very rigorous on the X platform about being a level playing field.” (우리는 X 플랫폼을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만드는 데 철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level playing field’는 ‘level’(동등한)과 ‘playing field’(운동장)이 합쳐졌습니다. 운동장은 평평해야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면 한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level playing field’는 평평한 운동장, 즉 공정한 경쟁을 말합니다. 학부모나 교사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We need to create a level playing field for students of all backgrounds.”(모든 배경의 학생들이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7월 22일 소개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발언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백인 코미디언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가리켜 “바다 위의 쓰레기 섬”(floating island of garbage)이라는 막말을 했습니다. 인종차별적 발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절에는 트럼프 본인이 인종차별 발언을 자주 했습니다. 2019년 민주당 유색인종 여성 의원 4명에게 “범죄가 들끓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공격했습니다. 트럼프 재집권을 앞두고 그의 인종차별 발언을 되돌아봤습니다.
▶2019년 7월 22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722/96627712/1
Trump Targets Lawmakers in Racially Charged Tweets.” (트럼프는 인종차별적 트윗으로 의원들을 겨냥했다) |
The tweets were widely seen as racist.” (그 트윗은 폭넓게 인종차별주의 트윗으로 보인다) |
CNN says ‘racist’ more than 1100 times regarding Trump ‘go back’ tweet.” (CNN은 트럼프의 ‘돌아가라’ 트윗에 대해 1100회 넘게 ‘racist’ 단어를 썼다) |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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