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이 끓어올랐다, 아버지가 그리웠다
[정동현의 pick] 동태찌개
부산 영도에서는 집 옥상마다 생선을 말렸다. 김치에도 생선이 들어갔다. 젓갈은 종류별로 한 움큼씩 넣었다. 서울 출신인 부모님은 부산 입맛에 길들지 못했다. 우리 집 김치에는 새우젓과 액젓 정도만 들어갔다. 밥상에 오르는 생선 요리는 고등어와 갈치구이, 동태찌개가 전부였다.
생선이 널린 부산에서는 굳이 동태를 찾아 먹지 않는다. 생선 대가리와 뼈를 모아 고춧가루와 조핏가루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기도 하지만, 그것이야 생선회를 먹고 난 다음 나오는 식사지 보통은 복어, 대구, 생태를 써서 맑은 탕을 만든다. 작은 미닫이 문 안 우리 집은 바닷바람 부는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어디 같았다. 아버지는 쑥갓과 무, 고춧가루를 푼 동태찌개를 먹었고, 진로 소주를 그리워했다. 부모님은 평생 부산 사투리를 익히지 못했다. 동생과 나는 집에서는 서울 말을, 밖에 나가면 사투리를 썼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직장 생활을 한 곳은 가양동이었다.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변 도로 위에서 아침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강서구청 언저리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주문진생태찌개’란 이름이 붙은 가게는 어수선한 먹자골목 초입에 있었다. 전날 밤 열기가 가신 먹자골목은 찬 바람에 으스스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가게 안에는 이른 점심부터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여럿이었다. 테이블이 석 줄로 늘어선 가게 안에서는 초로의 주인장 홀로 주방을 맡고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고 안경을 쓴 중년 여자가 음식을 날랐다.
식당을 여럿 다니다 보면 얕은 경험이 쌓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주인장이나 종업원이 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넘겼으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일을 제대로 하겠다는 각오는 겉으로도 쉽게 드러나는 법이다. 예상대로 주문을 받을 때 오차가 없었고 반찬을 놓을 때도 가지런히 열을 맞췄다. 이제 상이 본격적으로 차려지기 전에 찬을 맛볼 차례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김을 맛간장에 찍었다. 밥이 채 나오지 않았는데도 김을 몇 장 먹었다. 과자처럼 바삭하게 구운 멸치볶음에도 손이 계속 갔다. 바닷바람처럼 상쾌한 향이 나는 돌김은 구하기부터 어렵다. 습기가 차거나 맛이 떨어지지 않게 그때그때 손질해 손님에게 내놓기도 쉽지 않다. 멸치에서 수분을 바싹 날려 설탕과 물엿에 바삭하게 졸이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돼지고기 장조림, 겉절이를 조금씩 집어 먹노라니 상에 동태찌개가 올라왔다.
그 사이 새로 도착한 단골들은 메뉴판을 보지 않고 주문을 넣었다. 어떤 상에는 맑은 대구탕이 올라갔고 또 어디에는 살점이 부드러운 생태찌개가 놓였다. 만약 살점이 아니라 국물을 고른다면 동태찌개가 맞다. 이 집 동태찌개는 뽀얀 육수에 쑥갓을 넉넉히 올렸고 그 위로 고춧가루를 뿌렸다. 가스불을 켜고 시간이 지나자 국물에 선홍빛이 올라왔다. 내장과 간을 추가했다. 하얀 곤이는 국물에 별맛을 내지 않는다. 간을 더할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은데 따로 양을 맞춰 준비하고 선도를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간에서 나온 기름기에 탁류가 섞인 것처럼 국물이 짙어졌다. 뜨거운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먹던 동태찌개에서는 쓴맛이 났다. 동태 머리 쪽에 붙은 쓸개를 떼지 않고 그대로 넣었기 때문이다. 이 집 동태찌개는 쓴맛이 없었다. 대신 밀도 높은 국물의 넉넉한 무게감과 내장을 차분히 쓸어내리는 시원한 맛만 남았다.
쉽게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남은 국물을 마시느라 빨리 일어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커다란 손으로 숟가락을 붙잡고 동태찌개를 한 그릇 먹고는 단칸방 구석, 포개 놓은 이불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봤다. 동생과 나는 아버지의 굵은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워 앞뒤로 구르며 장난을 쳤다. 아버지는 끓어오르는 국물처럼 엄하다가도 세상 모든 어두운 것에서 우리를 구할 것처럼 든든했다. 나는 때로 아버지가 즐기던 음식을 먹으며 궁금해진다. 아버지는 이 맛을 좋아하실까? 그리고 말하고 싶어진다. 아버지 덕분에 여전히 오래된 음식을 찾는 우리가 있다고.
#주문진생태찌개: 생대구탕 1만3000원, 생태찌개 1만2000원, 동태찌개 8000원, 간 추가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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