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댐 ‘호반 도시’ 뒤에 숨겨진 이야기 [전국 인사이드]

박누리 2024. 11. 1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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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의 금강 유역에 녹조가 끼어 있다. ⓒ박누리 제공

옥천 사람이라면 ‘주민지원사업비’라는 단어를 한 번쯤은 듣게 된다. 말 그대로 주민을 지원하는 돈이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이 생소한 개념의 배경엔 대청댐이 있다. 댐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의 지원금인 것이다. 그런데 대청댐 건설 40년이 지난 지금, 이 주민지원사업비가 다시 수몰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대청댐 상류 지역은 상수원 수질관리와 보전을 위해 축사나 공장은 물론 음식점‧숙박업 설치 등에서도 큰 제약을 받는다. 충북에서는 옥천을 비롯해 청원‧보은‧영동이, 충남에서는 공주‧부여‧금산, 전북에서는 무주‧진안‧장수, 대전에서는 동구와 대덕구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옥천은 대청댐 피해가 가장 크다. 댐 건설로 수몰된 땅 72.8㎢ 중 30%에 달하는 23.9㎢가 옥천인데, 그만큼 규제지역도 넓어서 전체 면적의 80%가 상수원관리지역(상수원보호구역·수변구역·특별대책지역)으로 묶여 있을 정도다. 주민들은 대청댐 건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이 했던 “옥천은 ‘호반의 도시’가 돼 관광산업이 지역 발전을 견인할 것”이라는 약속을 종종 되뇌곤 한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이 외에도 댐은 여러 상흔을 남겼다. 수몰로 인해 갑작스레 고향과 이웃을 떠나야 했던 아픔, 자연환경이 바뀌면서 더해진 영농 활동의 어려움과 교통 불편, 안개일수 증가와 심각한 녹조 발생, 부유 쓰레기 문제 등 재산권과 환경권, 경제활동에 큰 제약을 받는 것이다. 1980년대 연간 방문객 6만명에 달하던 장계 관광지(옥천군 안내면 장계리)가 수변구역 지정으로 시설 투자 등이 제한되면서 오랜 침체를 겪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1996년 발간된 ‘옥천군 대청댐 피해 백서’에 따르면 이러한 지역경제 손실은 연간 650억원 규모다. 대청댐 건설로 만들어진 공공환경서비스(용수공급·발전편익·홍수조절·관광편익 등)가 대전, 천안, 아산 등 대청댐 하류 지역 성장에 이바지한 것과 매우 대조된다.

주민지원사업비는 바로 이런 피해를 조금이나마 보상하기 위한 제도다. 댐 건설 20여 년이 지나서야 마련된 ‘금강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금강수계법)’을 근거로 한다. 대청댐 하류 지역 주민이 내는 물이용부담금(톤당 170원)으로 만들어진 ‘금강수계기금’ 지출에 주민지원사업비가 포함된다.

주민지원사업비는 가계생활비(연 200만원 한도)인 직접지원사업, 마을 소득증대‧복지 증진‧장학‧오염물질 정화사업 등을 지원하는 간접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별도 진행하는 특별지원사업 등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올해 49억원 규모였던 ‘간접지원사업비’가 2025년에는 5억원가량 줄어든다는 예산안이 발표되면서 최근 논란이 됐다.

내년 예정된 옥천군 주민지원사업비 예산은 총 89억원으로 2003년 첫 시행 당시 38억원에서 거의 매년 증가해왔다. 총액만 놓고 보면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사업비가 늘어난 듯 하다. 그러나 물이용부담금 증액 등으로 수계기금 총액이 늘어도 주민지원사업비 비율은 여전히 10%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 때문에 옥천을 비롯한 댐 피해 지역에서는 주민지원사업비 배분 비율을 둘러싸고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왔다.

재해예방 사업,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하거늘

이런 가운데에서도 주민들은 간접지원사업비를 활용한 다양한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했다. 공공교통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안남면 무료 순환버스를 필두로 면 지역 어린이 돌봄시설 설립, 친환경농업 확산을 위한 활동 등 선례를 계속 이어왔다. 이처럼 ‘간접지원사업비’는 마을공동체 자치 역량과 활성화의 종잣돈으로 역할을 해왔기에 예산 삭감은 주민들의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간 정부와 관계 기관은 수계 관리에서 지역 주민을 적극적인 협치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시행된 수계법 일괄 개정안은 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수계기금을 ‘가뭄‧홍수 등 재해예방 사업’에 사용할 수 있게 바꾼 것인데, 댐 상류 지역의 고통 분담을 위해 하류 지역 주민이 부담하는 돈을 ‘입맛대로’ 쓰겠다는 태도다. 정부가 마땅히 ‘예산’으로 책임져야 할 기초사업을 수계기금으로 때우겠다는, 수계기금의 본래 취지를 크게 훼손하는 행태다. 수계법 일괄 개정안 추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댐 주변 지역에서는 ‘개악’이라며 주민 반발이 이어졌지만 법 개정은 그대로 진행됐다. 그 과정 어디에도 주민들의 목소리가 낄 틈은 없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댐 주변 지역 주민들이 겪은 불합리를 한정된 지면에 다 담기도, 지금의 우리가 세세히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피해 지역에 사는 주민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임을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다. 굴착기가 평생을 살아온 집과 공동체를 부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해야 했던, 눈이 짓무르도록 울며 이웃과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러면서도 국가를 향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상흔은 수계 관리의 민관 협치를 이루지 못하는 한 계속될 것임이 분명하다.

박누리 (옥천〈월간 옥이네〉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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