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뀌었는데 일부 체육계 지도자들 악습 못 버려”
문체부는 지난 6일 축구협회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협회가 정몽규 회장에게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할 것을 요구했다. 문체부는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조사 후에도 “드러난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관리단체 지정, 예산 지원 중단 조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체부의 강경 조치와 체육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로 가는 진통인가, 체육 주무 부처와 실무 단체 간의 힘겨루기인가. 정부의 체육 정책을 총괄하는 장미란 문체부 제2차관을 만나 입장을 들어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용인대 교수로 재직하던 2023년 6월 문체부 차관에 발탁됐다.
‘우리끼리’‘예전부터 그랬어’ 문화 여전
Q : 체육 단체들의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핵심은 뭐라고 보나.
A : “체육계에 ‘우리끼리’ ‘예전부터 그래왔어’ 라는 문화가 남아 있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체육계 지도자들이 아직도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부분들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 바뀌고 있는데 자신들만 바뀌지 않으니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극소수 행정가들의 잘못으로 체육계가 뒤떨어진 집단으로 비치는 게 마음 아프다.”
Q : 대한체육회와 산하 종목단체들을 관장하는 문체부는 그동안 뭘 했나.
A : “우리는 각 종목이나 단체가 갖고 있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해 줬다고 생각한다. 체육회는 문체부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갑질한다’ ‘탄압한다’고 반발했다. 자율성을 보장해 줬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우리 부처의 책임도 당연히 있다. 이제는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하고, 필요한 말도 하면서 질서를 세워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Q : 이기흥 체육회장의 행보를 어떻게 보나.
A :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국회 국정감사 피하려고 자비로 해외 출장을 가고, 들어와서는 자신에 대한 조사들이 잘못된 거라고 한다. 이게 체육계를 대표하는 장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인가. 체육인들이 이런 모습에 공감할 수 있겠나.”
Q :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이기흥 회장 3선을 못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A : “특정인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3선을 한다는 게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도 ‘새 시대에는 새 인물이 필요하다’면서 연임을 포기했다. 이 회장이 잘한 것도 있지만 특정인이 오래 하는 건 공정하지 않고 모두가 원하는 것도 아니다. 이 회장에 대한 건 수사 기관에 모든 걸 넘겼으니 수사 기관이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본다.”
축구협회 감사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가 뭐냐고 묻자 장 차관은 “조직의 사유화와 끼리끼리 문화”라고 답했다. 그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뽑을 때의 원칙과 시스템이 무너졌다. 모두가 ‘이런 게 문제다. 잘못됐다’ 라는데 축구협회 내부에서는 ‘이게 왜 문제지?’라고 반문한다. 특정인이 장기집권 하면서 조직의 귀와 눈이 닫혀버린 거다”라고 말했다.
Q :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 상 하자가 있다고 하면서도 ‘축구협회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는데.
A : “절차적 하자를 치유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력강화위원회에서 감독 후보자를 다시 추천해 이사회에서 선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축구협회가 감독 선임 과정의 문제 해결 방안을 자율적으로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축구협회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본다.”
Q : ‘정몽규 아웃’이 해결의 열쇠라고 보나.
A : “누구를 나가라 마라 할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 다만 철저한 자료 조사와 관계자 증언 등을 통해 축구협회의 문제가 드러났고, 이에 대한 시정명령을 했다. 한 달 기한을 줬는데 아직 답이 없고 재심의 신청도 하지 않았다. 축구협회가 자정 능력을 발휘해 올바른 결정을 하기 바란다.”
Q : 이기흥 회장 문제에 대해선 IOC가, 정몽규 회장에 대해선 FIFA(국제축구연맹)가 주시하고 있는데.
A : “두 단체에서 공문을 우리에게 직접 보낸 게 아니고, 체육회와 축구협회에 온 것을 전달 받았다. 뭔가를 확실히 알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었고, ‘보고 있다’ ‘관심이 꽤 있다’ 정도였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이런 걸 하고 있다’고 알릴 이유도 없다. 우리는 규칙·공정이라는 스포츠의 가치를 세우기 위한 진통을 겪고 있다. 이건 IOC나 FIFA가 지향하는 방향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아프더라도 잘못된 것은 도려내야
Q : 파리 올림픽에서 예상 밖의 호성적을 거뒀지만 총·칼·활 등 특정 종목에 치우친 점도 있는데.
A : “메달 숫자나 색깔이 뭐가 중요하냐는 말도 하지만, 우리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모두가 기분 좋은 건 사실이다. 일본은 다양한 종목에서 성적을 내고 있다. 우리도 ‘생활체육을 활성화해서 엘리트를 키우자’는 얘기를 하지만 모호하면서 ‘너무 먼 당신’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의 환경이나 시설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
Q : 맞춤형 접근법이 있나.
A :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다양한 종목을 경험하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번에 초등학교 1·2학년 ‘즐거운생활’에서 체육이 별도 과목으로 분리됐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하도록 교육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은퇴한 엘리트 선수들이 강사로 참여하면 아이들이 다양한 종목에 흥미를 느낄 수 있고, 은퇴 선수들의 복지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장 차관은 “아프더라도 잘못된 건 도려내야 한다. 한국 체육을 바로 세우는 일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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