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마지막 삶 함께 할 것”
“좋지 뭐. 얼마나 정신이 맑으신 거야. 나는 어제 뭐 먹었는지도 생각이 안 나.”
올해 91세인 여성국극 1세대 조영숙 명인과 50세 미술가 정은영이 어머니와 딸처럼 마주 앉아 옛 공연 사진·대본·기록을 정리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정 작가의 최근 영상작품 ‘먼지’(2023)의 한 장면이다.
여성국극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정년이’의 국극 관련 자문을 맡은 정은영 작가는 미술계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들인 ‘에르메스 미술상’(2013년)과 국립현대미술관·SBS문화재단 ‘올해의 작가상’(2018년)을 수상했고, 2019년에 남화연·제인 진 카이젠 작가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전시했다. 2008년부터 작가가 진행해온 ‘여성국극 프로젝트’가 국내외 평론가들과 학자들을 매료시킨 때문이다.
작가는 여성국극을 접하기 전부터 기존의 성별 구분·역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성별 규범에 균열을 내는 작품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2008년, ‘1950년대 여성문화연구’를 하는 선배의 연구 보조원이 되어 왕년의 여성국극 배우들을 만나게 되면서 여성국극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여성국극을 연구하고 관련 작품을 하는 것이 자신의 기존의 문제의식과 관련해 가장 “성취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관하여 중앙SUNDAY는 작가와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는 현재 괴테 인스티투트(독일문화원)의 기억·아카이브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베를린에 체류하고 있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Q : 성별 규범을 깨는 다른 퍼포먼스보다 여성국극을 다루면서 성취감을 느끼신 이유는요?
A : “여성국극은 단지 성별을 갈아입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의미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성별 연기를 하는 장르공연을 만든다는 것, 둘째,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공연단체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것, 셋째, 전통연희를 변칙적으로 바꾸어내는 것으로 근대적 공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점, 넷째, 아카이브의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점, 다섯째, 한국 퀴어 공연의 계보와 역사를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점. 이렇게 인류학적으로, 공연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여성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Q : 여성국극이 전성기였던 1950년대는 지금보다 가부장제가 훨씬 강했던 시기인데 여성국극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은 없었는지요?
A : “50년대에는 워낙 인기가 상승세에 있었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성들의 반발은 없었고, 오히려 능력 있는 남성들이 여성국극의 연출부나 사업부에서 활약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60년대 말부터 여성국극이 점차 인기를 잃고 사그라드는 순간에 여성국극의 주변에서 일하던 남성들이 모두 여성국극을 떠났고, “여성들만” 모인 단체를 폄훼하는 기사나 비평이 많이 발견됩니다. 1976년에 발간된 박황의 『창극사연구』를 보면 실제로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등의 여성비하적 수사를 동원해 여성국극을 창극 역사를 망친 주적으로 지목하기도 합니다.”
Q : 지금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기획전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에서는 트랜스젠더 전자음악가 키라라와 협업한 작업 두 작품을 전시 중인데, 이제 국극은 더 이상 다루지 않는 것인지?
A : “여성국극이 웹툰 ‘정년이’를 비롯해 K-드라마에 흡수되는 상황에서 (여성국극과 관련한) 제 역할은 이제 거의 종료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완전히 그만두었다고 말할 수는 없고, 현재 살아계신 1세대 선생님 두 분-조영숙 명인과 이소자 명인(94)-의 마지막 삶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 두 분의 삶을 잔잔하게 남기는 작업 ‘먼지’와 ‘깃발’을 제작했습니다. 이처럼 두 분의 인생 마지막을 돌보고 함께하는 작업을 간간히 해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종료해 나가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동하고 있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 현재 MMCA에 전시중인 작품입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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