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전투는 미국이 이겨도 장기 전쟁은 중국이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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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나 워치] 트럼프-시진핑 2기 시대
“대통령은 사자가 돼야 한다. 사자는 다람쥐를 사냥해선 먹고 살 수 없다. 영양 같은 큰 동물을 잡아야 한다. 트럼프는 영양 같은 큰 그림에 집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친했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말이다. 작은 일보다 큰 일에 신경 쓴다는 뜻이다. 앞으로 두 달 후 다시 미국의 대권을 거머쥐게 될 트럼프에게 다람쥐가 아닌 영양은 무엇일까? 중국이 그 영양에 해당한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대만해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중국군 훈련은 미국의 개입 의지를 시험한다. 결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선 중국부터 잡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시대 미·중 격돌은 불가피하다. 어디서 어떻게 부닥칠까? 크게 세 곳이 거론된다. 첫 번째는 무역 전쟁이다. 주요 도구는 관세다. 집권 1기 때 중국산 제품에 7.5~25%의 관세를 부과한 트럼프는 이번엔 최대 60%의 고율 관세 폭탄을 투하하겠다고 벼른다. 이 경우 미국의 대중 수입은 85%가 줄고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많게는 2.5%가 깎일 전망이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목표가 5%인데 반 토막이 나게 되는 셈이다. 또 트럼프는 미국이 지난 1980년 이래 중국에 부여해온 최혜국대우(MFN) 지위도 철회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중국의 MFN 지위를 박탈하면 0%인 중국 휴대전화와 장난감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은 35%와 70%로 껑충 뛴다고 한다. 게다가 전자제품부터 철강, 의약품 등 필수 상품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걸 모두 폐지하는 4개년 계획을 실시하고, 중국의 미국 부동산과 사업체 매입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으로선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기술패권 전쟁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마당은 작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 정책을 추진했다. 중국에 대해 무분별하게 기술 수출 통제를 하기보다는 꼭 규제가 필요한 분야에서만 강력하게 통제를 단행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높은 담장은 그대로 유지하되 ‘마당은 작게’가 아니라 ‘마당은 넓게(big yard)’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한다. 바이든 시기의 디리스킹(위험 축소)을 넘어, 아예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디커플링도 불사한다는 게 트럼프의 생각이다.
세 번째는 대만 전쟁이다. 트럼프는 대만 문제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을 보인다. 트럼프는 시진핑 주석이 대만 봉쇄에 나설 경우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질문에 “관세를 150~200% 부과하겠다”고 답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대만 보호에 나설 것이냐는 물음엔 “말하지 않겠다. 내 패를 다 보여줄 수는 없다”고 했다.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우선 미국의 관세 폭탄은 그야말로 충격이다. 중국의 현재 경제체질과 체력이 약해져 맷집이 떨어진 상태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트럼프 1기 때 이미 무역 전쟁을 한번 치른 바 있어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 우선 과거와 크게 다르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경기 부양책을 검토 중이다. 그런가 하면 선딩리(沈丁立) 중국 푸단대학 교수는 무역 전쟁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는 “트럼프의 목표는 중국의 대미 상품판매 중지가 아니라 미·중 무역이 새로운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이 미국에 약속한, 예를 들어 농산품 등을 대거 구매해 중국의 대미 흑자를 줄이면 된다는 이야기다. 선 교수는 그렇게 하는 게 중국 스스로의 개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또 3국을 통한 우회 수출이나 미국 내 직접 공장을 지어 물건을 파는 방법도 있다. 트럼프는 고율 관세가 싫으면 법인세가 낮고 규제가 적은 미국에서 미국인을 고용해 생산하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왕후이야오(王輝耀) 중국국제화센터 이사장은 중국엔 배터리 제조사 CATL(寧德時代)를 포함해 대미 직접 투자를 원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즉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가는 ‘곡선구국(曲線救國)’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패권 전쟁도 괴롭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중국도 반격할 수 있다. 반도체 제조에 널리 사용되는 금속 게르마늄과 갈륨에 대한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가 하나의 방법이다. 또 중국 기업들은 이미 자체 개발이나 우회 무역 등을 통해 첨단 반도체를 포함한 미국의 기술 통제에 구멍을 내고 있다. 중국의 거대 내수 시장과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등에 힘입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가는 중국 기업도 늘고 있다.
트럼프 2기가 중국에 단기적으론 시련이겠지만 장기적으론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좡자잉(庄嘉潁) 싱가포르 국립정치대 교수에 따르면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스타일은 10년 또는 15년 장기투자에는 좋지 않다. 단기적으론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미국의 경제력을 갉아먹을 공산이 크다. 결국 장기 레이스에서 중국이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옌쉐퉁(閻學通)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트럼프는 미국의 국제적 지배력보다 미국 내 이익에 더 관심이 많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빠지면서 생겨날 새로운 권력 진공 상태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이야기다. 트럼프 2기 초반 미국은 관세 폭탄 등 맹공을 통해 어느 정도 전과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맹도 아랑곳 않는 미국 우선주의가 지속할 경우 미국의 국제적 지위는 약화가 뻔하다. 이 경우 미국은 중국과의 단기 전투에서는 이겨도 장기 전쟁에서는 질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국내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니 중국을 제외한 자유민주 진영에서 한국이 제조업 패권을 쥘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또 미·중 사이에서 어설픈 양다리 걸치기를 해선 안 된다고도 한다. 이제 미국의 등에 올라탈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중 관계가 그렇게 무 자르듯이 단칼에 디커플링이 될까? 지극히 회의적이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중국에 충격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미국 기업들의 수입 비용 증가를 부르고 결국 그 피해는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며 물가 상승을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 추가 관세는 중국에 고통도 주지만 미국에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양날의 검인 것이다.
현대 세계는 인터넷처럼 연결의 시대다. 트럼프는 모든 걸 이익에 기반해 거래를 하려고 한다. 중국과의 디커플링 운운도 중국을 압박해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는 고도의 계산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무역 담판에서 시종 개방적 태도를 유지한다. 또 기술 경쟁과 대문 등 민감한 문제에서도 타협의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트럼프가 ‘관세 맨(tariff man)’이지만 ‘협상 해결사(deal maker)’라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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