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왜 득보다 실이 많은가?[상법개정안 논란③]

이인준 기자 2024. 11. 1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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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표제, 이사회 역할 강화 수단으로 주목
소수주주 이익 강화 필요성은 공감
하지만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진단
칼 아이칸 등 기업사냥꾼 악용 우려 커
'의무화 과도하다' 의견…OECD 회원국들 도입 안해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2022.10.13.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지난해 한국 대표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 올라온 모든 안건들에 100% 찬성표를 던졌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주요 181개사 중 지난해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삼성전자처럼 100%인 기업은 현대차, LG전자, 현대모비스, 삼성물산 등 163개사(90.1%)에 달한다.

"이사회가 총수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사회 내 지배주주의 영향력이 이처럼 워낙 크다보니 소액주주 이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높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재평가)'의 주 배경도 이 같은 이사회의 역할이 한 몫 했다.

상법 개정안 중 '집중투표제'가 나온 이유는 이에 따른 대안으로 떠올랐다.

집중투표제 "대주주 전횡 견제 기대" 목소리

일부에서는 이 같은 집중투표제가 소액 주주가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현행 상법으로는 이사 5명을 선임할 경우, 원칙적으로 1주당 의결권 1개만을 행사할 수 있다. 법에 규정된 '1주 1의결권' 원칙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 이사들이 지배주주의 일방적인 의지로 선임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사회의 구성 자체가 주주전체의 이익보다는 지배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이 연장선이다.

하지만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뽑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 제도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출한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것이다. 이 의결권은 이사 한 사람에게 몰아서 행사할 수도 있다.

예컨대 주식 10주를 가진 주주가 있다고 가정할 때, 이사 5명에 대해 10개씩 총 50개 의결권을 갖게 하는 식이다. 이 경우 일반 주주들도 지배주주와 표 대결을 통해 원하는 이사를 선임하거나, 원치 않는 이사를 거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소액 주주들이 사외이사 선임에 적극 관여하게 되면 사외이사가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적절한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기대가 들린다.

이 같은 집중투표제는 1998년 개정 상법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회사마다 정관을 통해 이를 배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민주당 주도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안에선 이를 아예 의무화하고 있다.

"경영 저해…외국 투기자본 악용" 우려도 만만치 않아

재계 등에선 이 같은 상법 개정안은 소액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선 이사회가 '산으로' 갈 수 있다.

이사회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경우 경영 의사결정이 정상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지기보다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 특히 소액 주주 측에서 선임한 이사가 소액 주주의 이익만 대변해 오히려 주주 충실의무를 위반할 수 있다고 본다.

국내 기업들이 단기 이익을 노리는 외국계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거세다.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행동주의 펀드인 칼 아이칸 타깃이 된 KT&G 같은 피해 사례가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칼 아이칸은 2006년 다른 헤지펀드와 연합해 KT&G 주식 6.59%를 매입한 뒤, KT&G 정관상 집중투표 배제 규정이 없는 점을 이용해 주주제안을 통해 3명의 이사후보를 추천하고 모든 이사를 집중투표를 통해 선출할 것 요구했다.

칼 아이칸은 사외이사 1인을 진출시켜 이사회를 쥐락펴락하다가, 그해 12월 주식 매도 차익 1358억원과 배당금 124억 원등 1482억원을 챙긴 뒤 한국을 떠났다.

집중투표제가 소액 주주를 위한 이사를 선임한다는 순기능보다 단기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사익추구를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기업들의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KT&G는 당시 칼 아이칸 공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총 2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또 칼 아이칸 요구로 영업비밀 등 핵심 정보도 유출하게 됐다.

무엇보다 상장회사 자율로 결정할 문제를 국가가 상법 개정안으로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크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주주 간 파벌싸움과 경영효율성 저하 등을 고려하면 집중투표제는 오히려 실익이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ijoin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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