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수에게 끌려갈 위기…‘수박이 구출 작전’[이상한 동물원⑫]
‘동물도 살 만하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3년 만에 만난 장군이는 시골 동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장님댁 골든리트리버 장군이가 앞서면 작은 개 똘똘이가 뒤따랐다. 장군이와 똘똘이를 만난 이웃 어르신들은 마치 아는 집 아이들을 대하듯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개들도 눈을 가늘게 뜨며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3년 전 봄, 시골 개 의료봉사를 위해 청주 문의면 묘암리로 가는 국도는 떨어진 벚꽃으로 자동차 바퀴에 꽃물이 들 지경이었다. 홍매화가 붉은 마을 입구를 지나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나왔다. 중성화 수술을 위해 모인 개들 중 닮은꼴 여럿이 있었는데 이유를 묻자 이장님댁 똘똘이를 지목했다. 똘똘이는 이웃들의 원성으로 갇혀 지냈으나 수술 후 장군이와 동네 마실을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묘암리 이장님은 마을 고양이가 늘어나 중성화 수술을 원하셨다. 산골마을 고양이들은 이주가 어렵다. 마을 어르신들이 주는 먹이가 고양이 수에 비해 적어지면 야생화되어 야생조류를 사냥하고 다수 번식된 시골개들도 들개화되어 야생포유류를 위협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야생동물보호에 관심 있는 공영동물원 수의사들을 중심으로 청주시, 청주시수의사회, 전국수의과대학학생협회,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이하 어웨어)가 봉사에 참여했다. 수의사와 수의대학생으로 조직된 수술팀이 검진과 중성화 수술을, 어웨어와 청주시장님을 비롯한 봉사자들이 개집과 목줄 교체, 개집 주변 환경을 정비했다.
마을회관에서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어르신들은 걱정되시는지 주변을 서성이셨다. 전날 포획 틀을 가져다드리며 고양이들이 아침밥을 먹으러 올 때 포획을 부탁드렸다. 순차적으로 이동해 수술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길어졌고 어르신들은 갇혀있는 고양이들이 안쓰럽다며 꺼내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문득 이 동네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집에 들어온 동물에게 자리를 내주는 이 마을은 분명 낯선 이방인도 살 만할 테니까!
3년 전 다른 마을 의료봉사에서 래브라도리트리버 수박이를 만났다. 수박이는 8월 뙤약볕에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에서 혀를 빼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 쇠말뚝에 박힌 짧은 목줄이 이리저리 감겨 수박이는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일 아무 일도 없던 수박이는 처음 보는 봉사자들이 들어서자 반가워 어쩔 줄 몰랐다. 물그릇은 진작 엎어져 목이 말라 보였다. 수돗가로 데려가 물 호스를 대주니 물줄기를 맞으며 한참을 서 있었다. 봉사자들은 수박이의 목줄을 길게 해 활동반경을 넓혀주고 햇볕을 가릴 가림막을 쳐주었다.
봉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밤, 봉사자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 개장수가 수박이를 데려간다는 얘기를 듣고 주인을 찾아가 수박이를 사겠다고 설득했는데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통화 후 잠이 오지 않았다. 개 구조를 검색해보니 현행법상 절도였다.
일단 언제 올지 모르는 개장수는 피하고 협상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새벽 5시 어둑한 마을에 들어섰고 기억을 되짚어가는 골목길에선 어르신들의 작은 기침에도 흠칫 놀랐다. 수박이를 묶고 있던 말뚝을 뽑자 수박이는 산책 가는 줄 알고 신이 났다. 막상 차에 태우려 하자 덩치 큰 수박이는 힘으로 버텼다. 실랑이 끝에 수박이를 뒷자리에 간신히 욱여넣었다.
뛰는 심박수만큼 엔진 RPM을 올려 마을을 빠져나왔다. 며칠 후 차가 특정되어 경찰서에 출석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보호자와 합의 후 수박이는 내 개가 됐다.
어웨어의 도움으로 캐나다에 가는 수박이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갔다. 날은 추웠고 수박이와 함께 입양가는 개들이 있었다. 큰 개들이었고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었다. 국내 동물보호소에 들어오는 개들도 대부분 저런 종이라고 한다. 시골 마당에 묶여 있는 개들은 계속 태어나 들개가 되거나 포획돼서 보호소에 잠시 머물다가 안락사 되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보호소의학(Shelter Medicine)을 공부한 수의사의 강연을 들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넘치는 수돗물을 막으려면 우선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 그것이 중성화 수술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 해결은 솔직한 반성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이번 묘암리 의료봉사를 하면서 사고가 있었다. 봉사단은 단시간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수술 2팀, 검진 1팀, 환경정비 1팀으로 나누었다. 수술을 위해 마취 주사를 맞은 천명이는 갑자기 모든 바이털이 떨어졌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수술 받기 전 보호자인 할머니에게서 천명이의 사연을 들은지라 마음이 무거웠다. 겨울날 할머니 집 마루 밑에 떠돌이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어미와 새끼가 모두 얼어 죽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꺼내 보니 죽은 새끼들 속에 숨이 붙어있던 한 마리가 있었고 밤낮으로 보살펴 살려낸 강아지가 천명이었다.
그날도 천명이는 할머니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연로하신 할머니가 받을 갑작스러운 충격을 줄여보고자 할머니 가족들과 상의했고 할머니에게는 응급한 천명이를 큰 병원으로 옮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계속 숨길 수는 없었다.
며칠 후 천명이가 담긴 상자를 들고 할머니 집을 찾았다. 상자를 가족에게 인계하고 문밖에 서 있었다. 할머니의 통곡이 들렸다. 봉사단의 책임자로서 할머니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 방에 들어갔다. 원망일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나에게 “선생님들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수십년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흘렀다.
수박이가 한국을 떠나고 나서 얼마 후 사진을 전달받았다. 캐나다의 동물단체 직원과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수박이는 즐거워 보였다. 수박이 같은 개들은 인기가 좋아 금방 분양된다고 한다. 한국도 올해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돼서 개장수가 수박이를 데려가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천명이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형 진료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현지에 나가 마취와 수술을 하다 보니 수술이나 응급에 대비한 장비들을 충분히 준비하기가 어렵다. 다행히 청주시는 내년 고향사랑기부제 지정사업으로 ‘동물 의료 사각지대, 청주동물원이 찾아갑니다’를 선정했다.
움직이는 진료실을 운영하는 것인데 트레일러에 마취 및 응급 장비들을 구비해 보다 안정된 여건에서 중성화 수술 정도는 가능케 하는 게 핵심이다. 환경부 거점동물원으로서 상주 수의사가 없는 충청·강원권역 동물원의 동물 검진뿐 아니라 청주시 외곽 시골 마을의 동물도 보살필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된다. 청주시 축산과가 청주 시내 동물병원, 지역 동물단체와 함께 시골 개 중성화 사업(IN)을 계획하고 있다. 다양한 수의사회가 사업이 미치지 못하는 곳(OUT)에 직접 가서 봉사하면 어떨까? IN-OUT의 협력으로 동물보호소에 들어오는 동물이 현저히 줄고 야생동물도 보호하는 모범사례가 되길 바란다.
“사람도 힘든데 무슨 동물까지 챙기느냐”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만난다. 그러나 누구든 ‘동물도 살 만하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를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동물을 대하는 마음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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