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이상 없나?” 트럼프 2기 미국을 읽는 ‘내재적 접근법’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51회>
트럼프의 귀환,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미국 대선에서 주류 언론의 예측을 뒤엎은 트럼프의 압승은 미국 사회 전역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이념 전쟁과 가치 투쟁의 결과였다. 이미 2~3년 전부터 미국의 보수층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 경도된 미국 사회의 병증을 고발하고 교정하려는 적극적인 사회 운동을 일으켰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란 구호 아래 들불처럼 일어난 이 운동은 무너진 가족의 복원, 건전한 상식의 회복, 시민적 자치(自治, self-government)의 재건, 전통적 가치의 부활, 개인적 자유의 신장 등의 구호를 내걸고 미국 사회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미국 주류 언론의 편향된 보도 속에서 이 운동이 크게 주목받진 못했지만, 압도적 표차로 미국의 정권이 교체됐다는 사실은 이미 시대의 대세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 사회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싶다면 편견과 선입관을 다 버리고 송의달 교수의 ‘신의 개입: 도널드 트럼프 깊이 읽기’(나남, 2024)을 정독하길 권한다. 트럼프 2기의 도래를 예견하고 미국 사회를 뒤흔드는 트럼피즘(Trumpism)을 심층 분석한 이 책은 미국 사회를 미국인의 시각에서 있는 그대로 파헤치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트럼프가 앞으로 펼칠 국제외교의 전략, 트럼프를 부활시킨 미국 사회의 불안과 희망, 트럼프란 개성적 인물의 성향과 실체를 정밀하게 분석한다. 이 정도 로드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호는 절대로 트럼프 2.0의 거친 바다를 슬기롭게 헤쳐갈 수가 없다. 당장 임박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이다. 송의달 교수가 이 책의 제1부 4장에서 “주한미군 분담금 이슈 선제 대응하라” 주문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트럼프 2.0 시대의 제1과제
미국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지난 10월 초 한·미 양국은 12차 방위비 분담 특별 협정(SMA)에 합의했다. 짧게는 5~6개월, 길게 치면 11~18개월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나온 성과였다. 2025년 한국 측 방위비 분담 총액 1조 4028억 원이었는데, 2026년부턴 그보다 8.3% 증액된 1조 5192억 원을 분담해야 한다. 한국 측 분담금이 늘어나지만, 연간 증가율은 현재 적용되는 국방비 증가율(4.3%) 대신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2%)을 적용하기로 했으며 5%의 상한선을 두었다. 달러 강세로 원화 절하가 지속되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국 측으로선 최선의 협상이었을 수 있다.
문제는 트럼프의 귀환으로 바이든 행정부와 체결한 이번 협정이 좌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미 의회의 비준을 거친 한미 FTA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관세 인상을 예고하고 있으며, 유세장에서 몇 번이나 한국이 방위비 분담액을 100억 달러로 올려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임기 초부터 한국을 향해서 기존 협정을 무시한 채 분담금 증액을 강력하게 요구해 올 수 있다. 2019년 6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국방장관을 지낸 마크 에스퍼(Mark Esper)의 회고에 따르면, 2020년 한국과의 방위비 협상이 좌초되자 트럼프는 여러 차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당시 트럼프는 대미 무역 흑자를 내는 한국의 안보를 미국이 책임지는 현실을 성토하면서 주한미군 전면 철수를 거듭 주장했는데,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이 설득해서 그 민감한 의제를 일단 두 번째로 넘겼다. (송의달, ‘신의 개입,’ 제1부 4장).
한국인으로선 한미동맹의 가치보다 미국의 국익을 앞세우는 트럼프의 요구가 야박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입장 바꿔 미국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 미국인 상당수가 한국에 대해 느끼는 불만과 의심을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최첨단의 기술력을 갖춘 한국은 과거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 10대 부국으로 성장해 있으며, 특히 미국과의 무역에서 2001년에서 2021년까지 2164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는 점이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트럼프의 말마따나 충분히 부유한 대한민국을 미국이 왜 큰돈을 써가며 지켜줘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둘째, 주한미군 유지를 위해서 한국이 분담하는 방위비는 2023년 기준으로 한국 정부 총예산의 0.2%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 대부분은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군속(軍屬)의 급여와 주택 비용이다. 미국 국방부 분석에 따르면, 주한미군 주둔 총비용 중에서 78%를 미국이, 22%를 한국이 담당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주일미군 주둔 비용의 75%를 내고 있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큰돈을 벌어가는 한국의 안보를 왜 미국이 지켜줘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셋째, 평범한 미국인들은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인들이 표출하는 반미감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 20여 년을 돌아보면 대한민국이 반미주의의 온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02년 6월 두 여중생이 주한미군의 공병 전차에 깔려 안타깝게 숨진 사건은 반미감정에 불을 질러서 그해 대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4~2005년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 다수는 북한의 김정일보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국 안보에 더 큰 위협이라고 대답했다. 2006년 개봉되어 1300만 관객을 동원하고 2007년 미국에서도 개봉됐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미군 부대에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 독극물이 괴물을 낳았다는 반미적 모티프를 품고 있다. 2008년 대한민국에선 미국산 쇠고기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한 사례가 역사상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미국소=미친소” 선동이 사회적 패닉을 조장했고, 서울 도심에서 100일 넘게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2010년 북한 천안함을 폭침했을 때는 난데없이 미군 오폭설이 떠돌았다. 문재인 정권은 환경영향 평가 등을 핑계로 사드 배치를 고의로 연기한다는 의구심을 샀다. 그 모든 굵직한 사건들이 실은 극미한 위험을 부풀리거나 사태의 인과관계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부 세력의 거짓 선동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한국인만큼이나 미국인들도 잘 꿰뚫어 보고 있다.
넷째, 미국인들은 지금도 자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했음을 기억하고 있으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 사실을 철저히 가르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발생한 미군 사상자는 14만 명에 달한다. 그중 3만3000명의 미군은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내고서 지킨 대한민국인데, 만약 한국인들이 미국에 반감을 품고 있다면 미국인들은 당연히 한미동맹의 해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공산 전체주의의 침략을 받아서 절멸의 위기에 처한 신생국 대한민국을 14만의 사상자를 내면서 함께 싸워 지켜준 나라다. 한국인들이 섣부른 반미의식을 드러내거나 친중 노선을 추구한다면, 미국인들로선 인간적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익을 놓고 치열하게 협상하기도 하고, 때론 격하게 언쟁할 수도 있겠지만, “다리에 불을 지르진 말라(don’t burn the bridges)”는 영어의 속담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 사이나 국제관계나 배은망덕(背恩忘德)을 저지르면 원수가 되고 만다.
요컨대 트럼프 2.0 시대 한국 정부가 한미 양국의 관계를 슬기롭게 풀어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국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미국인의 마음을 세심하게 읽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감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발적 직설과 냉정한 압박으로 동맹 유지의 비용 정산을 청구하는 제2기 트럼프 정권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의달 교수는 미국 안보 지원에 무임 승차하던 시대가 이미 끝났다며, 한국 정부가 진정 국가 안보를 위해서 주한미군 주둔이 필수적이라 판단한다면 방위비 전액을 부담하는 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2024년 4월 유력 정당이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국민 1인당 25만 원의 민생 회복 지원금은 13조 원이었고, 2020년 정부가 뿌린 코로나 재난 지원금은 14조 원이었다. 13조 원이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10년 치를 웃도는 금액이다. 1년 총예산을 따져보면, 대한민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제력을 갖고 있다. 물론 치열한 협상으로 분담금을 낮추면 좋겠지만, 국가의 안보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정가의 선심성 공약 뒤로 밀리는 불합리는 척결해야 한다. 트럼프의 귀환에 앞서 자발적으로 안보 비용을 증액하는 유럽연합(EU)의 발 빠른 대응을 배워야 한다.
“트럼프 2.0″에 대비 방위비 증폭하는 유럽연합
최근 보도에 따르면, 독일·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주요국의 방위 산업체 주가가 급등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불과 일주일 만에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SpA의 주가는 18%, 독일의 라인메탈(Rheinmetall) AG와 헨솔트(Hensoldt) AG의 주가는 각각 22%와 18% 치솟았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탈환하고 공화당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면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자체 방위비를 증강한다면 당연히 유럽의 방위 산업체는 당연히 호황을 맞게 된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트럼프 방위비 압박에 대비하여 선제적으로 585조 원의 기금을 방산에 쓰기로 결정했다.
2020년 6월 트럼프는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의 25%, 약 1만 2000명을 철수시켜 6400명은 본국으로 송환하고 나머지 인원은 이탈리아와 벨기에에 재배치하도록 명령했다. 2020년 7월 29일 그 결정 직후 트럼프는 백악관의 기자단을 향해 말했다. “우리도 이제 더는 안 속는다(We don’t want to be the suckers anymore). 독일이 제 몫을 안 내니까 우리가 병력을 빼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다.” 트럼프는 사전 합의에 따르면 모든 나토 회원국이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의 2%를 방위비 분담금으로 내놓아야 하는데 독일이 목표액을 충당하지 않았다며 그 결정을 정당화했다.
트럼프는 당시 병력 철수를 불현듯 일방적으로 통보했지만, 당시 국방부 비서관은 그러한 트럼프의 결정이 실은 서유럽의 미군 병력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하는 큰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독일에 주둔하던 전투기 부대를 이탈리아로 옮기고 일부 병력은 폴란드에 배치함으로써 러시아군에 대한 미국과 나토의 억지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는데, 당시 독일 측은 그러한 조치가 나토동맹, 특히 미·독 관계를 악화시킨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언쟁을 보면, 나토야말로 2차대전 이후 북미와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이끈 가장 중요한 군사동맹이라는 공동의 역사 인식을 확인하게 된다.
트럼프는 오히려 나토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고, 독일 측은 나토동맹을 일방적으로 함부로 흔드는 트럼프 정권에 불만을 표했을 뿐이었다. 어느 쪽도 나토동맹의 역사적 의의나 국제정치적 효력을 부정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속담처럼 “다리에 불을 지르지는 않았다.” 적어도 나토동맹의 중요성은 쌍방 모두 인정하기에 유럽연합은 트럼프의 귀환이 확실시되자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지난 정권에서 유감없이 표출됐던 트럼프의 강골이 4년이나 지나 트럼프 2.0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럽연합을 알아서 기게 한 셈이다. 물론 유럽연합이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트럼프란 독특한 인물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우·러 전쟁이 계속되는 이 시점에서 나토동맹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1000년 동안의 유럽사를 돌아보면, 실제로 끝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역사·사회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 1929-2008)가 논증했듯, 지난 1천 년 유럽사에서 다수의 민족국가가 출현하는 ‘나라 만들기(state-making)’ 과정은 쉴 새 없는 전쟁 만들기(war-making)의 과정이었다. 비근한 예를 들면, 100년 전쟁(1337-1453, 사상자 200~300만), 이탈리아전쟁(1494-1559, 50~100만), 30년 전쟁(1618-1648, 400~800만), 루이 14세가 일으킨 숱한 전쟁들(1667-1714, 200~400만), 나폴레옹 전쟁(1803-1815, 350~600만), 1차대전(1914-1918, 1500만~2000만), 2차대전(1939-1945, 전 지구 7000만~8500만, 유럽 4000만)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게 지난 1000년의 세월 동안 유럽의 수많은 전장에서 1억 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어야만 했다. 천년 넘게 대규모 전쟁에 끊임없이 휩싸였던 유럽인들은 1949년 나토동맹이 결성된 이후로는 75년의 세월 동안 대규모 전쟁을 피해 가며 전대미문의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나토의 결성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주체는 2차대전을 계기로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다.
미국은 마셜 플랜을 추진하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부흥을 지원했고, 소련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서유럽과의 상호 방위조약을 체결했으며, 무엇보다 막대한 군사비를 써가면서 서유럽 주요국에 대규모 미군 병력을 주둔시켰다. 2차대전이 종결될 당시 서독에만 200만의 병력을 배치했었지만,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는 유럽 전역 주요국에는 대략 25만에서 30만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덕분에 2차대전 추축국이었던 독일, 이태리, 일본은 미국의 직접적 영향 아래서 ‘규칙 기반(rules based)’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동참하여 세계적 주요 국가로 성장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트럼프의 귀환에 맞춘 유럽연합의 기민한 방위비 증액 결정은 지난 75년의 평화와 번영을 가능하게 한 나토동맹에 대한 긍정적 역사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정부도 대중의 의식을 파고드는 시대착오적 종북·반미주의, 친중 사대주의, 반일 종족주의에 대항하여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의와 성취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설파할 필요가 있다. 다음 회에 살펴보겠지만, 20세기 중반기부터 미국이 세계 140개 국가에 병력을 배치한 글로벌 군사 대국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선 반드시 한국전쟁(1950-1953)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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