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집 좀 비워주세요. 그가 올 시간이에요”…남편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사색(史色)]
[사색-83] “오늘 늦을 거야. 극장에 다녀올 거거든.”
남편이 외출 준비를 하면서 아내에게 얘기합니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표정은 온화합니다. 문을 열고 집에서 벗어났을 때,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날 아내의 ‘내연남’이 집을 방문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집을 비워줍니다. 아내의 바람을 응원이라도 하는 듯이.
율리시스는 고대 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이름입니다. 율리시스의 줄거리만 보면 뻔한 불륜 막장 스토리. 인류가 가장 애정하는 문학 작품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을 비꼬아 현대판 불륜극으로 꼬아버린 셈이었지요.
1882년 2월 2일. 제임스 조이스가 태어난 곳은 아일랜드 더블린. 오랜 세월 대영제국이 지배하던 곳이었습니다. 흑맥주에 취해 껄껄 웃는 시민들 사이에서 왠지 모를 비애가 서려 있습니다. 식민지 청년의 삶이 응당 그러하듯이.
더블린 세무징수원으로 일하던 아버지 존 밑에서 자란 조이스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적 감각이 탁월했습니다. 첫 단편 시 ‘Et tu Healy’(엣 투 힐리)를 썼을 때 그의 나이 불과 9살이었습니다.
아일랜드 자치를 위해 싸워 온 정치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을 향한 애도시였습니다. 파넬은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였지만, 유부녀와 불륜 사실이 공개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던 인물입니다.
파넬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소년의 천재적 작품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반대파는 뭣도 모르는 꼬맹이가 어른들 일에 함부로 나선다고 힐난했지요. 조이스의 아버지 존은 아들의 시를 인쇄해 열심히 돌리다가 직장을 잃었습니다. 이때부터였습니다. 조이스가 아일랜드 사회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조이스는 의과대학에 다닐 정도로 썩 공부를 잘했지만, 사회의 도덕관념에 결코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의 가톨릭이 강요하는 성도덕을 그는 끔찍이도 싫어했습니다. 보수적인 엄숙주의, 성도덕이 아일랜드를 옭아매고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렸을 적 가톨릭교회가 그들의 가족에게, 정치인 파넬에게 한 짓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메리가 임종 직전 “함께 기도하자”는 말을 거절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율리시스’의 바람맞은 남편 리오폴드 블룸이 거리를 배회하는 날짜 역시 1904년 6월 16일로 설정합니다(지금도 아일랜드에서는 6월 16일 더블린 거리를 걷는 ‘블룸스 데이’가 열립니다).
“내 사랑스러운 작은 창녀 노라, 네가 엉덩이 삽입당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기뻐. 그래, 그렇게 오랫동안 삽입했던 그날 밤을 기억해.”
누구보다 자유로울 것 같은 두 사람은 의외로 서로에게 충실하면서 죽을때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다만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법적 부부가 아니었는데, ‘결혼’이라는 관습이 지나치게 가톨릭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커플은 ‘더블린’을 떠나 유럽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자발적 망명 생활을 자처합니다. 조이스 문학이 다양한 방언들을 구현한 배경에는 그의 유랑생활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조이스는 문학적 영감을 ‘성적 욕망’이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렸습니다. 보수적인 문학계가 그에게 힐난을 쏟아내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성적 쾌락은 그에게 종교의 신성함만큼이나 위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작’ 율리시스가 그랬고, 그의 대표작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그랬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숙주의를 조소하고, 교훈적 서사를 비튼 작품들입니다.
율리시스 속에서 리오폴드 블룸은 그야말로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성당 앞 바닷가에서 그는 우연히 한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에게 보일듯 말듯한 자세로 자위합니다. 여자는 이를 알기라도 하는 듯 성당에서 퍼져 나오는 찬송가에 맞춰 육체적 관능미를 뽐냅니다.
비운의 공간에서도 ‘섹스’를 욕망하는 일 역시 분노할만한 일이지만, 그에게 있어 죽음을 애도하는 곳은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기 좋은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육신을 비료 삼아 새 생명을 피워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아이의 체온이 부부의 감정마저 얼어붙게 만든 셈이었습니다. 블룸은 몰리에 옆에 섭니다. 타인으로부터 육체적 만족을 얻은 그녀가 어쩐지 밉지 않습니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침대에 오르면서 블룸은 그녀의 엉덩이에 키스합니다. 희미해진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불꽃이 다시 타오릅니다.
‘율리시스’는 보수적 영미권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외설적’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영국 내무부는 판매 금지 처분을 주도합니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에게는 “화장실 문학을 전공하는 변태 정신병자의 작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판매금지가 풀린 건 미국의 판사 존 울지가 “외설이 아닌 새로운 장르의 실험이자 진지하고 정직한 책”이라고 판단한 뒤였습니다.
‘율리시스’의 각 장은 섹스·수음·성적환상·배변 등과 같은 온갖 섹슈얼리티 장치로 가득합니다. 기존 문학이 결코 접근하지 못했던(혹은 하지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우려를 표하는 친구들에게 조이스는 언제나 이야기했습니다. “현대 작가는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위험하게 써야 한다.”
문체는 도전적이었으나, 캐릭터의 내면은 고스란히 독자에 각인됩니다. 문장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구현한 최초의 작가로 제임스 조이스가 손꼽히는 배경입니다.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보르헤스가 조이스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문호들입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들은 종교화에만 의존하던 기존 관습을 타파하고 인간의 육체를 미학으로 승화해 르네상스를 열었습니다. 종교와 도덕의 시종이었던 문학의 세계에서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단아는 사슬에 묶여있던 욕망을 해방합니다. 육체와 욕망을 부단히도 찬미하면서.
조이스를 두고 누군가는 문학의 르네상스 작가라 했고, 누구는 변태 외설작가로 부릅니다. 판단은 언제나 독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ㅇ‘율리시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를 빗댄 제목이다.
ㅇ아내의 불륜을 용인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유럽과 미국의 ‘외설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 조이스는 엄숙한 성도덕에 도전하는 작품을 항상 써왔다.
ㅇ금서 해제가 되면서 율리시스는 마침내 인간 욕망의 발견이라는 차원에서 재평가받았다.
ㅇ노벨연구소가 뽑은 최고의책 100선에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인 ‘오디세이아’와 함께 ‘율리시스’가 이름을 올렸다.
<참고문헌>
ㅇ이강훈, 제임스 조이스 창작미학의 세속성-육체와 성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제임스 조이스 저널, 2006년
ㅇ김은혜, 블룸의 욕망 추구를 통한 조이스의 아일랜드 성도덕 비판, 제임스 조이스 저널, 2016년
ㅇ박윤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나타난 성과 섹슈얼리티, 신영어영문학,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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