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경고등] 철강산업으로 잘나가던 포항…인구 감소로 전전긍긍
저출생·고령화 영향…기업 유치, 정주여건 개선으로 타개 모색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동해를 낀 경북 포항시는 경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수산업이 발달한 만큼 죽도시장 등 지역 전통시장은 해산물이 풍부하다.
철강산업으로 대한민국 성장을 이끌었고, 최근에는 이차전지산업으로 대한민국 미래를 선도하고 있다.
이런 포항도 대한민국에 드리운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그림자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발 디틸 틈 없던 구도심 이제는 한산
옛 포항역과 육거리 사이에 있는 중앙상가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1980년대나 1990년대만 해도 시민제과, 태산만두, 명승원만두, 88분식, 초원삼계탕 등이 중앙상가를 지키며 학생과 시민의 발길을 끌었다.
각종 브랜드의 옷과 신발가게, 술집, 오락실, 음반가게, 노점 등은 늘 시끌벅적했다.
중앙상가 한 가운데 있는 북포항우체국은 젊은이들의 주요 약속 장소였다.
많은 사람이 우체국 계단에 서거나 앉아서 약속 상대를 기다리다가 보니 '우다방'이란 별칭이 붙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시절도 이제는 옛이야기가 됐다.
지난 12일 오후 포항 구도심인 중앙상가에는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실개천거리 1층 상점을 기준으로 문을 연 상점은 약 100곳이고 문을 닫은 상점은 30여곳이었다.
많은 시내버스가 다니는 죽도시장에서 육거리를 잇는 간선도로변에도 빈 상가가 많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주도로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이면도로 상가는 문을 닫은 상가가 더 많아 낮인데도 침침했다.
20여년간 이곳에서 사진관을 운영해온 업주(52)는 "이동이나 양덕 등 부도심에 상권이 형성되고 물품 구매 방식이 바뀌면서 요새 시내로 나오는 사람이 확 줄었다"며 "나도 이제 곧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도시 외곽에 신도시가 들어서고 도심에 있는 시청이나 포항북부경찰서 등 주요 관공서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유동 인구가 줄었다.
인터넷 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옷이나 신발을 직접 매장에 나와서 사기 보다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사례가 늘었다.
그러다가 보니 상점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상점이 적으니 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2015년 도심에 있던 포항역이 고속철도(KTX) 신설과 함께 외곽지인 북구 흥해읍 이인리로 이전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현재 포항 중앙상가는 다른 많은 지방도시의 구도심처럼 한산한 거리로 쇠락했다.
상가건물을 소유한 40대 후반의 김모씨는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 월세가 훨씬 줄어서 월세 받아서 대출 이자 갚기도 어렵다"며 "오히려 세입자가 나갈까 봐 건물주가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2022년 50만명 아래로 '뚝'…현재까지 회복 못 해
이 같은 쇠퇴 현상은 구도심뿐만 아니다.
흔히 쌍용사거리라고 부르는 유흥가도 활기가 줄었고 부도심 상권으로 꼽히는 이동 일대나 양덕동 일대 상권도 한창 때와 비교해 활력이 떨어졌다.
이렇게 상권이 활성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곳에 집중됐던 도심이 여러 부도심으로 흩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구가 줄어든 것이 결정적이다.
포항 인구는 1995년 영일군과 통합해 51만867명으로 출범한 이후 계속 인구 50만명 이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5년 11월 52만160명을 정점으로 줄면서 2022년 6월 말 시·군 통합 이후 처음으로 50만명 아래를 기록한 뒤 현재까지 49만명대를 보이고 있다.
포항이 한국을 휩쓰는 저출생 고령화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는 교육이나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청년이 많고 대표 산업인 철강경기 침체에 따른 일자리 축소로 포항을 떠나는 주민이 늘었기 때문으로 본다.
2017년 11월 포항에서 지열발전 때문에 일어난 지진도 인구 감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인구 감소는 공동주택 건설 경기에도 악영향을 줬다.
9월 말 기준으로 포항지역 미분양 아파트는 3천21가구에 이른다.
포항은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2022년 3월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2년 8개월 만인 올해 11월에서야 미분양 관리지역에서 해제됐다.
의대·병원 설립 등 정주 여건 개선에 사활
그렇다고 포항시가 인구 감소나 도심 공동화, 지방소멸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포항시 역시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인구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50만명 선이 위태로울 때는 전입자에게 30만원어치 포항사랑상품권을 줬고 기관·기업·단체·군부대·대학 등을 대상으로 주소 이전을 유도했다.
그러나 주소 이전 운동의 경우 타지역도 똑같이 하다가 보니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인구 유출을 줄이고 전입자와 출생아를 늘려야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있는 젊은 직장인들도 기회만 닿으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옮기려고 을 쓰고 있다.
한 20대 직장인은 포항에서 약 3년간 근무한 뒤 서울로 이동했고 30대 직장인도 수년간 근무하다가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옮겼다.
결국 시는 투자 확대뿐만 아니라 정주 여건 개선을 병행해 청년이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포항공대(POSTECH) 의대와 병원 설립에 역점을 두고 있다.
또 저출생·초고령화사회에 대응해 난임부부 지원이나 부모수당 지급,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긴급돌봄 확대, 문화관광 친화도시 건설 등에 나서고 있다.
시는 포스코를 비롯해 포항철강기업을 상대로 고용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이차전지 기업을 유치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철강도시로 불리던 포항은 다양한 신성장산업 유치에 나서면서 이차전지, 바이오, 수소 등 3개의 특화단지로 선정됐다.
시는 산업도시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문화관광도시로도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21년 11월 개장한 국내 최대 체험형 조형물인 '스페이스워크'는 어느새 포항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총 333m 길이의 철 구조물 트랙을 따라 걸으며 환호공원, 포스코 포항제철소, 영일만, 영일대해수욕장 등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포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촬영지도 방문객 증가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동백꽃 필 무렵'의 구룡포읍, '갯마을 차차차'의 청하면, '이 연애는 불가항력'의 도심권(철길숲, 영일대 장미원 등)으로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포항시가 포항 도심을 관통하는 동해남부선 철로 폐선부지를 활용해 만든 철길숲도 인기다.
구간별로 다양한 나무와 꽃, 화장실, 맨발길, 휴식공간, 조경시설 등을 갖춰 포항시민이 많이 찾고 있다.
이 덕분에 지난해 포항을 찾은 관광객은 759만5천29명으로 2022년 628만4천929명보다 131만여명(20.8%) 늘었다.
시는 포항국제불빛축제, 포항철길숲 야행과 같은 차별화된 지역축제 육성과 포항관광택시 운영 등을 통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건립 중인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가 완공되면 국제 규모 박람회, 전시회를 열어 복합전시산업 활성화에도 나선다.
이강덕 시장은 "앞으로 녹색성장산업 육성과 해상풍력, 그린수소 생태계를 갖춰 친환경 생태도시를 만들고 포항공대 의과대학 유치와 국제학교 건립을 통해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균형발전 거점도시, 다양한 국제행사 개최로 해양 문화관광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sds1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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