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이재명 살렸던 대법원 판단도 비껴간 1심 판단은
대권가도 빨간불, 11월말 위증교사 1심도 무죄 예상 어려워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차기 대권가도에 제동이 걸렸다.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으면서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는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1심 재판부는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백현동 개발 과정 등과 관련한 이 대표의 발언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이번 판단은 1심일 뿐이다. 그러나 향후 1년 내 대법원 선고까지 확정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악재는 또 있다. 11월25일 예정된 위증교사 사건의 1심 선고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들은 특히 이 대표에게 불리한 법정 증언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동시에 피고인 신분에 놓이게 된 이 대표는 법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김문기와 출장 중 골프 안 쳤다" 발언, 허위사실로 인정
"주문, 피고인 이재명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11월 사법 리스크'의 첫 시험대에 선 이재명 대표에게 당선무효형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한성진, 주심 이학인, 배석 박명)는 11월15일 오후 3시경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이 시작된 이후 30여분 만에 나왔다. 이는 이 대표가 받고 있는 4건의 재판 중 가장 처음 나온 사법부의 판단이다.
이는 검찰의 구형량인 징역 2년에 못 미친다. 그러나 이 대표의 정치생명에는 치명적이다. 현행법상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이 대표가 차기 대선에 나서지 못한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원도 반환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2022년 3월 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불거졌다. 당시 대선후보 신분의 이 대표는 방송 인터뷰와 국정감사장 등 공개 석상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를 받는다. 대장동 개발 실무자인 김문기 전 처장을 두고 "몰랐다"거나 "해외출장 중 함께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했다.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용도변경 배경에 대해선 "국토교통부의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해 2022년 9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측은 이 대표가 당선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는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다. 이 대표 측은 재판 과정에서 "김 전 처장을 몰랐다"고 말한 데 대해 "사람을 '안다' '모른다'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인지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국토부와 관련해서도 고의성이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호소했다. 국감장에서 한 발언은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도 주장했다.
김 전 처장이 자녀에게 보낸 동영상, 유죄 증거로 인정
1심 재판부는 이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되레 이 대표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봤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을 보면, 당선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경우 기본형이 징역 10개월 이하 혹은 벌금 200만~800만원형이다. 죄질이 경미하면 벌금 70만~300만원을, 거짓말의 전파성이 높아 죄질이 무거우면 징역 8월~2년 혹은 벌금 500만~1000만원형을 받을 수 있다. 1심 판단은 기본형보다 무겁게 본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지난 2015년 1월 9박11일간 해외출장 중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이 대표의 발언이 허위라고 판단했다. "이는 이 대표가 20대 대선 핵심 이슈인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에서의 각종 비리와 자신과의 연관성을 끊어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 등과 함께 찍은 사진도 거론됐다. 국민의힘이 지난 대선 기간 이 대표의 발언이 허위라는 증거로 제시한 물증이다. 이 대표는 '조작설'을 꺼내며 이를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해외골프 동반 의혹은 이 사진이 공개되면서 제기됐는데, 일반 선거인의 입장에선 '사진이 조작됐다'는 (이 대표의) 발언은 '사진과 함께 제기된 의혹이 조작됐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말한 '골프'와 '조작'이라는 단어가 "김 전 처장과 해외출장 기간 중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취지다.
되레 김 전 처장이 자녀에게 보낸 동영상은 유죄의 증거로 인정됐다. 여기에는 김 전 처장이 이 대표와 골프를 친 이후 딸에게 "오늘 (이재명) 시장님 (유동규) 본부장님하고 골프쳤다. 너무 재미있었어"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는 동시에 △당시 김 전 처장의 지위와 업무수행 내용 △해외출장 일행 중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은 김 전 처장과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 등 둘뿐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만한 점 △대장동 사업 관련 핵심 실무책임자인 김 전 처장의 지위 등을 언급했다. 이를 토대로 이 대표의 발언이 '고의성이 있는 허위사실'이라고 봤다.
과거 이재명 살린 대법원 법리, 이번엔 비껴갔다
특히 법조계가 주목한 과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이번에 적용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사건 관련 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로도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고 정치적 위기에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즉흥적으로 후보자 사이에 질문과 답변, 주장과 반론 등의 공방이 제한된 시간 내 이뤄지기 때문에 표현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의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대표의 '골프 발언'은 방송 프로그램 중 즉흥적인 답변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 방송은 시민 패널이 이 대표에게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해 이 대표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발언하는 형식으로 이뤄졌고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한 공방 등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백현동과 관련한 공소사실도 유죄 판단을 피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의 주장대로, 국토교통부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백현동 부지의 용도지역을 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한 것이 아니다"며 "이 대표 스스로 백현동 부지의 활용 방안으로 용도지역 변경을 검토해 내부 방침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대표는 물론 백현동 부지 용도지역 변경 관련 업무를 담당한 성남시 공무원들이 국토부 주무부서를 포함한 공무원들에게서 '용도지역 변경을 해주지 않으면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는 협박을 당한 적도 없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오히려 고의적으로 허위사실을 거론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대표가 국정감사장에서 (상대 의원의 질의에 대한) 발언 도중에 제시할 패널 등을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국감장에서는 면책특권이 적용된다는 주장도 물리쳤다. "이 대표가 국정감사의 목적과 무관한 발언을 했고, 당시 발언은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다만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취지로 말한 이 대표의 발언은 무죄로 판단했다. "이 대표의 방송 인터뷰 발언은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취지인데, 이는 검찰 측의 증거만으로 (이 대표가 김 전 처장과의) 개인적·업무적 교유행위 일체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의혹을 파급력 큰 방송 이용해 허위 해명"
재판부는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겁다고 질책했다. △선거 과정에서의 허위사실 공표 행위로 인한 민의 왜곡 △선거제도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 훼손 염려 △이 대표 본인을 향한 의혹을 파급력·전파력이 큰 방송 매체를 이용해 허위로 해명한 사실 등을 꼬집었다.
재판부는 "선거 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허위사실 공표로 인한 민의 왜곡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야 하고, 이 대표가 다른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낙선 사실 등은 유리한 양형 사유로 언급했다.
이 대표의 차기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이날, 서초동 일대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오후 3시10분경 이 대표가 법정에서 나오자 "대표님, 힘내세요" "내일 광화문을 뒤집어버리자"며 힘을 보탰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 대표는 11월25일 위증교사 사건의 1심 선고도 앞두고 있다. 이 대표는 2002년 KBS PD와 함께 검사를 사칭해 '분당 백궁 파크뷰 의혹'을 취재했다가 벌금 150만원을 확정받았는데, 2018년 경기지사 선거 과정에서 이에 대해 "누명을 썼다"고 말해(허위사실 공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대표에게 위증을 요구받은 인물을 포함한 핵심 인물들은 재판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법원은 특히 2023년 9월 이와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밖에도 이 대표는 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사건,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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