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경험 안 해봤다면, 그게 진짜 큰 실패"

허정연 2024. 11. 16.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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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운다, 카이스트의 이색 도전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장이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공통점은 늘 성공만 거둔 사람이 아니라 수천 번 실패한 사람이란 점입니다.”

지난 11일 카이스트 학술문화관에서 만난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장(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은 실패연구소에 역점을 두는 이유를 묻자 노벨 과학상 얘기부터 꺼냈다. 조 소장은 “어떤 분야에서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걸 먼저 시도하는 모험을 해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인재들은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조 소장이 지난해부터 교내에서 실패학회 행사를 여는 것도 실패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그는 “학생들이 서로의 실패담을 공유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우자는 취지”라며 “한국 사회도 실패를 ‘용감한 시도’가 아닌 ‘부끄러운 실수’로 여기는 인식을 개선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Q : ‘천재들의 집합소’로 불리는 카이스트에서 실패에 주목하는 게 조금은 낯설다.
A : “카이스트에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고 국가도 적극 지원하는 이유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남들이 해놓은 걸 그대로 따라 해서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결국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갈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인재들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게 큰 문제라고 봤다. 실패 없는 도전 없고, 도전 없인 성공도 없다는 걸 일깨워주는 게 우리 연구소의 목적이다.”

Q : 카이스트 학생들이 실패에 특히 취약하다고 보나.
A : “요즘 영재고나 과학고를 가려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지 않나. 우리 입시 제도에서는 학창 시절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아야 카이스트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큰 좌절 없이 카이스트에 온 게 오히려 불행일 수 있다. 실제로 연구든 취업이든 거듭되는 실패에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도 적잖다.”
그는 그러면서 “모범생들은 대체로 불확실성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오히려 모든 게 이미 결정돼 있길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안정적인 의대에 가는 걸 기꺼이 택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인재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주저하는 건 사회 환경적인 요인도 크다.”

그는 지난달 카이스트가 실시한 대국민 여론조사를 예로 들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표면적으론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라고 인식하지만 실제론 ‘실패는 좌절의 경험일 뿐’이라며 가급적 피하고 싶어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인식을 단번에 변화시킬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학생들에게 학교 안에서라도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Q : 실제 학생들의 중압감이 어느 정도인가.
A : “이공계 전공에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URP)이란 게 있다. 학부생이 대학원 연구를 먼저 경험해 보는 건데, 사실 경험이 전무한 학부생이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긴 쉽지 않다. 그런데도 리포트를 보면 어떻게든 잘된 결과를 도출해 제출한다. 말은 학부생 연구지만 실패한 결과를 내놓을 순 없다는 강박관념에 조교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성공한 결과를 내놓는 거다.”
실패연구소도 이 문제를 놓고 학생들과 워크숍을 했다. “다들 속으로는 연구가 뜻대로 되지 않아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속앓이하는 대신 터놓고 대화하자고 했다. 그렇게 당당히 실패를 인정하고 개선책이 뭔지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경험을 공유하게 됐다. ‘망한 과제 자랑대회’와 ‘실패 에세이 공모전’도 이런 깨달음이 바탕이 됐다.”

Q : 실패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 “실패를 수동적으로 경험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하는 게 중요하다. 에세이나 발표를 통해 실패 사례를 쓰고 말하라고 권유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실패를 능동적으로 바라보면 목표의 방해 요소가 아니라 배움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문화적 차이도 느끼는 게, 이런 행사에도 우리나라 학생보다는 외국인 유학생이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외국인 학생들이 ‘나는 실패를 통해 이런 걸 배웠어’라는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반면 우리 학생들은 부끄러워 숨기려 하는데 이는 능동적으로 실패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Q : 실패의 경험을 잘 다루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과학상이 나올까.
A : “한국인이 노벨 과학상보다 문학상을 먼저 받은 건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 계획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해서 된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한강 개인이 순수한 동기로 진심을 다해 작품을 쓴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거다.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된 사람이 자생력을 갖고 연구에 매진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노벨상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연구에 대한, 나아가 삶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학창 시절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목표를 세울 시기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맞추는 데만 몰두하고 있으니 성인이 돼서도 동기 부여가 안 되는 거다. 목적이 뚜렷하면 실패 과정에서 배움을 얻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패는 그저 실패로 끝날 뿐이다.”

Q : 실패연구소장으로서 실패를 정의하자면.
A : “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은 게 진짜 큰 실패라고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내 인생은 이렇다 할 실패 없이 탄탄대로였다’ 싶으면 오히려 바짝 긴장해야 정상이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실패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어려서부터 건강한 실패를 경험한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실패로 인한 좌절감이 덜하다. 반면 그런 경험이 없으면 작은 실패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어떤 분야든 1등이 되려면 새로운 도전과 모험은 필수다. 그러려면 실패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대전=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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