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적’ 일본에 또 다시 무릎 꿇은 한국야구...‘좌우놀이’에 매몰된 마운드 운영이 패착이었다
야구에서 통상적으로 같은 손 타자와 투수가 붙으면 투수가 유리하다. 좌타자가 좌완 투수에게 상대적으로 약하고, 반대로 우타자는 우완 투수에게 약한 경향이 있다. 좌완투수가 던지는 공은 우타자에 비해 좌타자는 시야가 줄어든다. 반대로 우완투수의 공은 좌타자에 비해 우타자에게 시야가 줄어들어 다소 치기 힘들다.
15일 대만 타이베이시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리그 3차전 한국과 일본의 맞대결은 좌우놀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승부를 갈랐다.
5회말 한국의 수비. 한국 마운드에는 유영찬이 버티고 있었다. 2회 2사에서 2타점 적시타를 맞고 1.2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물러난 선발 최승용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올라온 유영찬은 4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텼고, 5회 선두타자인 1번 쿠와하라 마사유키를 유격수 땅볼로 막아낸 뒤 마운드를 좌완 곽도규에게 넘겼다. 유영찬은 흔들리던 한국 마운드를 2.2이닝 2피안타 무실점 역투를 통해 승리로 가는 징검다리를 확실히 놔줬다.
다만 불안요소도 있었다. 곽도규는 13일 대만전, 14일 쿠바전에 모두 등판해 이날까지 3연투였다. 곽도규는 아직 KBO리그에서도 3연투를 해본 적이 없는 선수인데, 데뷔 첫 3연투가 절대 패할 수 없는 ‘숙적’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나오게 됐다.
곽도규는 첫 타자인 고조노는 삼진으로 솎아내며 한국 벤치의 기대에 부응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타쓰미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다음 타자인 일본 4번타자 모리시타 쇼타는 우타자. 좌우놀이에 충실했다면 여기에서 투수를 바꿔야만 했지만, 한국 벤치는 곽도규의 구위를 믿고 그대로 상대하게 했다. 그러나 곽도규는 모리시타에게도 볼넷을 내주며 2사 1,2루에 몰렸다.
결과는 대실패. 곽도규는 쿠리하라와 9구까지 가는 풀카운트 접전을 펼쳤고, 결국 몸에 맞는 공으로 1루에 내보냈다. 2사 만루. 다음 6번 타자는 우타자인 마키 슈고. 이제야 곽도규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곽도규가 만든 2사 만루의 위기를 물려받은 것은 우완투수 이영하. 이번에도 좌우놀이에 충실한 기용을 보였지만, 실패였다. 마키는 이영하에게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때려냈고, 한국 3-4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 하나. 이번 ‘류중일호’의 최대 장점은 KBO리그 10개 구단 중 절반인 5개 구단의 마무리투수들, KIA 정해영, KT 박영현, 두산 김택연, SSG 조병현, LG 유영찬을 보유한 불펜진의 뎁스다. 이미 유영찬은 소모했으니 남은 4명 중 마무리 역할을 맡은 박영현을 뺀 3명 중 1~2명을 5회 이후에 투입할 수 있는 준비를 시켰어야 맞다.
이날 일본은 에이스 다카하시 히로토를 올렸다. 다카하시는 올 시즌 12승4패에 평균자책점 1.38로 센트럴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선수다. 150km 후반대의 포심과 커터, 포크볼로 무장한 다카하시를 상대로 한국 타선은 2회 박동원의 2루타와 홍창기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고, 1-2로 뒤진 상황에선 박동원이 동점 솔로포를 때려냈다.
이로써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프로선수를 내보낸 일본을 상대로는 9연패의 늪에 빠졌다. 한국이 일본을 마지막으로 이긴 것은 9년 전인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대회 준결승이다. 당시 한국은 8회까지 0-3으로 끌려가다 9회에 대거 4점을 내며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랐고, 결국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한국은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예선과 결승, 2019년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와 결승, 2021년 도쿄 올림픽,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2023년 APBC 예선과 결승에서 모두 패배했고, 이날도 패하며 연패의 숫자는 ‘9’까지 늘어났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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