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총회로는 기후변화 못 막아…전면 개혁하라”

윤연정 기자 2024. 11. 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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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화석연료에 휩쓸리고, 실행·책임 요구 없고
딕손-드클레브·반기문·록스트룀 등 ‘공개 서한’
“화석연료 지지하면 의장국 자격 없게”
15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연설하고 있는 모습. 바쿠/AFP 연합뉴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9)가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상드린 딕손-드클레브 로마클럽 공동의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환경과학자 요한 록스트룀 등 국제사회 유력 인사들이 이 총회가 “더 이상 목적에 적합하지 않아”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놨다.

영국 비비시(BBC)는 15일(현지시각) 20여명의 고위직 전문가들이 유엔 등에 보낸 편지에서 “현재 기후총회는 목적에 적합하지 않아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화석 에너지의 단계적 퇴출을 지지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총회를 주최해선 안된다” 등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기후총회는 최근 3년 연속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아제르바이잔 등 ‘석유국가’에서 열렸고, 지난 11일부터 올해 총회를 열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의장국이 된 뒤에도 화석연료 증산 계획을 내놓아 비판을 받고 있다. 마침 이날 환경단체들은 “이번 총회에 참석한 화석연료 산업 로비스트가 1770명이나 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고 이를 규탄했다.

국제단체 로마클럽이 이날 누리집에 게시한 글을 보면, 유엔기후변화협약 모든 당사국들과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보낸 “당사국총회 개혁에 대한 공개 서한”에 상드린 딕손-드클레브 로마클럽 공동의장, 환경과학자 요한 록스트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등 전문가 22명이 서명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 28년 동안 195개국 이상이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하고 스물여덟번 당사국총회를 열어 이를 달성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해왔으나, 당사국총회의 현재 구조는 안전한 기후 착륙에 필수적인 기하급수적인 속도와 규모의 변화를 제공해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당사국총회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7가지 개혁안을 제시했다.

로마클럽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공개 서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 유력 인사들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개혁안 가운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의장국 선정 절차 개선”인데, 여기서 이들은 “화석 에너지의 단계적 퇴출 또는 화석 에너지로부터의 전환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를 배제하기 위해 엄정한 자격 기준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현재엔 별다른 자격 요건 없이 지역별 순서에 따라 지역 내 모든 나라들의 동의만 받으면 의장국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돈 많은 화석연료 산업의 영향을 받는 나라들이 줄곧 의장국이 되었고, 올해 의장국인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총회 기조연설에서 “석유·가스는 신의 선물”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총회가 열리기 직전에는 총회 최고책임자를 맡은 아제르바이잔 에너지부 차관이 “화석연료는 영원할 것”이라며 석유회사로 위장한 환경단체에게 ‘화석연료 거래를 도와주겠다’고 말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해마다 기후총회에는 수많은 화석연료 산업 로비스트들이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해왔는데, 편지는 이에 대해서도 “과학 기관, 원주민 커뮤니티, 취약 국가의 공식 대표보다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은 당사국총회의 구조적인 불균형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 강력한 투명성과 공개 규칙, 기업들로 하여금 그들의 기후 약속과 사업 모델, 로비 활동 사이의 일치를 증명토록 하는 명확한 지침”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기후재원’이란 딱지를 붙이지만 실제로는 이자를 발생시키는 대출이 되어 기후 취약 국가들의 부채 부담을 심화시키는 현실을 언급하며, “기후재원의 자격에 대한 정의를 표준화하고, 기후재원의 흐름을 검증하고 추적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당사국총회는 각 나라가 기후 목표와 공약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기후대응의 과학적 근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총회처럼 “상설 과학 자문기관을 둬야 한다” 등의 제안들도 내놨다.

기후총회로부터 화석연료 산업의 영향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올해 특히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전 미국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 역시 이날 기후총회 무대에 올라 “화석연료 산업과 석유국가가 기후총회의를 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장악했다”고 일갈했다.

바쿠/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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