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첨단 통신망이 무기… 땅속에서 세계 호령하는 미국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모든 길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으로 통한다.'
2002년 기준 세계 인터넷 통신 중 미국을 거치지 않고 미국 이외의 두 지역을 오간 비율은 전체의 1% 미만에 불과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미국의 초고속 통신망이 정보기관들이 모여 있는 워싱턴DC 북부 버지니아 지역을 집중적으로 경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가만히 앉아서 전 세계 통신망을 감청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中 화웨이 5G 시설 구축 막는 등… 통신망 권력 우위 지키려 필사적
기술 권력 관점서 국제정치 소개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헨리 패럴, 에이브러햄 뉴먼 지음·박해진 옮김/352쪽·2만5500원·PADO북스
2002년 기준 세계 인터넷 통신 중 미국을 거치지 않고 미국 이외의 두 지역을 오간 비율은 전체의 1% 미만에 불과했다. 예컨대 당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상파울루로 보낸 이메일은 엉뚱하게도 미국 마이애미를 경유했다. 브라질 내 느린 구리선을 이용하는 것보다 미국의 초고속 광섬유 케이블을 이용하는 게 더 빨랐기 때문.
그런데 흥미로운 건 미국의 초고속 통신망이 정보기관들이 모여 있는 워싱턴DC 북부 버지니아 지역을 집중적으로 경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을 통과하는 광섬유는 프리즘 기술을 통해 2개의 신호로 분리돼 하나는 원래 경로로 움직이고, 다른 하나는 신호정보(시긴트)를 담당하는 NSA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 미국 정보기관이 가만히 앉아서 전 세계 통신망을 감청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2명이 쓴 신간은 오늘날 미국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길인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세계를 통제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제국’이 탄생한 과정뿐 아니라 미국이 어떻게 다른 나라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막강한 힘이 가능한 것은 크리스 밀러가 베스트셀러 ‘칩워’에서도 강조한 ‘무기화된 상호의존성(weaponized interdependence)’ 덕분이다. 세계화를 계기로 무역, 통신, 금융 등에 있어서 높아진 각국의 상호의존성이 강대국에 의해 무기로 전용되었다는 것. 저자들은 미국이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통신망이나 금융시스템 같은 글로벌 인프라를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현상은 미중 갈등 국면에서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들의 화웨이 5G 전화교환기 도입을 저지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은 중국의 감청 위험을 내세웠지만, 실은 자국이 구축한 글로벌 통신 네트워크 기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화웨이가 만든 5G 기지국을 통해 냉장고, 자동차, 보안 카메라, 심박 조율기, 로봇 등 온갖 사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정보, 돈, 물류가 중국산 장비를 통해 유통될 수 있다는 걸 미국이 특히 우려했다는 얘기다. 2020년 2월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가 미국 정부의 화웨이 설비 구입 중단 요청을 거절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졸도 직전까지’ 격분한 이유다.
여기까지만 보면 신간이 미국의 권력을 고발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는 ‘국제정치의 속성은 원래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준다. 상호의존성을 무기로 다른 나라를 통제,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패권을 추구하는 모든 강대국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밀러는 이 책에 대해 “권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설명서”라며 “미국이 어떻게 세계질서를 얽은 배관을 무기화하는 법을 배웠는지를 미묘한 필체로 폭로한다. 오늘날 경제 및 기술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라는 추천사를 썼다. 밀러의 ‘칩워’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그 연장선상에서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기술 및 경제 통제의 실상을 신간을 통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첫 판결부터 징역형… ‘李 대선주자 입지-당 일극 체제’ 타격
- [사설]李 선거법 위반 1심 예상 밖 중형… 현실화하는 사법 리스크
- 윤-시진핑, 한중정상회담 시작…북한군 우크라전 참전 대응 등 논의
- “트럼프 인수위, 전기차 보조금 폐지 계획”… 韓업계 비상
- 檢 “명태균 甲, 김영선 乙 관계”… 불법 여론조사 등 수사 확대
- 한국야구 일본에 9연패… 남은 경기 다 이겨도 ‘경우의 수’ 따져야
- 현대차 사상 첫 외국인 CEO 무뇨스-대외협력 수장 성 김… ‘트럼프 스톰’에 정의선 파격 인사
- [횡설수설/김승련]앤디 김, 영 김, 매릴린 순자 스트리클런드, 데이브 민…
- 의대협 “내년에도 투쟁”… 3월 복학 불투명
- 형제애로 마련한 400억…감사 전한 튀르키예[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