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표범의 부부싸움, 여우 목도리를 한 여우...경이로운 자연의 풍경들
수풀이 무성한 늪지대에서 벵갈호랑이 한 마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두 앞발을 치켜들었다. 다른 한 마리는 옆에서 이 모습을 위협적으로 지켜본다. 경쟁 상대로 보이지만 사실 발을 치켜든 호랑이는 어미, 지켜보는 호랑이는 이제 다 자라서 독립을 앞둔 새끼다. 작가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타도바 안다리 호랑이 보호구역에서 멸종 위기의 수컷 새끼 벵갈호랑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른이 되기 위해 호랑이는 먼저 자기 영역을 표시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작가는 새끼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어미의 역동적인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 속도를 빠르게 했다.
3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자연사진상인 네이처스 베스트 포토그래피(NBP)는 인도 사진작가이자 탐험가 망게쉬 라트나카르 데사이가 찍은 ‘벵골 호랑이들’을 올해 대상 수상작에 선정했다.
인도 출신 작가는 히말라야부터 아프리카 콩고의 비룽가까지 탐험을 하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전하고 보존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 호랑이로 불리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최근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벵갈호랑이는 멸종위기 적색 목록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데사이는 소감에서 “자연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지구와 그 무수한 경이로움을 단단히 연결하는 고리”라고 말했다.
스페인 출신 알베르토 로만 고메즈는 스페인 남부 카디스에 사는 유럽검은딱새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으로 올해 청소년 사진작가에 선정됐다. 작가는 올해로 겨우 9살에 불과한 신진 청소년 작가이다. 어느 여름 오후 시에라 데 그라잘레마 공원을 찾았다가 이 어린 새를 발견했다고 했다. 새는 먹이를 잡기 위해 울타리에 앉았다가 반복적으로 땅으로 날아갔다. 작가는 울타리에 잠시 내려앉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네이처스 베스트 포토그래피는 1995년 전 세계 모든 연령대의 자연사진 작가들의 창의적인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 처음 제정됐다. 자연의 아름다움, 다양성, 중요성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보고, 즐기고, 보존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도 62국 사진작가들이 2만5000점이 넘는 작품을 출품해 엄격한 심사를 받았다. 대상, 올해의 청소년 사진작가상 외에도 조류·야생동물·자연의 예술·풍경·아웃도어 모험·동물의 익살·극지의 열정·보존·바다 전망 등 11개 분야에서 수상작을 뽑았다.
◇어리둥절한 포식자, 표범의 부부싸움
조류 부문 우승은 중국의 작가 린샤오핑의 작품 ‘왜가리와 레이디피시’에 돌아갔다. 린 작가는 중국 푸젠성 샤먼 윈당호에서 왜가리를 관찰하다가 레이디피시 한 마리가 먹이를 쫓다가 갑자기 물밖으로 뛰어오르는 순간을 포착했다. 왜가리가 깜짝 놀란 채 어느 먹이를 잡아야할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재밌다. 결국 왜가리는 두 먹이를 모두 놓쳤다.
아프리카 표범 두 마리가 서로에게 몹시 화가 났다. 한 마리는 뛰어올랐고 다른 한 마리가 공격할 틈을 노리며 위를 노려보고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용호상박이다. 미국 작가 케빈 둘리는 보츠와나의 마샤투 보호구역에서 아프리카 표범의 부부 싸움을 찍은 작품으로 야생동물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작가는 아침 일찍 나무에 표범 부부 한 쌍이 한가롭게 그늘을 차지하고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 하루종일 머물러야 했다. 저녁 무렵 암컷과 수컷은 결국 다투기 시작했고 먼지가 날리는 속에서 빠른 셔터속도로 찍힌 동물 부부의 싸움은 예술 작품이 됐다.
어느 사막의 여름날 더위를 식히던 여우 한 마리가 꼬리로 또 다른 여우의 목을 감쌌다. 여우 목도리를 한 여우 같다. 미국의 야생동물 사진 투어 가이드인 브라이언 클로프는 유타주 오나키산에서 이 지역 명물인 키트여우들이 서로 장난을 치는 모습을 포착해 ‘동물의 익살’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작가는 한때 할리우드 유명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영화를 공동 제작했다. 하지만 야생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직업을 바꿨고 한 여름 사흘 밤낮을 유타의 외딴 사막에서 지낸 끝에 이 아름다운 한 장을 얻었다.
◇사진가의 새 눈 드론, 물감으로 그린 듯한 일출
자연의 예술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중국 자연사진 작가 리레이는 중국 티베트 나그쿠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아름다운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수년 간 경이로운 호수와 자연을 촬영하기 위해 티베트를 여행했다. 티베트는 외국인의 접근이 어렵지만 거대한 산과 함께 1000개가 넘는 그림 같은 호수가 펼쳐진 곳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사진 작가의 새로운 촬영 수단으로 떠오른 드론을 적극 활용했는데 4.8㎞ 상공에서 내려다본 겨울의 얼어붙은 호수에선 지상에선 결코 보이지 않는 자연의 디자인이 드러났다.
캐나다 작가 브렛 프렐리시는 캐나다 동부의 허드슨 베이의 바다에서 벨루가 고래 무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극지의 열정’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안에는 해마다 5만 마리 이상의 벨루가가 새끼를 낳기 위해 찾고 있다. 작가는 호기심 많고 목소리가 크고 하얀 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찍기 위해 보트를 타고 뗏목에 몸을 싣고 두께가 7㎜나 되는 뚱뚱한 잠수복을 입고 물에 들어갔다. 얼굴과 손이 찬 바닷물에 노출되면서 잠시 마비 증상을 겪기도 했다. 컴컴한 바닷 속에서 이들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한 무리 벨루가들이 약속이라도 한듯 수m앞까지 와줬다고 했다.
브라질 작가 마르시오 에스테베스 꺄브랄은 브라질 중부 열대 사바나 고원인 알토 파라다이스 데 고이아스에서 경험한 이국적인 일출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는 어느 새벽 멋진 들판에서 떠오르는 햇볕을 반사해 스스로 빛을 내는 것과 같은 야생화들을 목격했다. 작가는 노출값을 바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 결과 선명한 하늘과 야생화의 독특한 조화를 얻었다. 이 지역은 다른 아마존 산림 지역과 달리 보호지역을 지정돼 벌채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아웃도어 모험 부문 우승자인 모험사진 작가 벨바 헤이든은 미국 유타주 몬티첼로 인근에서 금환일식을 배경으로 외줄타기를 하는 스턴트맨의 모습을 담았다. 금환일식은 달이 해를 가리는 일식 현상 중 하나로 달이 해 한가운데를 가려 반지처럼 보이는 천문현상이다. 작가는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직접 통과하는 일식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더 극한의 고공체험을 선보이고 싶어한 등반가와 최적의 장소와 방법을 골랐다. 작가는 “자연을 촬영할 때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데 이 사진이 그런 느낌을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연의 큰 적으로 떠오른 인류에 경각심
스페인 출신 사진작가 하이메 로호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 서식하는 제왕나비의 보존 문제를 제기한 일련의 사진으로 보존 스토리 부문의 우승을 차지했다. 제왕나비는 캐나다 남부와 미국,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발견되는 왕나비류 일종이다. 북미와 장거리 이동을 하는 곤충의 상징이자 꽃가루 매개자인데 30년간 개체수가 90% 가까이 줄었다. 작가는 멕시코 엘 로사리오 보호구역의 전나무 숲에서 날아오르는 제왕나비떼 모습과 다른 나비들과 합류하기 전 보온을 위해 서로 몸을 밀착한 제왕나비떼 모습을 포착했다. 과학자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산업적 농업이 번성하고 주택개발이 확대되면서 제왕나비의 번식지가 줄어 개체수 감소를 촉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22년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는 북대서양에 사는 괭이갈매기류의 하나인 북방가넷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북방가넷의 개체수를 위협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다. 미국의 호흡기 전문의이자 사진 작가 쿠럼 칸은 영국 스코틀랜드 셰틀랜드섬에서 북방가넷이 둥지로 쓰려고 물고온 폐어구 쓰레기에 목이 걸려 죽어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작가는 당장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도 이처럼 실에 매달린 운명이라고 말했다.
바다뷰 부문의 우승자인 프랑스 작가 세실 가비용은 코스타리카 서부 케포스에서 프리다이빙을 즐기던 중 스피너 돌고래의 대규모 무리를 발견했다. 예전에는 이런 대규모 무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오남획으로 먹잇감이 줄면서 돌고래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은 흔한 일이 됐다.
캐나다 작가 패트리샤 호모니로는 창문에 충돌해 죽은 수많은 새들로 만든 전시물을 촬영한 작품 ‘세계가 충돌할 때’로 자연 동영상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자연보호단체에 따르면 매년 북미에서만 10억 마리 이상의 새가 창문에 충돌해 숨진다. 자연보호단체 봉사자들은 토론토 지역에서 이렇게 죽은 새들의 사체를 모아 매년 ‘버드 레이아웃’이라는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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