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경계를 허무는 선율
[앵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남북 대치의 현장인 DMZ,‘비무장지대’는 전쟁과 분단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는 곳인데요.
분단 70년을 넘어서면서 DMZ가 가진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담은 공간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로 평화의 길을 모색하려는 음악제가 열렸다고 합니다.
바로 ‘DMZ 오픈 국제음악제’인데요.
전쟁의 도구였던 탄약을 보관하던 창고에서도 연주회가 열렸다고 하네요.
장예진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한국의 민요, 본조 아리랑을 변주한 교향곡, ‘아리랑 환상곡’입니다.
지난 9일 ‘DMZ 오픈 국제음악제’ 개막식 연주 상황인데요.
[최영진/경기관광공사 : "음악을 통해서 특히 클래식, DMZ에 평화의 가치, 생명의 가치 그런 문화적인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확산시키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기획하게 됐고요."]
‘DMZ 오픈 국제음악제’는 생태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음악에 담아내는 클래식 음악 축제입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참가해 8일 동안 경기도 곳곳에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경기도 포천에서도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는데요.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하는 DMZ 오픈 국제음악제는 생태와 환경,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기위해 마련된 행사인데요.
음악제에는 이 세상에 인류애와 희망이 울리길 바라는 어느 피아니스트의 꿈이 담겨있습니다.
오래된 성당 건물 앞, 피아노 한 대가 놓입니다.
["약간만 더 이렇게...10cm만."]
임미정 음악제 총감독이 악기 배치를 세심하게 살핍니다.
피아니스트로, 한세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임미정 감독은 이전부터 ‘DMZ’와 ‘평화’를 주제로한 음악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강원도 접경 지역에서 진행한 PLZ, Peace and life zone 페스티벌 등이 대표적인데요.
[임미정/DMZ OPEN 페스티벌 총감독 : "음악이 가지는 힘을 이용해서 이 세상에 많이 퍼지다 보면 우리가 가진 사회의 수많은 문제가 풀리지 않을까…."]
임 감독은 서울대와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국내외 콩쿨에서 수상하며,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분단’에 대한 고민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고민의 실타래도 연주 활동을 통해 풀어나갔습니다.
2000년 뉴욕의 링컨센터에서 UN 정상회담을 기념해 열린 음악회.
이 자리에 초청된 임 감독은 북한 작곡가 윤충남의 ‘조선은 하나다’를 초연한 바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다양한 협연을 펼쳤습니다.
[임미정/DMZ OPEN 페스티벌 총감독 :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했어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상태인데 우리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살고 있던가..."]
음악인들과의 교류도 잊지 못하는데요.
북한의 정상급 성악가 허광수 씨.
그와 함께했던 미국 공연은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합니다.
분단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을 꿈꾸는 데에는 1983년, 당시 19살에 KBS를 방문했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임미정/DMZ OPEN 페스티벌 총감독 : "KBS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녹화를 하러 KBS에 갔는데 이산가족 찾기가 벌어진 지 며칠 안 됐어요. (가족과) 헤어져서 40년 후에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게 저한테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접경 지역 포천에 잔잔하게 흐릅니다.
남북을 엮는 활발한 음악 활동으로 교류의 가능성을 발견해 나간 임 감독은, DMZ 오픈 국제음악제가 새로운 소통의 발판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경기도에서는 7개의 시, 군이 북한 땅과 접하고 있는데요.
이번 음악제는 DMZ를 문화 교류의 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합니다.
[조창범/경기도 평화협력국장 : "(DMZ가) 전쟁의 상흔이라는 이 부분만 계속해서 연상했는데 이제는 좀 더 생태, 평화, 예술적인 새로운 공간이라는 걸 통해서 평화공감대가 널리 국민에게 확산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음악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탄약고 시리즈는, 옛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 등 포탄을 보관했던 창고와 접경 지역에서 공연을 기획한 것입니다.
음악제가 진행되는 포천성당은 탄약고는 아니었지만 1955년 6군단장 이한림 장군이 지은 것으로알려져 있는데요.
[최영진/경기관광공사 : "‘DMZ 오픈 국제음악제’ 탄약고 시리즈라고 포천성당에서 하는 여섯 번째 공연 중에 마지막공연이 오늘 여기에서 준비 중입니다."]
군부대가 직접 세운 건축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당이기도 합니다.
[임미정/DMZ OPEN 페스티벌 총감독 : "사실은 군인들이 지었다는 의미에서 군인이 상징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요. 인간과 세상에 안녕을 구하는 (의미에서) 그래서 이 장소가 굉장히 적당하겠다."]
임 감독의 평화에 대한 염원은 올해 추가된 ‘탄약고 시리즈‘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폭탄을 보관했던 곳 등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은 어떨지 함께 들어보시죠.
["(안녕하세요. 오늘 음악제 왔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이날은 탄약고 시리즈의 마지막 공연 날인데요.
연주자는 2023년 윤이상 콩쿨의 우승자였던 정규빈 피아니스트입니다.
피아니스트의 호흡과 선율에 관객들의 눈과 귀가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베토벤의 전원 소나타가 포천의 황금빛 가을을 더욱 짙게 물들입니다.
[정규빈/피아니스트 : "북한과 가까운 지역에서 열리는 음악제이기도 하고 전원이라는 단어가 또 어떤 평화라는 가치와도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곡을 선정하게 됐고요."]
관객도 어느새 아름다운 선율에 흠뻑 심취해 갔습니다.
[이두희/관객 : "음악이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전부 다 하나 될 수 있는 그런 아주 멋진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음악제는 ‘DMZ’를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와 문화가 하나가 되는 뜻깊은 시간을 만들어 냈는데요.
[플로리안 리임/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 사무총장 : "DMZ는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무장되고 고립된 국경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이곳은 진정한 이해의 장입니다."]
[조창범/경기도 평화협력국 국장 : "우리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문화 예술 공연을 즐기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음악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씌여지는 장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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