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살 사람"…새벽 2층 주택서 흉기 찔려 부부 사망

신초롱 기자 2024. 11.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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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 패물·현찰 그대로…통장 4개·사업 장부만 쓱 [사건 속 오늘]
현장엔 족적과 피 묻은 우비뿐…두 아들·세입자 모두 무혐의, 미제로
(TV조선 '탐사보도 세븐'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2006년 11월 16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던 날, 인천 부평구 십정동의 한 주택 2층에서 집주인 김 모 씨(당시 56세)와 부인 임 모 씨(53)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최초 발견자는 1층 세입자 A 씨였다. 건축 설비 가게를 하며 세 들어 살던 A 씨는 이날 새벽 2시 50분쯤 2층에서 들리는 소란과 전화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혼자 올라가기 무서워 옆집에 살던 매형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고, 무슨 일 있겠나 싶어 다시 잠을 청했다.

전날 밤 상황이 찜찜했던 A 씨는 오전 8시 20분쯤 매형과 함께 주인집으로 올라갔다. 살짝 열려 있던 현관문을 열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피범벅이 된 김 씨와 부인 임 씨는 맞은편 거실 창문 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사망해 있었다.

남편 김 씨 8곳·아내 임 씨, 가슴·등 부위만 무려 37차례 찔려…저항흔 없어

시신의 상태는 참혹했다. 김 씨는 8곳을 찔리고 아내 임 씨는 가슴, 등 부위를 무려 37군데 찔린 상태였다. 두 사람의 몸에는 저항 흔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아 비명조차 못 질렀던 것으로 파악됐다.

방 안 서랍은 누군가 뒤진 듯 흐트러져 있었다. 그런데도 패물과 현찰은 그대로였고, 주방 천장에 있던 다 합쳐 1억 원가량이 든 적금 통장 4개가 사라진 상태였다.

범인은 건축일을 하던 남편 김 씨의 사업 장부도 훔쳤다. 범인은 지문, 머리카락, 흉기를 현장에 남기지 않았다.

다만 숨진 김 씨 옆에는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족적과 피 묻은 우비가 떨어져 있었고 김 씨 손에 찢긴 우비 조각이 쥐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부인 노린 후 뒤이어 남편 공격 추정…현관문엔 침입 흔적 없어

경찰은 형사 60여 명을 투입해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수사에 돌입했다.

부부는 새벽 2시 30분에서 5시 사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전문가들이 혈흔 패턴으로 현장을 재구성한 결과 범인이 먼저 부인을 노렸을 것이라 봤다. 집안으로 침입해 거실에 있던 아내를 먼저 공격하고, 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나온 남편이 쫓아오자 공격한 것으로 파악됐다.

(TV조선 '탐사보도 세븐' 갈무리)

사건이 발생했던 2층짜리 주택은 1층에 방앗간과 건축 설비 가게가 있었고 가게에 딸린 방에서 사장들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2층은 옥상 겸 피해자의 집이었다. 보조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던 현관문에는 강제 침입 흔적이 없었다.

구조도 독특했다. 주택은 큰길에서 봤을 때는 2층으로 올라가는 대문이 보이지 않았다. 1층에서 건물 왼쪽으로 꺾어 골목으로 들어가야 대문이 나오는 구조여서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헷갈릴 수 있는 형태였다.

이 점을 토대로 경찰은 단순 강도의 소행으로 보지 않고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 것으로 판단했다.

"부부는 평소 법 없이 살 사람"…세입자 2명 혐의점 없어 용의선상 제외

용의선상에 먼저 오른 건 1층 세입자들이었다. 사건 전날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 집주인 김 씨와 세입자 2명은 그날 담근 김장 김치에 돼지고기,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세입자들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와 최면 조사까지 받았다. 두 사람 모두 김 씨와 사이가 좋았고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해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주민들은 부부가 넉넉하진 않지만 이웃들과 잘 어울리고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부인은 생활력이 강했다.

(TV조선 '탐사보도 세븐' 갈무리)

수사팀은 금전과 관련한 원한 관계에 대해서도 조사했지만 채무 관계에도 문제가 될 만한 정황은 없었다.

그러나 김 씨가 평소 '나 돈 좀 벌었다, 모았다'라는 말을 종종 했기에 이 때문에 타깃이 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의대 재학 큰아들 '빚 5000만 원'…경찰 "돈 노리고 살해" 추측

부부의 두 아들도 용의선상에 올랐다. 첫째 아들은 서울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었고, 둘째는 충남에서 수의대에 재학 중이었다. 부부는 독립한 두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했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1층 세입자는 부모의 사망 소식을 알리기 위해 첫째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지 학교에 있어야 할 첫째는 집 근처 전철역에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큰아들에게는 5000만 원 이상의 빚이 있었다. 돈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했을 것으로 추측한 경찰이 큰아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지만 뚜렷한 용의점은 나오지 않았다. 둘째 아들도 사망 시각에 알리바이가 확인되면서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1500여 명 상대로 대대적 수사에도 혐의점 못 찾아 …18년째 미제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약 한 달 동안 현장 주변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수사에 매달렸다. 유일한 단서였던 우비는 체크무늬에 단추가 3개 달린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TV조선 '탐사보도 세븐' 갈무리)

국내에서 제조된 게 아니어서 판매처를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간석동의 한 소매점에서 비슷한 우비가 판매됐다는 사실이 파악됐지만 소득은 없었다.

이후 범인이 남기고 간 족적을 분석해 동일한 운동화를 특정했지만 수사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피해자 가족, 지인, 주변 인물을 그리고 주변에 동일 수법 전과자, 최근 출소자까지 약 1500명을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사건은 1년 만에 종결되면서 18년째 미제로 남아있다.

r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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