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숲과 시적인 정원…번잡한 마음 위무해주네 [ESC]

박미향 기자 2024. 11. 1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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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요즘 어디 가
에버랜드 ‘포레스트 캠프’와 ‘희원’
에버랜드 50여년 조성 ‘비밀의 숲’
3만 그루 은행나무 노란색 향연
정자·연못·벅수 조화 정원 ‘희원’
1970년대에 에버랜드가 조성을 시작해 은행나무 3만 그루가 식재돼 있는 ‘포레스트 캠프’. 최근 일반에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박미향 기자

신이 준 가장 찬란한 선물은 숲이다. 숲은 치열한 경쟁에 포위된 이들에게 쉼과 안식을 제공한다. 이 숲에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정원이 된다. 지난 5일 5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은행나무숲과 전통에 현대적인 감성을 접목한 정원 ‘희원’을 다녀왔다.

푸바오가 떠난 에버랜드엔 새 주인인 양 자태를 뽐내는 숲이 있다. 정문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은행나무숲이다. 용인시 신원리 향수산 일대에 조성된 숲은 14만5000㎡(4.4만평) 규모 땅에 은행나무 3만 그루가 식재돼 있다. 1970년대 에버랜드가 조성을 시작한 이 숲은 일반에 공개된 적 없다. ‘숲캉스’(숲+바캉스, 숲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숲이 인기를 끌자 에버랜드는 2년 전부터 명상 돔, 생태연못, 전망대 등을 갖추며 세상에 내놓을 채비를 했다. 이름도 붙였다. ‘포레스트 캠프’라고 말이다. 영화 ‘판의 미로’에 나오는 기괴한 숲일까. ‘나니아 연대기’의 숲처럼 웅장할까. 베일을 벗은 ‘비밀의 정원’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극대화했다.

1970년대에 에버랜드가 조성을 시작해 은행나무 3만 그루가 식재돼 있는 ‘포레스트 캠프’. 최근 일반에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박미향 기자

“극한 환경 견딘 은행나무의 생존력”

안내자로 나선 에버랜드 식물콘텐츠그룹 이준규 그룹장이 들머리에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아직 제대로 된 은행나무숲이 나오지 않았어요.” 은행나무숲은 ‘포레스트 캠프’의 3가지 길(‘축적의 길’ ‘사색의 길’ ‘회복의 길’) 중에서 ‘회복의 길’에 있다.

숲길은 완만했다. 길 따라 걷자 짙은 노란색 은행나무 군락이 얼굴을 드러냈다. 낙엽에선 바스락 소리가 났다. 이 그룹장이 숲 ‘탄생 신화’를 꺼냈다. “1970년대 경제가 너무 어려우니까, 조금이라도 도움될까 해서 밤나무를 심었다고 해요. 7m 간격으로 심고 그사이에 은행나무를 심었죠. 1979년 겨울 영하 20도 혹한이 찾아오자 밤나무의 90%가 얼어 죽은 거예요. 신기하게도 은행나무는 살아남았죠. 극한의 환경도 꿋꿋이 견딘 은행나무의 생존력이야말로 우리가 갖춰야 ‘정신’이라 본 거죠.” 이후 은행나무를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멸종을 겪으면서 잎이 넓어진 은행나무 얘기를 하는 이준규 그룹장. 박미향 기자
1970년대에 에버랜드가 조성을 시작해 은행나무 3만 그루가 식재돼 있는 ‘포레스트 캠프’. 최근 일반에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박미향 기자
1970년대에 에버랜드가 조성을 시작해 은행나무 3만 그루가 식재돼 있는 ‘포레스트 캠프’. 최근 일반에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박미향 기자
1970년대에 에버랜드가 조성을 시작해 은행나무 3만 그루가 식재돼 있는 ‘포레스트 캠프’. 최근 일반에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박미향 기자

노란색에 빠져들듯 숲속 깊이 더 들어갔다. 나무 그림자와 햇살이 서로를 탐하며 여행객을 유혹했다. 고개 들어 가지에 눈길을 주자, 후드득 잎이 떨어졌다. 노란색이 귀에 걸리고, 어깨에 내려앉았다. 고요가 찾아왔다. 새소리조차 소음으로 여겨질 정도로 무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햇볕이 들지 않는 숲은 두렵다. 하지만 이곳은 예외다. 은행나무 색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가슴에 스미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활엽수일까요? 침엽수일까요?” 이 그룹장이 질문했다. 잎 모양만 보만 영락없이 활엽수지만 실제는 침엽수다. “본래 잎은 삐죽했어요. 아주 오래전 기후변화로 대멸종 사태가 벌어지자 생존을 위해 잎이 넓어진 거죠. 광합성을 하기엔 넓은 잎이 유리하니까요.” 지구는 오르도비스,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에 다섯 차례 대멸종을 겪었다. 그때마다 삼엽충, 공룡 등 생물이 사라졌다. 지금이 대멸종 위기도 아닌데, 은행나무는 멸종위기종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환경단체인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작성하는 적색목록에 올랐다. 지구환경이 빠르게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달 18일 ‘비밀의 은행나무숲’ 산책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에 전회차가 2분 만에 마감됐다. 에버랜드는 향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 현재는 단체 신청만 받고 있다.

‘땅에 쓰는 시’ 정영선의 미학

붉게 물든 정원 ‘희원’. 박미향 기자
‘희원’ 여행의 시작점인 보화문은 덕수궁 유현문을 본떠 만들었다. 박미향 기자
전통과 조화를 이룬 ‘희원’. 박미향 기자
‘희원’ 곳곳에 있는 벅수. 박미향 기자

숲 인근에 있는 ‘희원’은 6만6000㎡(2만여평) 대지에 정자, 연못, 조각상 등이 들어선 아담한 정원이다. 희원 여행의 시작점인 보화문은 덕수궁 유현문을 본떠 만들었다. 벅수가 정원 곳곳에 있다. 벅수는 주민들의 안녕과 소망을 담아 세우는 돌장승이다. 희원엔 100여쌍의 벅수가 있다. 그만큼 소망이 넘쳐나는 곳이 희원이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정원 한쪽을 지키고 있었다. 그 옆에 작은 연못이 보였다. 연못은 네모난데, 손대면 바로 가루가 될 듯한 연꽃들이 번잡하게 얽혀있었다. 통상 시든 꽃은 없애기 마련이다. 하지만 희원 연못 연꽃은 색 바랜 채 물속에 잠겨 있었다. ‘죽은’ 꽃과 연못 밖에서 화려하게 핀 단풍나무가 대비됐다. 죽음과 삶이 한자리에서 여행객을 맞았다.

‘희원’의 연못. 박미향 기자

이 그룹장은 “정원은 시적인 공간이다. 읽는 이에 따라 시가 다르게 해석되듯, 정원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관람하기 전 만든 이가 누구인지, 어떤 의도에서 만들었는지 공부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희원을 만든 이는 한국 조경 1세대인 정영선 선생이다. 50년이 넘는 한국 조경사와 궤를 같이하는 이다. 예술의 전당 정원과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선유도공원, 경춘선숲길을 포함해 수많은 국내 정원이 그의 작품이다. 그의 조경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가 지난 4월 개봉했다. 이 영화엔 희원을 포함해 여러 정원의 조성 과정과 그의 철학이 담겼다. 자연을 존중하되, 유연할 것. 희원 연못 안에 네모난 섬이 있다. 통상 둥근 섬을 조성하기 마련인데 반전이다. 정영선 선생만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례다.

‘희원’에 있는 관음정. 박미향 기자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품이 관음정 나무에 걸려 있다. 박미향 기자
관음정 연못에 전시된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품. 박미향 기자
창덕궁 애련정을 본떠 만든 관음정. 박미향 기자

연못을 지나면 창덕궁 후원에 있는 애련정을 본떠 만든 관음정이 나타난다. 관음정 앞 연못엔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품 3개가 전시돼 있다. ‘황금 연꽃’ ‘황금 장미’ ‘황금 목걸이’ 등이다.

지난달 24일 산림청은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을 발표했다. 정원은 운영 주체에 따라 민간정원, 국가정원, 지방정원, 공동체정원으로 나뉜다. 이번에 소개된 민간정원은 희원만큼 여행하기 좋은 정원들이다. ‘괴산트리하우스가든’ ‘생각하는 정원’ ‘베케정원’ ‘힐링파크 쑥섬쑥섬’ ‘천개의 향나무 정원’ 등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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