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집 좀 비워주세요. 그가 올 시간이에요”…남편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11. 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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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83] “오늘 늦을 거야. 극장에 다녀올 거거든.”

남편이 외출 준비를 하면서 아내에게 얘기합니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표정은 온화합니다. 문을 열고 집에서 벗어났을 때,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날 아내의 ‘내연남’이 집을 방문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집을 비워줍니다. 아내의 바람을 응원이라도 하는 듯이.

“바람은 실수였어요...” 윌리엄 호가스의 ‘바그니오’. 바람피운 아내가 용서를 비는 모습을 그렸다. 기사 내용과는 관계없음.
남자는 그 길로 거리를 배회합니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18시간. 한나절이 훌쩍 넘는 방랑. 아내는 애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였습니다. 잠깐 분노는 거두시길. 이 이야기는 온전히 소설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 이야기입니다.

율리시스는 고대 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이름입니다. 율리시스의 줄거리만 보면 뻔한 불륜 막장 스토리. 인류가 가장 애정하는 문학 작품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을 비꼬아 현대판 불륜극으로 꼬아버린 셈이었지요.

“그저 불륜 얘기로만 본다면 섭하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초판. [사진출처=예일대학교]
세계 문학계는 그러나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냅니다. ‘율리시스’가 기존 문학이 미처 그리지 못한 세계를 구현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노벨연구소가 꼽은 ‘최고의 책 100선’에 오디세이아와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외설적 소설에서 세계 문학계가 포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아일랜드를 증오한 아일랜드 꼬마
“아일랜드는 부패하고 정체된 곳이야.”

1882년 2월 2일. 제임스 조이스가 태어난 곳은 아일랜드 더블린. 오랜 세월 대영제국이 지배하던 곳이었습니다. 흑맥주에 취해 껄껄 웃는 시민들 사이에서 왠지 모를 비애가 서려 있습니다. 식민지 청년의 삶이 응당 그러하듯이.

더블린 세무징수원으로 일하던 아버지 존 밑에서 자란 조이스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적 감각이 탁월했습니다. 첫 단편 시 ‘Et tu Healy’(엣 투 힐리)를 썼을 때 그의 나이 불과 9살이었습니다.

“어디서 영감이 떠올라요, 아버지.” 1888년 6살 때 제임스 조이스.
천재적 글재주는 세상과 불화한다지만, 그에겐 너무나 빨리 시련이 찾아옵니다. ‘엣 투 힐리’가 아일랜드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 자치를 위해 싸워 온 정치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을 향한 애도시였습니다. 파넬은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였지만, 유부녀와 불륜 사실이 공개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던 인물입니다.

“부...불륜은 사실입니다.” 아일랜드의 유력 정치인 찰스 파넬.
깨끗해야 했던 정치인에게 드러난 불쾌한 사생활은 그의 정치생명을 끊어버렸습니다. 그와 함께한 동지들 역시 모두 등을 돌렸지요. 한편이라고 믿었던 아일랜드 가톨릭교회, 의회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넬의 가장 친한 정치적 동료 팀 힐리는 비난 행렬의 맨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의 독립은 그만큼 한층 더 멀어졌습니다.
파넬을 흡혈박쥐로 묘사한 만평.
9글자의 시로 사회를 들끓게 하다
제임스 조이스가 분노한 배경이었습니다. 파넬이 이끄는 아일랜드의 새로운 미래를 아버지와 함께 지지했던 터였습니다. 도덕적 결함을 트집 삼아 무너뜨리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인물로 여겼지요. 문인은 글로써 얘기하는 법. 조이스는 종이에 9글자를 썼습니다. ‘Et tu, Healy?’(힐리, 너마저)였습니다.
“브루투스 너마저...!” 줄리어스 시저를 배신한 브루투스를 묘사한 그림. 윌리엄 홈스 설리번 작품.
고대 로마 줄리어스 시저가 브루투스에게 배신당해 죽을 때 외쳤던 말 “Et tu, Brute?’(브루투스, 너마저)를 빗댄 시. 바꿔말하면, 파넬을 영웅 줄리어스 시저로, 그의 동료 팀 힐리를 배신자 브루투스로 묘사한 셈입니다. 9살 소년의 9글자 시가 아일랜드 시민사회를 뒤흔듭니다.

파넬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소년의 천재적 작품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반대파는 뭣도 모르는 꼬맹이가 어른들 일에 함부로 나선다고 힐난했지요. 조이스의 아버지 존은 아들의 시를 인쇄해 열심히 돌리다가 직장을 잃었습니다. 이때부터였습니다. 조이스가 아일랜드 사회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아들의 시는 정말 탁월했다네. ” 제임스 조이스의 아버지인 존 조이스의 노년을 묘사한 초상화.
자유로운 영혼 제임스 조이스
“나와 데이트하겠어?”

조이스는 의과대학에 다닐 정도로 썩 공부를 잘했지만, 사회의 도덕관념에 결코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의 가톨릭이 강요하는 성도덕을 그는 끔찍이도 싫어했습니다. 보수적인 엄숙주의, 성도덕이 아일랜드를 옭아매고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렸을 적 가톨릭교회가 그들의 가족에게, 정치인 파넬에게 한 짓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메리가 임종 직전 “함께 기도하자”는 말을 거절했을 정도였습니다.

“그 알량한 성도덕이 아일랜드를 갉아먹고 있지.” 제임스 조이스.
조이스는 엄숙한 더블린을 비웃듯 자유롭게 사랑합니다(그는 14살 때부터 매춘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호텔 청소부로 일하던 노라 버라클과 첫 데이트 때(1904년 6월 16일), 해변에서 전희를 나눴을 정도입니다.

이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율리시스’의 바람맞은 남편 리오폴드 블룸이 거리를 배회하는 날짜 역시 1904년 6월 16일로 설정합니다(지금도 아일랜드에서는 6월 16일 더블린 거리를 걷는 ‘블룸스 데이’가 열립니다).

“조이스가 좀 외설적이긴 하죠.” 조이스의 뮤즈 노라의 사진.
그녀에게 보낸 ‘외설적 편지’는 지금까지 전설처럼 전해집니다.

“내 사랑스러운 작은 창녀 노라, 네가 엉덩이 삽입당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기뻐. 그래, 그렇게 오랫동안 삽입했던 그날 밤을 기억해.”

누구보다 자유로울 것 같은 두 사람은 의외로 서로에게 충실하면서 죽을때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다만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법적 부부가 아니었는데, ‘결혼’이라는 관습이 지나치게 가톨릭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커플은 ‘더블린’을 떠나 유럽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자발적 망명 생활을 자처합니다. 조이스 문학이 다양한 방언들을 구현한 배경에는 그의 유랑생활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오래 살았던 이탈리아 북부 트리에스테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출처=Silverije]
불온한 외설서적을 쓴 조이스
“영혼의 우물가엔 모두 성적 욕망이 있다.”

조이스는 문학적 영감을 ‘성적 욕망’이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렸습니다. 보수적인 문학계가 그에게 힐난을 쏟아내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성적 쾌락은 그에게 종교의 신성함만큼이나 위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작’ 율리시스가 그랬고, 그의 대표작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그랬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숙주의를 조소하고, 교훈적 서사를 비튼 작품들입니다.

“나를 고작 그런 남자와 비교하다니.” 오디세우스 흉상.
율리시스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이름입니다. 오디세우스가 누구입니까.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요, 귀향길에서 숱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마침내 20년만에 가족을 찾은 위대한 가장입니다. 그런 오디세우스를 아내의 외도를 묵인하는 고개숙인 남자에 비하다니요.

율리시스 속에서 리오폴드 블룸은 그야말로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성당 앞 바닷가에서 그는 우연히 한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에게 보일듯 말듯한 자세로 자위합니다. 여자는 이를 알기라도 하는 듯 성당에서 퍼져 나오는 찬송가에 맞춰 육체적 관능미를 뽐냅니다.

“율리시스는 그저 불륜의 이야기가 아니라네.” 제임스 조이스.
섹슈얼리티로 가득한 율리시스
‘죽음의 신’ 이름인 ‘하데스’ 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블룸은 한 장례식에 찾아갑니다. 죽음의 엄숙함이 진득이 묻어나는 곳에서도 그의 외설적 생각은 멈추지 않습니다. 묘지에서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달콤할지 그는 상상합니다. “젊은 과부를 낚기에 좋은 곳이겠군.”

비운의 공간에서도 ‘섹스’를 욕망하는 일 역시 분노할만한 일이지만, 그에게 있어 죽음을 애도하는 곳은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기 좋은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육신을 비료 삼아 새 생명을 피워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1900년께 아일랜드 더블린. 식민지배와 가톨릭적 엄숙주의로 성도덕이 매우 보수적인 장소였다. 율리시스 속 블룸은 이 거리를 배회하면서 성적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방랑 끝에 돌아온 블룸이 외도를 한 아내 몰리를 바라봅니다. 두 사람은 10년 전만 해도 뜨거운 사이였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신혼일 때 갓 태어난 아기가 사망한 뒤부터 두 사람은 서로의 육체를 탐할 수 없었습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아이의 체온이 부부의 감정마저 얼어붙게 만든 셈이었습니다. 블룸은 몰리에 옆에 섭니다. 타인으로부터 육체적 만족을 얻은 그녀가 어쩐지 밉지 않습니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침대에 오르면서 블룸은 그녀의 엉덩이에 키스합니다. 희미해진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불꽃이 다시 타오릅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 집필을 마무리한 프랑스 파리 5구역의 한 저택. [사진출처=Mbzt]
미국과 유럽을 흔든 ‘율리시스’
“쓰레기 변태작가.”

‘율리시스’는 보수적 영미권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외설적’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영국 내무부는 판매 금지 처분을 주도합니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에게는 “화장실 문학을 전공하는 변태 정신병자의 작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판매금지가 풀린 건 미국의 판사 존 울지가 “외설이 아닌 새로운 장르의 실험이자 진지하고 정직한 책”이라고 판단한 뒤였습니다.

“조이스 소설은 진짜야.” 율리시스를 실은 미국 문예지 ‘리틀리뷰’의 편집인들.
금서가 해제된 이후,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오랜 시간 종교와 관습에 의해 질식당하기 직전이던 인간 ‘욕망’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였습니다. 10년 동안 육체적 관계가 없었던 블룸은 죽어있는 존재와 다름없었습니다. 육체적 쾌락의 부재는 존재의 상실과 닿습니다. 정신적 사랑이 육체적 욕망보다 우월하다는 기존의 관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었지요.

‘율리시스’의 각 장은 섹스·수음·성적환상·배변 등과 같은 온갖 섹슈얼리티 장치로 가득합니다. 기존 문학이 결코 접근하지 못했던(혹은 하지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우려를 표하는 친구들에게 조이스는 언제나 이야기했습니다. “현대 작가는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위험하게 써야 한다.”

“뻔한 이야기를 쓸 것이라면, 당신은 왜 작가가 되려 하지?” 제임스 조이스.
그의 문체 역시 모험적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다가 느닷없이 인물들의 독백이 끼어듭니다. 등장 인물의 내면의 생각을 실험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문체는 도전적이었으나, 캐릭터의 내면은 고스란히 독자에 각인됩니다. 문장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구현한 최초의 작가로 제임스 조이스가 손꼽히는 배경입니다.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보르헤스가 조이스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문호들입니다.

율리시스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다시 율리시스의 세계 속으로. 욕망을 존재의 본질로 삼는 조이스에게 블룸의 18시간은 단순한 한 남자의 방황이 아니었습니다. 종교가 태동한 이래 인간에게 접근이 허용되지 않던 ‘욕망의 이데아’를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내 몰리의 몸에 입을 갖다 대면서 블룸이 다시 생의 의의를 발견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영문학과 교수들은 평생을 율리시스를 연구하게 될 거네.” 실험적 내용과 문체로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의 마지막 장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페넬로페’입니다. 영웅 오디세우스가 20년만에 만나는 아내의 이름. 오디세우스가 염원한 가족을 향한 숭고한 사랑은, 블룸의 처연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요. 성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걸 조이스는 그토록 항변하고 싶었던 걸까요. 블룸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욕망에서 강제로 격리되어야 했던 우리 인류를 상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들은 종교화에만 의존하던 기존 관습을 타파하고 인간의 육체를 미학으로 승화해 르네상스를 열었습니다. 종교와 도덕의 시종이었던 문학의 세계에서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단아는 사슬에 묶여있던 욕망을 해방합니다. 육체와 욕망을 부단히도 찬미하면서.

조이스를 두고 누군가는 문학의 르네상스 작가라 했고, 누구는 변태 외설작가로 부릅니다. 판단은 언제나 독자의 몫으로 남습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세인트 스티븐 그린 에 있는 조이스의 흉상. [사진출처=illustratedjc]
제임스 조이스(위 왼쪽)가 연인 노라(아래 오른쪽)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네줄요약>

ㅇ‘율리시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를 빗댄 제목이다.

ㅇ아내의 불륜을 용인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유럽과 미국의 ‘외설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 조이스는 엄숙한 성도덕에 도전하는 작품을 항상 써왔다.

ㅇ금서 해제가 되면서 율리시스는 마침내 인간 욕망의 발견이라는 차원에서 재평가받았다.

ㅇ노벨연구소가 뽑은 최고의책 100선에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인 ‘오디세이아’와 함께 ‘율리시스’가 이름을 올렸다.

<참고문헌>

ㅇ이강훈, 제임스 조이스 창작미학의 세속성-육체와 성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제임스 조이스 저널, 2006년

ㅇ김은혜, 블룸의 욕망 추구를 통한 조이스의 아일랜드 성도덕 비판, 제임스 조이스 저널, 2016년

ㅇ박윤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나타난 성과 섹슈얼리티, 신영어영문학,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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