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만항재

2024. 11. 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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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황동규

하늘 한가운데가 깊어져
대낮에도 은하(銀河)가 강물처럼 흐르는
만항재 늦가을
저 밑 침엽수림들이 물속처럼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바람에 손을 씻었다.
은하 가운데 머뭇대던 구름 한 장 씻은 듯 사라지고
열 받은 차가 하나 서 있다
얼마나 높은 데 길들이면
자신의 신열(身熱) 들키지 않고
삶의 고비들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꽃의 고요』 (문학과지성사 2006)

기후와 환경의 영향으로 나무가 살지 못하는 곳, 이 시작점을 사람들은 수목한계선이라 부릅니다. 위도가 높아 추운 극지방, 고온과 낮은 습도의 사막, 혹은 고도가 높은 산악지대 등에 이 수목한계선이 형성됩니다. 하지만 수목한계선이라 하더라도 전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의 나무들은 스스로 키를 낮추고 서로 사이와 간격을 두는 방식으로 끈질기게 살아갑니다. 나무 기둥 아래까지 가지와 잎들을 뻗어내 멀리서 보면 마치 무릎을 꿇은 듯 보이는 가문비나무도 이런 환경에서 굳세게 자랍니다. 어떤 한계를 안다는 것은 내가 그 한계를 넘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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