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반정부 세력 견제하려...강제수용소 박물관 폐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강제 노동 수용소 역사 박물관’이 14일 전격 폐쇄됐다고 러시아 현지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굴라크(Gulag)란 명칭으로 유명한 강제 노동 수용소는 구(舊)소련 시절의 광범위한 인권 탄압을 상징하는 곳이다. 러시아 내 독립 언론과 서방 매체들은 러시아 정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반(反)정부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을 없애려 박물관을 폐쇄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안전 문제다. 모스크바 시당국은 이날 “이 박물관이 시의 화재 안전 규정을 위반했다”며 “방문객의 안전을 고려해 ‘일시 폐쇄’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그러나 “폐쇄 조치 불과 하루 전날에야 이를 통보받았다”라며 “가장 최근 안전 점검에도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이와 관련해 “화재 안전 규정 위반은 없었고, 진짜 이유는 정치적인 문제”라며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과 연방보안국(FSB)의 강압이 직접적 원인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굴라크는 스탈린의 독재가 극에 달했던 1930년~1950년대 초반까지 번성했다. 최소 470여 개의 강제 노동 수용소가 있었고, 매년 500만~700만명의 범죄자와 정치범들이 수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문과 성폭력, 열악한 처우로 해마다 수감자의 10%가 숨졌다는 통계도 있다. 스탈린 시절 최소 1800만명이 수용소에서 고통을 받았다.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솔제니친의 소설 ‘수용소 군도’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노동 교화소 등이 굴라크를 본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박물관은 소련 붕괴 10년 만인 2001년 설립됐다. 정부의 관련 문서와 희생자들의 사진 및 유품을 모아 전시해왔다.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통해 정치적 억압과 인권침해에 대한 시민 사회의 회복·저항 능력 강화에 기여했다”며 2021년 유럽평의회의 ‘박물관상’을 받기도 했다. 러시아 정권엔 눈엣가시가 됐다. AFP 등은 “푸틴은 소련 시절의 인권 탄압에 침묵하고 스탈린 독재를 ‘외세에 저항한 위대한 리더십’으로 칭송해 왔다”며 “이런 경향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는 앞서 2022년 노벨 평화상 수상 인권 단체 ‘메모리얼’을 해산했다. 이 단체는 소련 시절부터 최근 푸틴 정권에 이르는 정치 탄압과 인권침해 사례를 기록해왔다. 또 지난 9월엔 구소련 정치범 4000여 명에 대한 복권 조치를 취소하고, ‘조국의 반역자’로 재분류하기도 했다. 강제노동수용소 역사박물관 역시 다시 문을 열긴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박물관 홈페이지는 기존 콘텐츠를 모두 삭제하고 재개관 일정 없이 ‘임시 폐쇄’라는 팻말만 걸어 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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