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수험생 가처분 받았지만 '재시험' 대학 자율로…해법 요연
각 대학 논술·면접 일정 시작…"교육부 적극 나서야 "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법원이 연세대 수시모집 자연 계열 논술 시험의 효력을 중지하면서 학교와 수험생 모두 혼란에 빠졌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자칫 1번의 수시 기회를 날리게 되고 대학 역시 신입생 선발에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수험생들이 요구하는 재시험에 대해서는 법원이 대학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수능 직후 논술, 면접 등 타 대학의 수시 전형 일정들이 맞물려 있어 재시험 일정을 연세대가 단독으로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 집단 소송은 지난달 1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자연 계열 논술 시험 고사장 중 한 곳에서 문제가 사전 유포됐다는 의혹에서 비롯됐다. 한 고사장 감독관의 착각으로 문제지가 시험 시작 한 1시간 전에 배부됐다 회수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 등을 통해 일부 문항이 유출됐다는 것이다.
이에 연세대 자연 계열 논술을 응시한 수험생 등 34명은 연세대를 상대로 논술 시험을 무효로 하고 재시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진술서 등으로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탠 인원을 합하면 50여명에 달한다.
법원, '공정성 훼손' 수험생 측 주장 받아들여…재시험 요구 '자율 판단'
16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서부지법 제21민사부(부장판사 전보성)는 지난 15일 수험생 18명 등 총 34명이 연세대를 상대로 제기한 논술 시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문제 사전 유출로 인해 시험 전체의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수험생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감독관의 관리 부실로 일부 응시자가 문제를 미리 보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연세대 논술 전형에 대한 수험생들의 신뢰가 훼손됐으며, 이에 따라 수험생들은 합격자 발표 등 후속 절차의 진행 중지를 요구할 권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또 피해 고사장 학생 수가 30명 수준으로 전체 응시자(1만444명)에 비하면 소수고, 유출 정보가 출제 범위에 비하면 사소하긴 하지만 특정 단어 등 일부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어 학생들 간에 유불리가 발생했다고 봤다.
휴대전화 메신저 대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등 수험생 측이 문항 사전 유출 증거로 제출한 소명자료의 신빙성을 단정할 순 없어도, 해당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뚜렷하지 않아 증거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앞서 연세대 측은 수험생 측이 제출한 자료들이 대부분 익명 등인 점을 감안해 증거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제 유출이 일부의 일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연세대 측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험 시작 전에 문제 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게 일반적으로 부정행위에 해당하긴 하지만, 이 사건 발생의 근본적 원인이 감독위원들의 시작 시각 착오인 것을 고려하면 수험생 개개인의 부정행위가 개입됐다는 이유로 공정성 훼손이라는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다만 재판부는 수험생들이 요구했던 재시험 이행에 대해선 대학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재시험만이 이 사건의 공정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재시험 외 다른 방안이 가능하다면 대학 측의 재량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논술 합격자 발표 잠정 중단, 독자 재시험 결정도 어려워
논술 시험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당초 12월 13일 예정됐던 논술 합격자 발표도 잠정 중단됐다. 재시험 이행을 주 청구 취지, 논술 시험 무효 확인을 예비적 청구취지로 하는 본안 소송은 아직 기일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수험생 측 법률대리인인 김정선 일원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본안 소송의 경우 서면으로 이미 양측의 입장이 오고 갔다"며 "본안 소송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수험생 피해가 덜할 것이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에 일자가 잡힐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험생 측은 가처분 신청에서 이미 시험의 공정성 훼손 인정된 만큼, 본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에 연세대 측에서 재시험을 치르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김 변호사는 "재시험을 안 볼 경우 1만444명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연세대는 천문학적 금액을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며 "더 이상 시간을 끌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연세대 측은 법원의 인용 판결 발표 직후 긴급회의에 나서는 등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현재 입학처에서 입장문 발표와 관련해 회의 중"이라며 "재시험 여부 등 대학 측의 재량이 발휘되는 부분 등도 입장문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다만 당장 오늘부터 타 대학의 논술 및 면접 등 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연세대가 독단적으로 재시험 여부를 결정하고 합격자 발표 일정을 조율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판결에서 논술 시험 공정성 훼손에 대학 측의 책임이 인정된 만큼, 교육 당국이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재시험을 치르려 해도 11월 말까지 대학별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 대학 혼자서 날 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은 논술 수시 전형을 치르는 모든 대학으로 파장이 커졌다. 교육부 등 유관기관이 다 같이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교육부는 중대 입시 비리 등 입시 전형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가 발생한 대학에 대해 1차 위반 때부터 총입학정원의 5% 이내 정원 감축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조직적 입시 비리와 이번 사태가 결은 다르지만, 입시 전형의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측면에서 교육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연세대 논술 문제 사전 유출 의혹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대학 측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이 나온 직후 "연세대가 올해 입시 일정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법원 결정 취지에 부합하는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며 "연세대가 적법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전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도 감독하겠다"고 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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