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사주 10조 매입한다
삼성전자는 15일 이사회를 열고 주가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10조원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 자금으로 시중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으로,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 삼성전자는 3조원의 자사주는 3개월 내에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나머지 7조원어치 자사주의 활용 방안과 소각 여부 등은 추후 결정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주주 가치 제고 목적”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15년 11조원대, 2017년 9조원대 자사주를 매입한 적이 있다. 이번 자사주 매입은 7년 만으로 금액으로는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7월 2분기 실적 발표 전후 8만원대 후반을 기록했으나, 지난 14일 4년 5개월 만에 4만원대로 내려앉았다. 15일엔 7.21% 올라 5만3500원에 장 마감했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져, 회사 차원에서 비상 대응에 나선 것”이라며 자사주 매입 이유를 밝혔다.
실제 삼성전자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7에 불과하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수치로, 1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부동산·설비 등 보유 자산의 장부상 가격보다도 낮다는 의미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가 10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여 이를 소각하면 전체 유통 물량의 4%가량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10조원은 삼성전자의 자금 상황과 실제 주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내 유보금은 3분기 기준 약 156조원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자사주 소각으로 주가 상승 효과를 본 경험이 있다. 삼성전자는 2015년 말 11조4000억원, 2017년 초 9조3000억원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의 경우 자사주 매입 계획 발표 이후부터 주가가 계속 오름세를 보이며, 9개월여 만에 50%가량 상승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업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이라는 변수로 흔들리고 있을 뿐, 실적만 놓고 본다면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저평가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삼성전자의 주가를 주당순자산으로 나눈 ‘주가 순자산 비율(PBR)’은 0.97배로 1배 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주가가 지금 회사를 청산했을때 받을 수 있는 가치(PBR 1배)에 미달할 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주가 바닥론이 퍼지는 상황에서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이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식은 이날 시간 외 거래에서 종가보다 3.18%(1700원) 높은 5만5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확산되는 주가 바닥론
KB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 PBR이 1배 밑으로 떨어진 것은 올해를 포함해 총 6번(2008년, 2011년, 2014년, 2015년, 2018년)이다. 과거 5번 모두 PBR이 1배 밑으로 떨어진 지 2~3개월 이내에 1배를 회복했다. 2008년과 2011년에는 한 달도 안 돼 PBR 1배 이상으로 올랐다. 주가 저평가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뜻이다. 올해는 10월 2일부터 삼성전자 PBR이 1배 밑으로 떨어졌다. 과거 주가가 떨어졌다가 회복됐던 복원력을 감안하면 지금이 주가 바닥에 가까운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삼성전자 주가의 저평가는 외국 경쟁 기업과 비교해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79조1000억원과 9조7800억원이다. 반면 대만 TSMC는 각각 7597억대만달러(약 32조7000억원)와 3253억대만달러(약 14조원)이다. 매출은 삼성전자가 더 크고, 순이익은 TSMC가 4조2000억원가량 더 많다. 그런데 시가총액은 삼성전자가 319조원으로 TSMC(약 1155조원)의 28%밖에 안 된다.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비율(PER)도 TSMC가 30.2배로 삼성전자(11.4배)의 거의 3배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버는 돈의 수익성에 비해 주가가 제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 자산 가치와 주가를 비교한 PBR도 TSMC가 6.73배로 삼성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열세인 AI 반도체 추격 속도가 관건
삼성전자 주가 약세는 기본적으로 반도체 사업의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이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D램 등 레거시(구형) 반도체는 중국 기업에 추격당하고,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반도체는 경쟁사에 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회복해 턴어라운드(실적 개선)하는 시점을 2026년쯤으로 예상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스마트폰과 PC 판매가 예상보다 저조하면서 실적에 타격을 받았다. 내년부터 온디바이스 AI 기기와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며 실적이 점차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온디바이스 AI에 탑재되는 메모리는 삼성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과 PC 시장이 살아나면 가장 먼저 빛을 보게 될 곳이 삼성전자”라고 말했다.
열세인 AI 반도체에선 기술 격차를 좁히는 게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말 출시 예정인 6세대 HBM(HBM4)에서 삼성전자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박유악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HBM4가 적용될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루빈) 출시가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엔 기술 격차를 줄일 기회가 있다”고 했다.
☞자사주 매입·PBR
자사주 매입
회사가 자기 회사의 주식을 주식시장 등에서 사들이는 것. 시중의 주식 유통 물량을 줄이기 때문에 통상 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PBR(주가순자산비율)
회사의 자산을 모두 팔았을 때 주주에게 1주당 얼마를 돌려줄 수 있을지를 구한 뒤, 이를 현재 주가와 비교한 값. PBR이 1보다 낮으면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다는 의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