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10> 오딧세이 시베리아 (스코보로디노)

2024. 11. 16.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하리라...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미국 켄터키주에 살던 나딘스테어 할머니가 85세에 쓴 시'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소개되면 널리 알려졌다. 지난1970년대 소년 윤영선도 김찬삼교수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세계여행을 꿈꾼다. 그의 꿈은 바쁜 관료생활로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랬던 그가 고교 졸업 50년만에 꿈을 실천했다. 나딘스테어 할머니의 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이르기 까지 50일간의 자동차 여정이다. 그는 여행기간동안 멈춤과 느림의 시간속에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태고적 고원의 웅장함을 느꼈다고 한다. 70 나이에 꿈을 이룬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의 횡단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북쪽 도시 '스코보로디노'로 올라 갈수록 낙엽송인 자작나무는 적어지고, 소나무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림이 많아진다. 목적지 북위 54도인 '스코보로디노'로 향하고 있다.

북극해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하늘은 회색 구름이 많고, 수시로 이슬비가 내린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고위도 지방으로 올라가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침엽수림을 통과하며, 하루 종일 비슷한 풍경을 계속 보면서 운전하고 있다. 시베리아 대평원의 경이로운 야성미, 압도적인 원시적 풍경이 우리를 자연인으로 만든다.

"자연은 모든 아름다움의 으뜸이며 진실한 모성적 원천이다." 독일의 헤르만 헤세는 자연을 예찬했다. 시베리아의 대평원을 방랑하는 나그네처럼 달려가며 박목월 시인의 시구절이 생각난다.".... 방랑과 청춘과 사랑도 때가 있고 끝이 있습니다. .... 나의 나그넷길은 어디로 가나요?"

건너편 차선에서 마주 오는 러시아 트럭 기사들이 앞쪽에 교통경찰이 단속하고 있다고 서치라이트를 한두 번 깜박여 주며 달려간다. 선두 차 운전하는 H회장이 경찰과 눈을 맞추지 말라고 무전기로 연락해 준다. 러시아 경찰은 생트집 잡는데 악명이 높다고 조언한다.

시베리아 편도 1차선, 왕복 2차선 국도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침엽수림. [사진=윤영선]

중간에 우리에게 반갑다고 인사하는 러시아인을 가끔 만난다. 점심에 휴게소에서 만난 트럭 기사는 한국 친구와 과거 1주일 동안 함께 오토바이 여행을 했다며 이름이 김은호라는 사람의 사진을 휴대전화에서 꺼내서 보여준다. 도로 옆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을 때 어떤 러시아인이 일부터 찾아와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한국에서 3년 동안 일했다고 말하며, 한국 사람 만나서 반갑다고 말한다. 헤어질 때 한국말로 '잘 가세요' 인사를 한다.

작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북새통이다. 일시에 8명이 주문을 하면 러시아 식당 종업원이 돈 계산을 못 한다. 시베리아 휴게소 식당 여주인은 대부분 무뚝뚝하고 인상이 굳어 있다. 평생 시베리아 숲속에서 살아가는 단순할 삶일 것이다.

러시아어 통역을 위해 출발 전에 러시아어를 잘하는 대학생, 윤 군을 알바생으로 채용해서 동행하고 있다. 동해항에서 출발하여 목적지 이스탄불, 그리고 서울까지 전 구간을 함께한다.

윤 군이 우리 일행의 식사 메뉴를 취합해서 주문하고, 식대를 루블화로 계산하는 절차가 매번 복잡하다. 우크라이나전쟁 제재로 신용카드사용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현금지불이 번거롭다. 휴게소에서 파는 소고기, 닭고기, 러시아 빵, 각종 러시아 음식은 이미 만들어져 진열되어 있다.

음식을 주문하면 종업원이 음식 한 개씩 전기 레인지에 2, 3분 덥혀서 팔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영어가 전혀 안 통하기 때문에 통역을 맡은 윤 군은 식사 때가 가장 바쁘다. 우리가 지나갈 러시아, 몽골,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조지아 등 과거 소련연방 국가는 러시아어가 통용되기 때문에 알바생으로 러시아어과 대학생을 두 달 고용해서 함께 여행하고 있다.

도로의 양옆을 뒤덮고 있는 토탄 불길. [사진=윤영선]

시베리아 이동 중 가장 곤욕스러운 일은 불결한 화장실이다. 휴게실의 부속 화장실은 20루블(약 300원), 30루블, 40루블(약 600원) 요금을 받는다. 쪼그리고 앉아 사용하는 재래식 변기는 우리의 40년 전 변기라 너무 불편하다. 화장실 물이 잘 안 나와서 매우 지저분하고, 화장실에 휴지도 없어서 화장실 갈 때마다 절차가 복잡하다. 외국 관광객이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칭찬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남자들은 도로변 산속에 적당히 해결할 수 있는데, 미세스 송은 휴게소 갈 때마다 매번 울상이다. 화장실에 돈 받는 사람은 대개 나이 든 할머니이다. 화장실이 시베리아 노인 일자리 창출의 하나구나 생각하며 웃고 만다. 좋은 점은 나무와 목재펄프가 많은 지역이라 식당이나 휴게소의 종이컵 인심은 후하다고 미세스 송이 말해서 모두 웃는다.

점심 식사 후 '스코보로디노' 200킬로 못 미쳐 간헐적으로 산불 연기가 대평원을 덮고 있다. 땅속 '토탄'의 불 때문에 나무가 말라 죽고, 토탄에서 나오는 유독한 연기와 냄새가 숲을 가득 채우고 있다. 토탄은 석탄 중에서 역사가 가장 짧은 것으로 사람들이 연료로 사용하지 아니하는 초기 석탄의 일종이다.

유독성 냄새와 짙은 연기 때문에 야생 짐승이나 새들도 살기 어려울 것 같다. 토탄 불은 땅속의 광맥을 옮겨 다니며 불이 나기 때문에 진화가 안 된다고 한다. 겨울철 눈이 내리면 잠시 소강상태로 꺼진다고 한다. 눈이 쌓인 겨울은 땅속에 불씨로 남아있다가 다음 해 여름철 건조해 되면 다시 불꽃이 되살아나서 숲은 태운다고 한다. 대자연의 섭리에 인간의 능력은 제한적이다.

짙은 연기가 자욱하여 하늘을 볼 수도 없다. 침묵의 원시림에 지옥의 불이 난 것 같다. 이러한 화재는 오래된 자연현상인데, 기후 온난화 현상이 산불을 나쁜 쪽으로 악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연기 자욱한 불길 옆 도로를 지나가면서 자동차에 불이 옮겨붙는 게 아닌지 걱정이 든다. 이러한 불길이 수백 킬로 이어지고 있다. 화물차들은 토탄 불 연기에 익숙한 듯 잘 달린다.

미세스 송이 선두 차를 운전하는 H회장의 별명을 '시베리아 하이에나'라고 지었다. H회장은 한국의 1세대 카레이서 출신이다. 젊은 시절 시베리아, 몽골고원, 중앙아시아 지역의 자동차 경주대회에 여러 번 참가했다고 한다. H회장이 자동차 여행을 모집한 리더이다.

토탄 불로 죽어 가는 자작나무. [사진=윤영선]

H회장의 운전 습관은 전방에 차가 나타나면 무조건 중앙선을 넘어서 급가속으로 추월해서 운전한다. 후미에 뒤따라가는 차는 완전히 고문 운전이다. 가급적 120킬로 이상 속도를 내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앞에 차만 있으면 '속도 본성'으로 급가속 운전한다.

내 차의 사람 좋은 과묵한 L실장이 운전이 힘들다며 계속 씩씩댄다. 스코보로디노 가는 중간에 북극해 도시 '야쿠츠크'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야쿠츠크는 이곳에서 1000킬로 떨어진 북극해 툰드라 지역의 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라고 한다. 유전개발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겨울철 영하 50도 이하가 되어야 학교를 휴업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영하 50도 추위를 기다린다고 한다.

툰드라 지대의 타이가 숲, 수록 목장 등 생태계를 꼭 보고 싶은데, 일정이 허락하지 아니함을 아쉽게 생각하며 북쪽으로 달린다. '혹독한 추위'를 체험하러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라고 하니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은 성격도 본인도 모르게 변한다.

후미에 따라가는 우리는 선두 차에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무전기로 물어본다. 앞에서 무전기로 150킬로 남았다고 말한다. 두세 시간 가야 할 먼 거리임에도 미세스 송이 "얼마 안 남았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얼마 후 70킬로 남았다고 무전기 연락이 온다. 미세스 송이 "이제는 남은 거리가 정말 껌이네"라고 말해서 웃으며 운전한다. 인간의 상황 적응력은 뛰어나다.

광활한 대지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본인도 모르게 대륙성 만만디, 대륙성 기질로 변하고 있다. 이곳에 우리도 몇 달만 살게 되면 성격이 대륙성 기질로 변할 것 같다. '한대기후' 지역이라 주변에 농경지도 없다. 경작 한계선을 넘어선 것 같다.

지난 2020년 2월 시베리아 설원의 자작나무 숲의 전경. [사진=윤영선]

토탄 연기 자욱한 시베리아 평원을 달리며 낭만적인 겨울 설원을 상상해 본다. 바이칼호 설경을 보기 위해 방문했던 4년 전 시베리아 눈 덮인 자작나무 숲길이 생각난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낭만적 설원 풍경을 상상하며 자욱한 연기 속을 지나가고 있다. 이곳은 봄가을은 매우 짧고, 긴 겨울과 여름 두 계절만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생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과거 몽골족은 수렵으로 살았다. 야생 동물을 잡아서 모피는 팔고, 고기는 식용으로 이용했는데. 목재 가공 등 임업이 주된 업종일 것이다. 7월 중순 북위 54도인 이곳 낮이 하루 17시간 준 백야 지대이다. 인구 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손님이 적으니 한 곳에서 식당, 휴게소, 잡화점, 여관, 주유소를 함께 운영한다. 숙소의 침대 쿠션이 엉망이라 누우면 몸이 쑥 들어간다. 뚱뚱한 러시아 운전사들이 사용하는 아주 오래된 침대인 것 같다. 침대 시트도 언제 세탁했는지 지저분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따뜻한 목욕물도 잘 안 나오는 낙후된 여관이다.

여관방에 비치된 물 끓이는 커피포트도 언제 세척했는지 알 수 없다. 다행이 서울에서 미세스 송이 접이식 전기 커피포트를 가져왔기 때문에 커피 타는 온수를 끊일 수 있다. 밖의 저녁 날씨는 쌀쌀해서 이불이 필요하다. 토탄이 타는 냄새가 이곳 숙소에도 심하다.

오늘 저녁도 피곤을 이기기 위해 반주로 러시아 보드카를 몇 잔 마신다. 서울에서 안락한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잘 때는 밤중에 한두 번씩 꼭 깨어서 뒤척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쁜 침대에서도 피곤함에 잠을 잘 잔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