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살리자면서 지방 죽이는 '감세 아이러니' [추적+]
세수펑크의 역설적 경제학
尹 정부 지방소멸 막겠다며
천문학적 예산 투입하는데
고집스러운 감세 정책 탓에
지역에 필요한 교부세 줄어
# 선거철, 여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내놓는 공약이 있습니다. 지역 균형발전 공약입니다. 2022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은 광역시를 각 지역 수도로 키우는 구상을 별도의 공약집에 담기도 했습니다. 지역 균형발전은 그만큼 중요한 과제란 겁니다. 특히 지방소멸 등의 문제와 맞물려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 그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뭘까요? 다름 아닌 재원입니다. 정부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지방교부세(금)를 나눠주는 것도, 지방재정자립도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죠. 일례로 정부는 2022년부터 매년 1조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자체에 배분하고 있습니다. 2031년까지 10년간 10조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 문제는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지역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일까요? 더스쿠프가 감세 정책이 지역에 미친 아이러니한 상황을 분석했습니다.
지난해 정부(기획재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올해 국세수입(세수)을 367조4000억원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세수를 다시 계산해보니 당초 예상보다 29조6000억원 덜 걷힐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해(-56조4000억원)에 이어 올해도 세수가 부족할 거란 발표가 나오자 온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에 맞춰 사업을 계획ㆍ집행하는데, 세수가 모자라면 사업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세수펑크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뭘까요? 각종 기금에서 돈을 끌어다 부족한 세수를 일부 메우고(14조~16조원), 지자체에 지방교부세 일부를 보내주지 않으며(6조5000억원), 예산을 덜 쓰도록 종용하겠다(통상적 불용 7조~9조원)는 겁니다.[※참고: 정부가 지자체에 예산을 온전히 다 쓰지 않는다고 지적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예산을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지자체들이 세수펑크의 짐을 나눠 가지라'는 건데요. 기금을 쌈짓돈처럼 가져다 쓰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지자체에 이런 부담을 지워도 괜찮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쟁점➊ 지방재정 부족 = 우선 지자체는 수조원의 지방교부세 부족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재정이 여유롭지 않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243개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3.3%에 불과합니다.
광역지자체만 하더라도 70%가 넘는 곳은 서울시(74.0%)가 유일합니다. 50%가 넘는 곳도 세종시(57.5%)와 경기도(55.1%)뿐입니다. 대부분 30~40% 수준인데, 전북(23.5%)과 전남(24.4%), 경북(24.6%)은 30%가 채 안 됩니다. 광역지자체의 상황이 이런데, 기초지자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부족한 세수를 알아서 메울 방법은 없습니다. 정부가 일정 부분 불용까지 강제하고 있으니 재원을 전용하기도 힘듭니다. 할 수 있는 건 사업 계획을 변경하는 방법뿐입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기존 사업을 접거나 신규 사업을 미루는 식이죠.
이럴 때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분야가 바로 복지 분야입니다. 최근 고등학교 무상교육 시스템이 흔들릴 위기에 처한 게 대표적입니다. 세수 부족으로 정부가 각 시ㆍ도 교육청에 배분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면서 고교무상교육을 위한 재정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건 그동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의 특례 조항에 따라 정부가 일부 예산을 부담해 왔는데, 그 특례 조항이 올해 말 일몰함에 따라 정부 지원도 사실상 끊깁니다.
정부는 일몰 연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서 지방교육청들은 당분간 통합재정안정화기금 같은 비상금까지 끌어다 써야 할지 모릅니다. 함께 일몰될 예정이던 담배소비세분 지방교육세(지자체가 걷어서 교육청에 보내주는 예산)의 기간이 연장된 게 그나마 다행인 상황입니다.
■쟁점➋ 지자체의 짐 = 정부가 지자체에 세수 부족의 짐을 지워도 될 만큼, 평소에 지자체의 부담을 덜어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지난해 말 정부는 '2024년 지방자치단체 예산 편성 운영 기준'을 개정해 올해부터 이장과 통장의 기본수당 표준액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했습니다. 기본수당이 오르면서 상여금도 함께 늘었죠.
이장과 통장의 수당 인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그 돈은 정부가 아니라 기초지자체가 부담합니다. "정부는 생색만 내고 부담은 재정이 열악한 기초지자체가 고스란히 떠안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하나 더 볼까요. 정부는 지난 8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방교부세의 7.3%(2023년 최종교부액 기준)에 해당하는 부동산교부세의 교부 기준을 바꾸겠다는 것이었죠. 현행 교부 기준은 재정여건(50.0%), 사회복지(35.0%), 지역교육(10.0%), 부동산보유세 규모(5.0%)로 나뉩니다.
여기서 사회복지 비중을 20.0%로 줄이고, 지역교육 비중을 없애는 대신 '저출생 대응(25.0%)'을 신설하겠다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정부가 키를 잡고 추진해야 할 저출생 정책을 지자체에 떠넘긴 셈입니다.[※참고: 지자체가 자주적인 판단에 따라 사용해온 부동산교부세의 사용 목적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재정 분권 원칙을 훼손할 우려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기초지자체들은 소멸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228개 시ㆍ군ㆍ구 가운데 130개(57.0%) 기초지자체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습니다. 20∼39세의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이 0.5(소멸위험지역 기준치) 미만인 기초지자체를 뜻합니다.
젊은이가 늘어날 가능성은 낮고, 훗날 노인들만 살 가능성이 높은 지역인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에 필요한 건 '재원'입니다. 정부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10년간 매년 1조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자체에 배분하는 이유입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해놓고 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정부는 저출생ㆍ고령화 문제와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선 세수 부족을 이유로 지방교부세를 깎아내고, 불용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세수펑크의 짐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세수 부족 사태를 '단순히 부족한 액수를 수치상으로 맞추기만 하면 되는 일'로 치부해도 괜찮은 걸까요?
■쟁점➌ 모순의 시발점 = 이쯤 되면 세수가 부족해진 이유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정부는 세수 부족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습니다.
지난해엔 "대내외 경제여건의 급격한 악화로 인한 수출 부진과 그로 인한 기업 영업이익 급감, 부동산 등 자산시장 위축"을, 올해는 "글로벌 복합위기의 여파로 인한 2023년 기업 영업이익 감소,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자산시장 부진"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세계 시장이 좋지 않아 법인세가 줄었고, 국내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아 부동산 세금이 쪼그라들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감세효과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2022년 정부가 법인세 세율을 낮추겠다고 했을 때 전문가들은 그로 인해 세수가 확연하게 줄어들 거란 분석을 내놨습니다. 당시 국회 예산정책처는 법인세 세율을 정부 방안대로 낮출 경우, 향후 4년간 15조원의 세금이 덜 걷힐 것이라고 전망했죠.
반면 정부는 같은 기간 법인세 세수 감소액을 7조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심지어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는 "법인세 인하로 인해 기업 투자와 일자리는 물론, 세수도 늘어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펼쳤습니다.
실제는 어땠을까요? 2022년 103조6000억원이었던 법인세는 2023년 80조4000억원으로 줄었고, 2024년엔 63조2000억원(재추계)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2022년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40조4000억원이나 줄었습니다.
글로벌 경기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전문가들의 비판이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입니다.
자, 종합해보겠습니다. 결국 정부의 감세 정책이 세수 부족으로 이어지고, 세수 부족은 지방교부세 축소와 지방재정 악화로 연결되며, 지방재정 악화는 저출생ㆍ고령화와 지방소멸을 부추깁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저출생ㆍ고령화와 지방소멸을 해소하겠다면서 천문학적인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역설적 상황이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정부가 뭔가를 잘못 생각한 걸까요?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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