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62] 스위스 아미 나이프
1884년 스위스의 이바크(Ibach) 마을. 24세 청년 칼 엘스너(Karl Elsener)가 자신의 조그마한 공장에서 다용도 칼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1891년, 독일제 장비를 주로 사용하던 스위스 군대에 납품할 기회를 갖게 된다. 초기에 공급된 칼은 군인들이 통조림을 따거나 소총 등의 장비를 수리하는 용도로 제작되었다. 다소 거칠고 무거웠지만 점차 무게를 줄이고 다양한 기능을 첨가하며 변모를 거듭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다용도 툴, ‘스위스 아미 나이프(Swiss Army Knife)’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97년, 캔 오프너, 스크루 드라이버, 코르크 스크루 등이 첨가되면서다. 1909년부터 그는 어머니 ‘빅토리아’의 이름을 따서 상표명을 ‘빅토리녹스(Victorinox)’로 사용했다.
하나의 틈새에서 펼쳐 나오는 새로운 기능에 대한 기대감과 감탄, 치밀한 내부 구조의 진수를 보여주는 정밀함은 이 제품의 자랑이다. 이제까지 350개가 넘는 다른 모델을 출시하면서 인기 없는 기능은 없애고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으로 대체해 왔다. 시대에 맞추어 최근에는 USB 포트나 레이저 포인터, 골프 티 등이 첨가된 제품을 출시했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나사(NASA)의 우주선에 실리고,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1980년대의 인기 드라마였던 ‘맥가이버’의 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아마겟돈’에 등장하는 행성 시추선 정면에 빅토리녹스 로고가 새겨진 건 이 제품의 정밀함과 탁월함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는 또 깔끔하고 우아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보유한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구글에서 근무하다가 야후의 CEO로 자리를 옮긴 매리사 메이어(Marrisa Mayer)는 “구글은 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복잡함은 있지만 그 우아함과 간결성은 갖추지 못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계속해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이런 명품의 여정은 늘 흥미롭다.
“지난 500년 동안 큰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스위스 군대의 무기는 이 칼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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