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적’ 일본에 또 다시 무릎 꿇은 한국야구...‘좌우놀이’에 매몰된 마운드 운영이 패착이었다

남정훈 2024. 11. 1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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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통상적으로 같은 손 타자와 투수가 붙으면 투수가 유리하다. 좌타자가 좌완 투수에게 상대적으로 약하고, 반대로 우타자는 우완 투수에게 약한 경향이 있다. 좌완투수가 던지는 공은 우타자에 비해 좌타자는 시야가 줄어든다. 반대로 우완투수의 공은 좌타자에 비해 우타자에게 시야가 줄어들어 다소 치기 힘들다.

15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3대 6으로 패한 대표팀 선수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타이베이(대만)=뉴스1
이런 경향성 때문에 좌타자가 등장했을 때 마운드에 우완투수가 있으면 감독들은 좌완투수로 교체해 좌타자를 상대하게 한다. 특히 서로 상대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국제대회에선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짙어질 수 있다. 야구팬들은 이를 ‘좌우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좌우놀이는 언제나 통하는 절대적인 명제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더 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5일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일본의 맞대결은 좌우놀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승부를 갈랐다.

15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5회말 일본공격 2사 만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이영하가 역투하고 있다.   타이베이(대만)=뉴스1
상황은 이랬다. 한국은 2-2로 맞선 5회초 공격에서 신민재가 일본의 바뀐 투수 스미다 지히로를 상대로 중전 안타를 치고 나간 뒤 후속 땅볼과 3루 도루로 1사 3루의 찬스를 만들었다. 4번 타자 문보경이 삼진으로 물러나 찬스를 날리는 듯 했으나 나승엽 대신 타석에 들어선 대타 윤동희가 중원 2루타를 날려 3-2 역전에 성공했다.

5회말 한국의 수비. 한국 마운드에는 유영찬이 버티고 있었다. 2회 2사에서 2타점 적시타를 맞고 1.2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물러난 선발 최승용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올라온 유영찬은 4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텼고, 5회 선두타자인 1번 쿠와하라 마사유키를 유격수 땅볼로 막아낸 뒤 마운드를 좌완 곽도규에게 넘겼다. 유영찬은 흔들리던 한국 마운드를 2.2이닝 2피안타 무실점 역투를 통해 승리로 가는 징검다리를 확실히 놔줬다.

15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3대 6으로 패한 대표팀 선수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타이베이(대만)=뉴스1
한국 코칭스태프가 5회 1사에서 좌완투수인 곽도규를 올린 이유는 분명했다. 2번 고조노 카이토와 3번 타쓰미 료스케가 좌타자였기 때문. 좌완투수의 이점을 살려 좌타자 2명을 확실히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프로 2년차인 곽도규는 올 시즌 4승2패 2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3.56을 기록하며 정상급 불펜투수로 거듭난 선수다. 좌완투수인 만큼 좌타자 상대에 확실히 이점도 갖고 있었다. 올 시즌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182로 우타자(0.241)보다 확실히 좋았다.

다만 불안요소도 있었다. 곽도규는 13일 대만전, 14일 쿠바전에 모두 등판해 이날까지 3연투였다. 곽도규는 아직 KBO리그에서도 3연투를 해본 적이 없는 선수인데, 데뷔 첫 3연투가 절대 패할 수 없는 ‘숙적’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나오게 됐다.

곽도규는 첫 타자인 고조노는 삼진으로 솎아내며 한국 벤치의 기대에 부응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타쓰미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다음 타자인 일본 4번타자 모리시타 쇼타는 우타자. 좌우놀이에 충실했다면 여기에서 투수를 바꿔야만 했지만, 한국 벤치는 곽도규의 구위를 믿고 그대로 상대하게 했다. 그러나 곽도규는 모리시타에게도 볼넷을 내주며 2사 1,2루에 몰렸다.

15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5회말 마운드에 오른 곽도규가 역투하고 있다.    타이베이(대만)=뉴스1
누가 봐도 곽도규가 흔들리는 상황. 여기서라도 곽도규를 마운드에서 내려야 했지만, 다음 5번 타자 쿠리하라 료야가 좌타자였기에 류중일 감독과 최일언 투수 코치는 곽도규로 다시 한 번 밀고 나갔다. 모리시타를 상대하게 할 땐 좌우놀이를 어기더니 쿠리하라를 상대로는 좌우놀이를 믿은 것이다.

결과는 대실패. 곽도규는 쿠리하라와 9구까지 가는 풀카운트 접전을 펼쳤고, 결국 몸에 맞는 공으로 1루에 내보냈다. 2사 만루. 다음 6번 타자는 우타자인 마키 슈고. 이제야 곽도규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곽도규가 만든 2사 만루의 위기를 물려받은 것은 우완투수 이영하. 이번에도 좌우놀이에 충실한 기용을 보였지만, 실패였다. 마키는 이영하에게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때려냈고, 한국 3-4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 하나. 이번 ‘류중일호’의 최대 장점은 KBO리그 10개 구단 중 절반인 5개 구단의 마무리투수들, KIA 정해영, KT 박영현, 두산 김택연, SSG 조병현, LG 유영찬을 보유한 불펜진의 뎁스다. 이미 유영찬은 소모했으니 남은 4명 중 마무리 역할을 맡은 박영현을 뺀 3명 중 1~2명을 5회 이후에 투입할 수 있는 준비를 시켰어야 맞다.

15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 앞서 대표팀 류중일 감독이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타이베이(대만)=뉴스1
그러나 류중일 감독과 최일언 코치의 선택은 이들보다는 올 시즌 다소 떨어지는 성적을 올린 이영하였다. 이영하도 시속 150km를 훌쩍 뛰어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매력적인 투수임은 분명하지만, 올 시즌 성적은 5승4패 2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3.99로, 위의 마무리 투수들보다 적어도 현재 기량은 아래라고 보는 게 맞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위인 일본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선 역전에 성공한 5회부터 ‘하이 레버리지’ 상황으로 보고 가장 구위가 좋은 투수들을 계속 때려 박는 파격의 기용법이 나와야 했지만, 류중일 감독의 운영은 단기전이 아닌 페넌트레이스를 하는 듯 했다. 결국 대표팀 내 불펜투수 중 맡은 역할이 추격조인 이영하를 올렸고, 일본 대표팀 내 최고타자 중 하나인 마키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승타를 맞고 말았다.

이날 일본은 에이스 다카하시 히로토를 올렸다. 다카하시는 올 시즌 12승4패에 평균자책점 1.38로 센트럴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선수다. 150km 후반대의 포심과 커터, 포크볼로 무장한 다카하시를 상대로 한국 타선은 2회 박동원의 2루타와 홍창기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고, 1-2로 뒤진 상황에선 박동원이 동점 솔로포를 때려냈다.

15일(현지시간)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5회말 일본공격 2사 만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이영하가 안타를 허용하며 2실점한 뒤 박동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타이베이(대만)=뉴스1
천하의 다카하시를 4이닝 7피안타 2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가고 만들고, 5회엔 역전에까지 성공하면서 분명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한국은 벤치의 지나친 좌우놀이에 대한 집착이 승리를 날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프로선수를 내보낸 일본을 상대로는 9연패의 늪에 빠졌다. 한국이 일본을 마지막으로 이긴 것은 9년 전인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대회 준결승이다. 당시 한국은 8회까지 0-3으로 끌려가다 9회에 대거 4점을 내며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랐고, 결국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한국은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예선과 결승, 2019년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와 결승, 2021년 도쿄 올림픽,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2023년 APBC 예선과 결승에서 모두 패배했고, 이날도 패하며 연패의 숫자는 ‘9’까지 늘어났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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