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삶은 직선적 판단보다 곡선적 포용이고 싶어

한겨레 2024. 11. 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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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병남의 오늘도 성장하셨습니다
여행에서 얻는 깨달음
칠순에 딸과 행복한 유럽 여행
빛 뒤의 빛을 본 화가 모네에 감동
로마 골목선 ‘뒤섞여 흐름’ 재발견
따스함·나눔 있어야 풍요로운 삶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지난해 칠순을 맞아 큰딸이 이탈리아 로마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로마가 너무나 좋아서 여섯번이나 갔다’며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 궁금하긴 했지만, 문제는 제 나이였습니다. 긴 비행 시간뿐 아니라 시차 적응도 걱정이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체력이 감당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1년을 망설였지요.

그런데 딸의 한마디에 ‘망설임’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딸이 미국 뉴욕에서 20년 살다가 프랑스 파리로 이사했는데, 딸 사는 거 한번 보러 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내 나이 70, 딸 나이 40이 넘어도 딸은 딸이었나 봅니다. 결국 저는 딸의 ‘귀여운 협박’에 못 이긴 척 오케이 했습니다. 일정은 파리 5일, 로마 5일이었습니다.

막상 만 70번째 생일을 타국에서 큰딸과 둘이 보내기로 결정하니 설레지 뭡니까. 안 하던 걸 해본다는 기대감도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가 원한 것은 휴식과 수면 시간을 확보한 여유로운 일정과 끼니를 거르지 않고 딸과 편안하고 유쾌한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파리에서는 딸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었죠.

딸은 파리로 이사 온 뒤 2년 동안 음악 부문에서 자신의 사업을 일구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가 새로운 곳에서 자기 사업을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도전을 하는 딸의 삶을 보니 그 용기가 참 신선하고 또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40대 초반에 15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오기로 결정했던 과거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역시 우리는 닮았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시련과 고통 속에서 피워낸 수련 연작

여행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모네 정원입니다. 파리의 생라자르역에서 노르망디행 기차를 타고 1시간 반 걸려서 베르농역에 내립니다. 트롤리 같은 자그마한 버스를 타고 지베르니라는 자그마한 동네에 도착했습니다. 파리에 있는 오르세미술관이나 오랑주리미술관보다는 모네가 살던 집과 정원, 그리고 그가 그린 수련과 연못이 더 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3월, 텔레비전 방송에서 우연히 ‘세기의 천재 미술가―모네의 수련, 물과 빛의 마술’이란 다큐 영화를 본 것이 계기였지요. 모네는 30여년에 걸쳐 그린 250점에 달하는 수련 연작을 통해 ‘빛은 곧 색채’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빛의 작용을 받아 색이 변하는 자연에서 어떤 물체의 고유한 빛깔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의 눈에는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빛의 변화가 느껴졌기 때문에 하루 종일 빛을 직접 보면서 작업해 백내장에 걸렸고 결국은 실명하게 됩니다.

모네는 센강의 범람과 전쟁으로 정원과 수련이 망가져 붓을 꺾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백내장으로 사물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태에서도 80대 나이에 마지막 수련 연작을 그려낸 것이지요. 모네 정원을 거닐면서 모네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젊은 무명 화가 시절, 극심한 가난을 함께했던 아내 카미유가 암 투병 끝에 죽고, 재혼한 아내 알리스도, 또 40대의 장남 장도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인간적인 고통과 시력 상실의 상황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모네는 결국에는 빛 뒤에 있는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수련을 그렸던 연못에 비친 하늘과 구름을 보면서 모네를 직접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모네는 빛 뒤의 빛을 보고자 했는데 과연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보고자 해왔던가. 무엇을 알고자 찾아 헤맸던가. 앞으로 다가올 나 자신의 80대에 나는 과연 무엇을 보게 되고 또 무엇을 깨닫게 될까.’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로마는 참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만큼 유적들이 넘치는데, 1000년이 넘은 돌바닥의 좁은 골목길에서 자동차와 보행자가 섞여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고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삐뚤빼뚤 곡선입니다. 이를 보면서 곡선은 자연을 닮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흐름의 규칙이 작동하는 것이지요. 실상 자연(自然·스스로 그러함)은 곡선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의 곡선을 인위적으로 직선으로 나누어서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거기에 익숙해졌습니다. 저 자신도 그러했습니다. 이제는 남은 삶에서 점차로 직선적 사고와 판단에서 곡선적 이해와 포용으로 옮겨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이 그러했습니다.

시작과 끝 분명한 여행 같은 인생

큰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는 그 아이를 “꼬랑지” 라고 불렀습니다. 하도 아빠 뒤를 쫓아다녀서였지요. 그런데 이번 70살 기념 여행에서는 제가 딸의 꼬랑지가 되었습니다. 가는 대로 따라가고 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니 어찌나 편하고 좋던지요. 무엇보다도 제일 좋았던 것은 딸이 저보다도 이 여행을 더 즐긴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빠를 일일이 챙기느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싶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함께 여행하자고 제안해주었습니다. 딸과 아빠, 가족이면서 친구가 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 여행은 참 행복했습니다. 4년 동안 해온 피티(PT·퍼스널트레이닝) 덕분인지 체력도 많이 나아졌고 긴 비행도 감당이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여행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인생 여정의 압축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 그 자체도 시작과 끝이 분명한 것임에도 우리는 대개 그것을 선명하게 자각하지 못하면서 살아가지요. 그런데 떠남과 돌아옴의 시간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여행에서 나 자신의 욕구를 분명히 알아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듯이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지금 수준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은 10~20년 정도 가능하겠지요.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닌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떠오른 답은 나에게 근원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고 거기에 집중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마도 일상에서의 따스함과 나눔인 것 같습니다. 나눔으로써 나의 삶이 풍성해지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성장하셨습니다’ 칼럼을 4주에 한번씩 27회를 써온 지난 2년은 저 자신의 성장 분투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풀어지지 않았던 삶의 매듭 몇개가 풀어지고 어깨를 눌러왔던 돌덩어리 몇개가 치워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시고 또 격려해주신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을 통해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제 생활의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삶을 배우는 사람

2016년 엘지(LG) 인화원장으로 퇴임한 뒤 삶의 방향을 ‘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로 바꿨다. 은퇴와 노화를 함께 겪으며, 그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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