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새, 꼭두…안녕의 염원 담은 귀여운 수호자들 [ESC]

한겨레 2024. 11. 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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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 액막이 공예품
모시명태, 집들이 선물로 인기
‘짝에게 정절’ 기러기, 혼례 예물
새끼 사자 얼굴에 뿔, 든든한 천록
저승으로 떠나는 길동무, 꼭두
실타래에 묶은 북어를 액막이로 사용했던 풍습을 모시 소재와 바느질로 재현한 최희주 작가의 모시명태. 박효성 제공

평안하길 바라고 무탈을 비는 마음이 단긴 ‘안녕(安寧)’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모두 같은 인사를 하는 우리는 꽤 다정하고 퍽 다감한 사람들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역사나 환경상 도처에 위험과 불안이 늘 가깝게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짠하기도 하다.

이 땅에서 안녕을 바라며 살아온 옛 사람들의 일상에는 나쁜 일을 막기 위한 액막이 의식이 많았다. 매일 인사를 나누듯. 새해가 되면 정월대보름에 ‘액연’을 날렸고 달집을 태울 때 자기 옷의 동정이나 저고리를 함께 태워 나쁜 기운을 사르기도 했다. 열두 달의 액운을 막는 의미로 열두 개의 다리를 밟는 ‘답교 놀이’도 있었다. 단옷날에는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것은 물론 창포 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꽂아 한 해 질병을 막으려 했고, 쑥을 베어다가 단으로 묶어서 문 앞에 세워 액을 물리쳤다. 6월15일 유두절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로 목욕을 하는 것으로 부정을 정화했다. 곧 다가올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리며 잡귀를 쫓아 내고 영양가 높은 팥으로 건강도 챙겼다.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

궁궐을 지키는 석조상 중 상상의 동물인 천록을 재해석한 국가무형유산 석장 이재순 장인의 천록 작품. 박효성 제공

액을 날리는 다양한 놀이와 먹을거리 외에도 벽사를 담당하는 동물에 의탁해 사악한 기운과 화를 물리치기도 했다. 정초에 닭이나 호랑이 그림을 집에 걸었고, 마을 입구에는 새를 얹은 솟대 세워 수호신으로 삼았다. 건물을 지으면서 상량식을 하며 집에 살게 될 사람의 복을 빌 때 북어를 무명 실타래와 묶어 대들보에 올려 액을 막기도 했다.

대부분의 액막이 전통이 잊혀지고 있는 와중에 북어를 실타래에 매다는 풍습을 계승하며 앙증맞은 장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희주 작가의 ‘모시명태’가 집들이 선물로 인기가 높다. 전통 천연 섬유인 모시, 삼베, 무명을 주로 사용해 자연의 감성이 깃든 일상 기물을 바느질로 짓는 작가답게 이사하는 지인을 위한 선물로 만들며 모시명태가 탄생했다. 파란색, 하얀색, 하늘색 등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데 바늘땀으로 눈을 또렷하게 새겼다. 북어의 큰 눈이 액운을 막아준다는 의미 때문이다.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어 빛을 무서워하는 귀신을 쫓아내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전통 가구인 괘, 반닫이 등의 자물통이 물고기 모양인 것도 귀중품을 잘 지켜달라는 뜻을 담았다.

동물의 보호를 받는 장소로 치자면 궁궐만한 곳이 없다. 경복궁만 살펴보더라도 광화문 앞 해치 두 마리부터 시작해 근정전 월대와 경회루 난간석 등 수많은 동물 조각이 있어 동물원을 방불케한다. 실존하거나 상상 속의 동물들은 하나하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고 기대하는 의미가 담겨 있어 궁을 방문할 때 이것만 살펴보아도 유익한 공부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정의의 화신인 해치는 세상의 불의를 지켜보고 근정전 사방에는 시공간을 뜻하는 사신곽 십이지 조각상을 두었다. 경회루 연못 다리에는 화재를 막기 위해서 코끼리를 닮은 상상의 동물인 불가사리를 새겼고, 문신들이 주로 드나드는 영제교 다리 양쪽에는 신령스러운 짐승인 천록이 엎드린 채로 자리해 벽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

바로 이 천록을 지난 9월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이음의 결’ 전시를 통해 국가무형유산 석장 이재순 장인의 솜씨로 만났다. 영제교 천록을 재해석해 축소 제작한 것으로 대청마루에 평온하게 엎드린 자세가 귀여워 쓰다듬을 뻔 했다. 천록의 얼굴은 새끼 사자를 닮았고 하나의 뿔이 있으며 온 몸은 비늘을 덮고 있는 천록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하고 보물 등의 재화를 지켰다.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 천록 석조상을 들이면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겠다.

신과 인간 사이 영매로 여겨진 새

전통 혼례에서 예물로 주고받았던 기러기를 나전으로 표현한 류지안 작가의 ‘웨딩덕’. 류지안 제공

하늘과 땅을 오가며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영매로 여겨졌던 새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수호자였다. 삼국시대 상형토기 중에서 새가 많이 보이는데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에 전달한다는 의미로 무덤에 부장품으로 함께 묻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주몽과 신라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를 보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새를 신성하게 여겨왔음을 알 수 있고 조선시대 임금의 상징은 봉황이었으며 전래동화와 타령, 춤 등에서도 새를 주제로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혼례를 치를 때 예물로 사용한 기러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신랑이 신부 집에 처음 도착해서 행하는 의례가 전안례(奠雁禮)인데 기러기를 신부 집에 바치고 절을 하는 것이다. 철새인 기러기는 늦가을에 왔다가 이른 봄에 북쪽으로 날아가는데 자연의 이치를 어기지 않는 믿음의 의미와 한 번 맺은 짝에게 정절을 지키는 습성을 지녀 바람직한 부부관계를 상징했기 때문에 기러기는 혼례에서 중요한 예물로 여겨졌다. 처음에는 실제 기러기는 사용했으나 점차 나무로 깎고 옻칠한 목기러기를 사용했다. 현대의 결혼에서는 기러기가 필수 예물은 아니지만 자개 작업으로 기러기 몸체를 찬란하게 채운 류지안 작가의 ‘웨딩덕’은 결혼 예물로 여전히 가치 있다. ‘아리지안’이라는 자개 아트 스튜디오를 이끄는 류지안 작가는 소속 장인들과 함께 전통 공예 재료인 자개를 현대의 미감으로 표현해 탁월한 아름다움을 담은 가구와 기물을 선보인다. 덕분에 현대 공간에서도 자개 공예가 빛난다.

망자의 길동무였던 전통 꼭두를 현생의 동무로 빚어낸 김운희 작가의 흙꼭두. 김운희 제공

도예 작업을 하는 김운희 작가가 흙으로 빚어낸 꼭두인형은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웃음을 주는 편안한 친구 같다. 작가는 2022년 첫 개인전 ‘꼬까꼭두’에서 페루 여인과 라마, 발리의 아이들, 일본 소녀 등 이국적인 옷을 입은 꼭두를 선보였는데 이는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다니지 못하는 일상에서 꼭두를 보며 여행의 기분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꼭두란 원래 전통 장례에서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으로 저승으로 떠나는 여행을 안내해주는 길동무다. 호위무사, 악공과 광대, 꽃을 든 여인, 시종 등 각양각색이다. 그러니 꽃을 한아름 안은 김운희 작가의 흙꼭두는 꽃길을 안내하는 길동무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망자의 친구가 현생의 동반자로 거듭난 것이다. 전통 장례와 상여가 낯선 요즘이라 꼭두 또한 익숙하지 않다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증특별전 ‘꼭두’(올해 10월23일~내년 3월3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저승으로 돌아가는 길을 이토록 익살맞은 친구들이 지켜준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기도 하고 현생의 안녕이 새삼 실감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겨울이 다가와서인지 소란스러운 세상 때문인지 소슬해진 마음을 귀여운 수호자들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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