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명태균’ 사태 일어날라…여의도 ‘브로커 경계 경보’
민주당 후보 “브로커가 지지율 조작 시도” 폭로하기도
‘명태균 사태’ 후 여야 의원실 내 ‘민원 경계’ 움직임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나 '브로커요' 하고 다니는 '정치브로커'가 있습니까?"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 후보를 도왔다던 여당 관계자는 이른바 '명태균 공천개입' 논란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선거철만 되면 날파리 꼬이듯 수많은 '명태균들'이 후보를 돕겠다고 연락을 해온다"며 "한 표가 아쉬운 후보들로서는 이들이 내미는 손을 쳐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선이 되고나면 이들이 민원이랍시고 청구서를 내미는데, 이 청구서에 값을 치르는 순간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명태균씨가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면서, 정치인과 정치브로커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가에선 선거철 도움을 고리로, 당선 후 인사와 민원 청탁을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후문이 들린다. '제2 명태균' 사례가 언제든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일부 의원실은 정치 후원금 내역 등을 살펴보며 문제가 될 만한 '요주의 인물'들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선거마다 반복되는 '브로커 논란'
명태균씨가 논란이 된 건 △공적인 직을 갖지 않은 이가 △공직에 있는 핵심 인사들과 1:1로 소통하며 △공천 등 핵심 정치 현안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명씨가 지난 대선과 총선 전후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명씨가 강하게 요구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명씨가 금전적 대가 등을 수취했다고 보고 있다.
비단 명씨와 같은 사례가 윤석열 정부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대선, 총선, 전당대회 등 선거만 앞두면 '정치브로커'들이 양산된다. 이들의 타깃은 주로 윤 대통령처럼 정치에 처음 발을 들이는 '새내기'들이다. 이들은 '정치 전문가'를 자처하며 인맥과 정보를 앞세워 후보들의 지원군으로 나선다. 이렇게 권력자의 측근이 된 이들은 '막후 영향력'을 앞세워 인사 청탁 등을 시도한다.
정치브로커들의 실체, 구체적인 접근 방법을 폭로한 정치인도 있었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이중선 더불어민주당 전주시장 예비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브로커로부터 (당선될 경우) 시청 인사권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브로커는 시청 국·과장 자리가 120개가 넘는데 그 자리를 왜 못 주느냐고 했다. 요구한 인사권은 주로 이권과 연계된 건설·산업 쪽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 예비후보는 정치브로커들이 '지지율 조작'을 시도한다고도 고발했다. 그는 "(브로커는)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방편도 일러줬다. 통신사 콜센터에 전화해서 주소를 특정 지역으로 옮기겠다고 하면 해당 지역 거주자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여론조사 업체가 그 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정 후보의 지지자들이 대거 후보자의 지역으로 휴대전화 요금 청구지를 바꾸면 여론조작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유리한 여론조사 설계‧제안→인사권 요구'로 이어지는 정치브로커의 접근 방법은 명씨가 받고 있는 혐의와 유사하다. 여론조사 업체와 인터넷 매체 대표로 활동한 명씨는 여론조사를 무기로 유력 정치인에게 접근해 선거 전략부터 공천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태균 불똥 튈라…與野 '사람 단속‧돈단속'
명씨가 구속된 가운데, 정치권에선 명씨의 조력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의 명단이 확산하고 있다. 나아가 명씨뿐 아니라 재력과 정치 경력, 향우회 인맥 등을 앞세워 여의도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후문도 들린다. 언제든 '제2 명태균' 사태는 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나도 20년 넘게 온갖 선거를 다 치러봤지만 '명태균'이란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 '꾼'들의 수가 지역구마다 한 트럭"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사과상자'(돈)들고 정치인들을 찾아가는 시대는 지났다. '내가 이 지역 누구를 안다', '내가 (당선될) 분위기를 만들어주겠다'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이어 "이런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면 '민원 파일' 들고 찾아오는 것이다. 사실 권력자의 측근과 정치브로커는 한 끗 차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명태균 사태' 후 일부 의원실들은 후원금 내역 등을 살펴보면서, '요주의 인물들'에 대한 경계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선거 때 자신을 도왔던 이들 중 문제가 될 만한 이력이 있는 이들은 없는지, 의원실 내 이들과 관련된 보좌진은 없는지 자체조사에 착수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초선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지역 민원과 인재 추천을 받는 게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의원실과 상의 없이) 컨설팅 보고서를 만들거나, 행사 등을 열어주고 민원을 넣게 되면 '그림'이 이상해지는 것"이라며 "의원 입장에선 이들을 박절하게 끊어내는 게 쉽지 않지만, 명씨가 논란이 된 후엔 조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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