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가 된 실리콘밸리, ‘신기술자유주의’ 시대 열다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024. 11. 1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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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영역에도 파고든 PC 운동에 실리콘밸리 반감 커져  
강력하지만 위험한 AI…트럼프는 통제 대신 족쇄 풀어줄 ‘스트롱맨’?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올해 미국 대선에서 가장 이목을 끈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아니다. 그의 최측근을 자처하며 킹메이커 역할을 한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야말로 이번 대선의 감독 겸 원톱 주연이다. 당선인 역시 승리 연설에서 머스크를 "새로운 스타"로 치켜세웠고 시장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선 결과가 공개된 하루 사이에 테슬라 주가는 15% 급등했고 머스크는 20조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 이에 더해 머스크는 차기 행정부에서 신설될 '정부효율부' 수장에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비벡 라마스와미와 함께 지명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각종 규제 개혁과 연방 지출 삭감 등을 주도할 핵심 부처를 이끌게 된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0월5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PC 운동에 '파랗게' 질린 SV, '레드' 택해

실리콘밸리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진보와 혁신의 성지다. 실리콘밸리의 생태계가 상징하는 다양성, 진보는 미국 민주당의 이념과도 일치한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가 포함된 샌프란시스코는 민주당의 텃밭이었다. 실제로 2016년, 2020년 대선 당시 실리콘밸리는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조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의 생각은 혁신과 거리가 멀기에 머스크 역시 트럼프 1기 시절, 그와 꽤 거리를 뒀다.

이번 대선은 달랐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 언론은 민주당 정부가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에게 부유세를 부과하거나 암호화폐 및 생성형 AI 등의 역기능을 우려해 관련 기술에 관해 속도 조절과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언론은 트럼프 2기의 실세인 젊은 부통령이 벤처캐피털리스트 출신이기에 실리콘밸리가 트럼프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언론의 분석이 틀렸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딱 맞는다고 보기도 어렵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은 여전히 부유세에 동의하는 이들이 훨씬 많고 AI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화석연료 개발 강화를 예고한 트럼프의 공약과 비교해 기후변화, 안전, 사회 정의, 공중보건을 주요 이슈로 내세운 카멀라 해리스의 과학기술 정책은 실리콘밸리의 미래 방향성과 더 부합한다.

사실 민주당과 실리콘밸리의 충돌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다. 지난 10년간 미국 사회, 더 나아가 글로벌 이슈를 사로잡은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실리콘밸리와 민주당의 심리적 거리를 넓힌 도화선이 됐다. 사회적 약자 보호와 차별 철폐를 전면에 내세운 PC 운동이 일으킨 도덕주의 운동은 보수주의자의 강한 반발을 넘어 실리콘밸리가 맹신하는 기술 우월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은 개인의 농력을 중시하고 정부가 차별 철폐와 약자 보호를 시장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능력 있는 이들이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 세상을 구할 수 있고 탁월한 슈퍼급 인재가 기업가적 열망으로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의 다양성은 유능한 인재의 다양성을 뜻하지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인위적인 다양성을 의미하진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주의, 인권, 사생활 보호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AI 사용과 발전을 주장했을 때 필자가 알고 지낸 실리콘밸리의 모 기업가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과도한 PC 운동이 개인의 능력과 열망, 동기부여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기계적 균형에 맞춘 형평성 조성이 능력 있는 인재의 열망과 동기를 훼손해 사회 발전을 더디게 한다는 실리콘밸리의 생각은 밀턴 프리드먼의 부활과 같다.

'기술 우월주의'에 날개 달아줄 트럼프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에도 전면에 내세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의 핵심은 민간 중심의 혁신 촉진과 기술 규제 완화에 있다. 트럼프와의 악연으로 유명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뿐 아니라 오픈AI 창업자, 구글과 애플, 인텔의 CEO들이 차례대로 트럼프 당선인에게 열렬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공교롭게 이들 대다수는 트럼프 1기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바 있다. 빅테크 CEO들의 환영은 기술 우월주의의 최전성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트럼프 1기는 첨단기술 육성 및 보호, 미국 산업 기반 강화에 있었다. 2기의 과학 정책 방향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대선 기간에 과학기술 분야의 연방예산 삭감 등을 언급하며 기술 혁신의 무게중심을 민간에 뒀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AI 기술 개발 규제 완화에 있다. 트럼프 2기는 첨단기술과 전략산업으로 글로벌 경제와 국가 안보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할 때 머스크가 대화에 함께 참여한 건 의미심장하다.

트럼프는 AI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비교우위를 절대우위로 전환하기 위해 강력한 행정명령 등의 조치를 추진할 예정이다. 미국 주도의 AI 기술 개발 활성화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는 폐지하고 글로벌 패권을 위한 AI, 양자과학, 첨단제조 등은 미국 차원의 보호와 육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이 지향하는 능력주의, 기술 우월주의와 맞닿아 있다. 실리콘밸리는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 실세다.

지난달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82명은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과학기술 발전이 한층 더 저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례로, AI 연구의 4대 천왕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석학 요슈아 벤지오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인공지능은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기에 빅테크 기업에 관련 권한을 넘기는 위험한 결정 대신 정부가 AI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월5일 고려대 강연에 나선 그는 "AI가 강력한 기술이기 때문에 잠재적인 위험성을 갖는다"며 "사용 방식에 따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반면,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초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유능한 인재의 열정과 야망이 탁월한 첨단기술을 만들고 해당 기술이 유토피아 세상을 여는 데 걸림돌인 규제는 걷어내라는 실리콘밸리의 요구에 트럼프는 동의했다. 그는 마침내 4년 만에 절대권력의 상징인 미국 대통령 자리를 다시 거머쥐었고 머스크는 최측근이 됐다. 신자유주의 그 이상의 신기술자유주의, 우려스럽다.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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