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또 한 번 수능은 가고

2024. 11. 1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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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진 동국대 교수
어김없이 그 날이 오고, 지나갔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얘기다. 수능은 학력고사 세대의 마지막인 필자에게 ‘절대 재수는 안 된다’라는 공포감을 심어줬고, 몇 년 전 큰애가 볼 때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속 타는 심정의 정점을 찍게 했다. 몇 년 후 둘째가 볼 때는 좀 다를지 모르겠지만 생각만 해도 벌써 한숨이 나오긴 한다.

수능에 대한 스트레스의 근원은 ‘딱 한 번’이라는 데 있다. 내년에 입학하려면 올해 딱 한 번 치르는 시험에서 최고의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나 수능 날 18년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는 감상을 내비치는 경우가 흔하다. 비교육적이다 못해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수험생이 더 잘 준비되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2004학년도부터는 연 2회 모의고사가 치러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일의 부담감이 덜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 수능 스트레스 원인은 ‘딱 한 번’
일각에선 비교육적이라며 비판
‘5지선다형’ 문항 개선도 필요
수험생 감소 상황도 감안해야

수능을 여러 번 칠 수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 2017년 수능 하루 전날인 11월 15일에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해 수능이 일주일 연기된 적이 있다. 자연재해로 인해서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빚어진 혼란으로 한 해에 한 번 시험을 보는 것이 문제라는 논의가 있었다. 청소년 유학생이 많아지다 보니, 한국의 수능과 비슷한 미국의 SAT나 ACT가 한 해에 7회씩 치러진다는 사실도 많이 인용되었다.

수험생을 위해서라면 수능을 칠 기회가 여러 번인 게 맞아 보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 또한 역설적으로 수험생을 위해서다. 정확히 말하면 수험생의 ‘알 권리’를 위해서다. 잘 알려진 미국의 시험들은 문제은행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문제를 출제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일부 문제를 재활용하는 것이다. 그러자니 시험 문제를 공개하지 않고 당연히 정답도 알려주지 않는다.

한국의 수능은 과거 출제된 문제가 정답과 함께 공개되어 있다. 기출문제를 분석한 과목별 참고서는 필수 자료로 꼽힌다. 2005학년도 9월 모의고사부터는 시험 후에 문제에 대한 이의 신청까지 받고 있다. 문제에 대한 논란이 정리된 후 정답이 공개되는데, 그래도 수긍이 가지 않는 수험생이 있으면 소송까지 갈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문제은행 방식을 택하고 문제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깜깜이 시험’이라는 비난이 폭주할 것이다.

수능에 대한 또 다른 스트레스는 ‘한 개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가 객관식이라 불리는 선택형, 그 중에서도 다섯 개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5지선다형이다. 연구에 따르면 선다형 문제의 최적 선택지 개수는 세 개이고, 많아도 네 개면 변별에 충분하다고 한다. 선택지가 몇 개든 이렇게 틀에 박힌 선택지 안에서 정답을 찾는 훈련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선택형 문제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프레더릭 켈리라는 교육자가 개발한 것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신병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으로 이용되어 그 정당성과 효율성을 인정받았다. 1920년대에 SAT가 선택형 문제로 시행되면서 다수를 대상으로 한 표준적인 평가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선택형 시험의 장점은 효율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에 정답이 있다면 수험자가 결과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러다보니 수능이 단순 암기된 지식을 평가한다는 광범위한 오해가 있지만, 국어의 문해력이나 수학의 교과 역량을 평가하는 문제들은 선택형이라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 너무 어렵다는 불만을 살 수는 있다. 주관적인 사고도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등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의 지식을 평가하는 게 큰 문제로 보이지도 않다. 문학에 대한 이해를 5지선다로 판단하는 것이 이상하다면 이상하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형 시험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공감대가 있다면 이제는 서술형 시험을 도입할 때도 되었다. 이번 수능 응시자가 52만 명 정도인데, 2023년 출생아 수가 23만 명이다. 2000년엔 90만 명 가까이 응시했었다. 효율성의 중요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다만 수험생과 학부모가 채점 결과를 수용할지가 문제다.

이래저래 일 년에 한 번 보는 선택형 시험 수능은 꽤나 오래갈 것 같다. 그래서 필자도 몇 년 후 수능 날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반복할 것이다. 따뜻한 도시락을 싸고 시험장 앞까지 같이 가주는 일 말이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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