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벌써 몰아치는 ‘트럼프 폭풍’, 한국 외교 기조 바꿔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외교안보팀 인선을 마무리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까지 국가안보보좌관에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 국무장관에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국방장관에 피트 헤그세스 폭스뉴스 진행자, 국가정보국장에 털시 개버드 전 하원의원이 지명됐다. 대부분 ‘예스맨’ 노릇을 할 것으로 여겨지는 인물들이다. 아직 경제 각료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시대 외교에서 ‘미국 우선주의’가 더 강화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당장 대통령직 인수팀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방침이 흘러나왔다. 현실화될 경우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한 한국 전기차·배터리 기업들의 채산성이 한층 낮아질 수밖에 없다. 15일 2차 전지 관련 주가가 폭락하는 등 한국 주식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트럼프 리스크’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다. 외교안보팀 인선을 보면 중국에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우선 1기 때보다 더 격렬한 미·중 무역분쟁이 예상된다. 하지만 군사안보 분야에서도 중국과 강하게 대립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면서 임기 내내 신냉전적 대결로 치달을지는 불확실하다. 분명한 점은 트럼프 개인의 성향이 많은 것을 결정하리라는 점이다. 때론 동맹국들에도 강압을 가하고 적성국과도 협상을 하는 돌출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 정부의 인식은 다소 안이해 보인다. 조태열 외교장관은 한·미 동맹에 큰 변화가 없을 거라며 낙관론을 폈다. 우방국의 역할 확대를 중시하는 트럼프의 정책 방향이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과 일맥상통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 시기 한·미 동맹 강화라는 토대 위에 세운 대외정책 기조는 어떤 식으로든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분쟁 과정에 한국의 희생도 요구받을 것이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고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면서도 한국에는 무기 지원을 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을 배제한 대북 협상과 주한미군 철수 협박도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화 이후 그 어떤 정부보다 더 이념적인 외교정책을 펴왔다. 바이든 행정부의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구도를 적극 수용해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일변도로 갔고, 그 결과 극심한 남북한 대립과 북한 핵능력 최고도화, 중국·러시아와 최악의 관계를 초래했다. 이 모든 게 윤석열 정부만의 잘못을 아니지만, 미국만 믿고 뾰족한 대책도 없이 한쪽 방향으로 달려왔다는 점에서 무책임했다. 이제 외교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일본과 협력하면서도 최저점에 있는 한·중 관계를 개선하고 한·러 관계도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과도 우발적 충돌과 오해에 의한 확전을 막기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마침 중국이 신임 주한대사를 내정했고, 2년 만에 한·중 정상회담을 페루에서 갖게 됐다. 중국 나름대로 의도가 있겠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한·중 최고위급이 솔직한 전략적 소통에 나서는 것은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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