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옹달샘’ 만들어준 인간 친구들에게 [임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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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가 목욕을 한다고 하면 참 의아하게 생각해요.
늘 날면서 생활을 하고 그러자면 깃털 관리를 언제나 열심히 해야 하는데, 깃털을 관리하려면 먼지도 떨어내야 하고 깃털을 가지런히 정리도 해야 하고, 또 깃털 속에 살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도 떼어내야 하니 우리에게 목욕은 일상인데 말이죠.
그런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파트에서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몇 년 전부터 작은 옹달샘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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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가 목욕을 한다고 하면 참 의아하게 생각해요. 늘 날면서 생활을 하고 그러자면 깃털 관리를 언제나 열심히 해야 하는데, 깃털을 관리하려면 먼지도 떨어내야 하고 깃털을 가지런히 정리도 해야 하고, 또 깃털 속에 살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도 떼어내야 하니 우리에게 목욕은 일상인데 말이죠.
도시라는 공간은 먹을 것을 구하기는 그런대로 쉬운 반면 가장 힘든 순간이 있는데 바로 물이 필요한 때예요. 공원 같은 데 보면 사람들이 손을 씻고 물을 마시는 곳이 있지만 수도꼭지를 돌려서 틀어야 하니 우리 같은 새들에겐 그림의 떡이죠. 간혹 머리 좋은 큰부리까마귀 같은 애들은 부리로 수도꼭지를 돌려서 물을 먹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드문 경우고요, 부리가 작은 새들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손을 씻고 나면 얼른 가서 남아 있는 물로 목을 축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 물로 목욕을 하기는 힘들다고 봐야죠.
우리가 기다리는 날이 있는데 바로 비가 오는 날이에요. 파랑새 같은 애는 비가 오는 날 대놓고 나뭇가지에 앉아 목욕을 하는데, 저는 비가 어느 정도 그치고 웅덩이가 만들어지면 그곳에서 목욕을 하고 목도 축여요. 그렇다고 늘 비를 기다릴 수는 없으니 어떨 때는 실외기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고인 곳에 가서 마실 때도 있고요, 아침 이른 시간에는 풀에 맺힌 이슬을 마시기도 하죠. 근데 이런 것도 계절이 좋을 때 일이고요. 겨울이 되면 꽁꽁 얼어버리니 눈이 내릴 때 눈을 먹거나, 눈이 내리지 않을 때는 아파트 보일러 연통에 고드름이 맺히는데 사람들이 보일러를 틀면 그게 좀 녹거든요. 그 물을 마시려고 직박구리는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해요.
그런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파트에서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몇 년 전부터 작은 옹달샘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아파트 발코니에 작은 물그릇을 내놓기도 하고, 어떤 아파트의 정원사는 고장나서 버린 작은 분수대를 가져다가 아파트 화단을 꾸미면서 물을 채워 넣어주기도 했어요. 그곳은 물이 깊지 않아 우리 같은 참새나 되새가 목욕을 하기엔 안성맞춤이었어요. 그 아파트에 사는 작은 새들의 공중목욕탕이나 다름없지요. 올해는 아파트 탐조단에서 화분에 흙을 담고 물을 넣어 모를 심는데 반만 모를 심고 나머지 반은 우리가 물도 마시고 목욕도 할 수 있도록 비워둔 ‘논 화분’이라는 걸 만들었는데요, 가을이 되니까 벼도 맛볼 수 있어서 금상첨화였어요.
그렇게 하기까지는 용기가 좀 필요했대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지름이 68㎝쯤 되는 제법 큼지막한 화분을 내놓으려고 생각하니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관리사무소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대요. 한 가정에서 ‘생물다양성 연구를 위한 논 화분입니다’라는 팻말을 달아놓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는데 반응이 괜찮았대요. 매일 물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오며 가며 살펴보니 사람들이 모여 앉아 논 화분을 들여다보고 있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곳에 작은 논 생물이 많이 살고 있더래요. 한 집에서는 혹시나 있을 모기 유충을 잡아먹을까 싶어 올챙이를 몇 마리 넣어놨는데 개구리가 되는 것까지 지켜보는 행운도 있었답니다.
‘도시 옹달샘’이라고 부르는 논 화분이 모든 새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사람이 새를 친구로 생각해주는 것 같아, 용기를 내준 마음이 찡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물속의 작은 논 생물들도,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자란 개구리도 작지만 소중한 공간이었다고 전해달래요.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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