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고 향기로운 그 물건들의 이면

2024. 11. 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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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
케이티 켈러허 지음
이채현 옮김
청미래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이 슬로건이 나온 것은 1947년. 단순하지만 천재적인 이 아이디어는 다이아몬드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현대 로맨스의 표준 보석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알 크기’에 집착하는 소유욕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불굴의’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한 다이아몬드는 아름다움과 함께 추한 역사를 품고 있다. 18세기 포르투갈 식민지 개척자들은 브라질에서 노예 노동력을 이용해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기 시작했다. 수만 명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 브라질로 끌고 왔고 원주민들을 붙잡아 위험한 땅굴의 노동을 강요했다. 이들은 구타와 감금을 비롯한 학대를 당하면서 다이아몬드 등 보석과 귀금속 등 돈이 되는 온갖 광석들을 캐냈다.

미국 칼럼니스트 케이티 켈러허가 지은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는 다이아몬드와 함께 거울, 향수, 화장품, 실크, 대리석 등 사람들이 모두 탐내는 진귀한 10가지 물건의 이면에 감춰진 흑역사를 고발한다. 인간의 욕망과 소비주의 사회가 낳은 적나라한 실태를 역사, 과학, 예술, 디자인 등 박학다식에 기반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깊게 그리고 아프게 지적한다.

라틴어 ‘바라보다(mirare)’와 ‘감탄하다(mirari)’에서 따온 거울(mirror)은 외모를 확인하고 가꾸는 미적 생활의 필수 도구로 800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13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섬에서 탄생한 최초의 유리 거울은 말 그대로 대박상품이었다. 하지만 독성 강한 수은을 다루어야 했던 유리 공예가들은 직업병, 산업재해로 중풍과 천식을 많이 앓았으며 신장이 망가지거나 손이 떨리기도 했고 기억 상실, 불면증, 우울증, 때로는 섬망과 환각을 경험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거울 제작 기술을 유출하거나 이를 막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살인극도 자주 일어났다.

조향사들은 동물의 고통과 아픔의 부산물을 향수병에 담았다. 고래는 기름기 많은 지방과 숨겨진 위 담즙을 탐내는 사람들에 의해 도살되고, 사향고양이는 공포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항문 분비물을 얻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 갇힌 채 고문을 당한다. 머스크향은 도살된 사슴의 생식기에 딸린 향낭에서 채취된다.

달팽이 점액을 채취해 만든 달팽이크림은 귀여운 용기에 담겨 팔리고 딱정벌레 껍질을 으깬 혼합물로 만드는 립스틱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거쳤다. 독극물인 납이 함유된 화장품은 오랫동안 아름다워지려는 여성들의 건강을 해치는 악역을 맡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미를 좇는 인간의 욕망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아름다움 추구에 희생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우아하고 더 세련되고 더 예뻐지려는 원초적 본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아름다움에 수반되는 고통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경환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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